제 2 절 희소성의 법칙
1. 보고픈 메뚜기
이 땅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후 그토록 목마르게 기원했던 천국은 현실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천국을 갈구했다 함은 현세가 천국이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모든 것이 넉넉하고 풍요롭지 않았다. 그러니 쓸모 있는 것들을 무한정 공짜로 얻는다는 것은 좀처럼 생각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공짜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재화가 있었다. 이들 재화는 존재량이 무한히 많아 돈이나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재화를 무료재(無料財, free goods)라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무료재, 즉 '공짜재'조차도 더 이상 공짜가 아니었다. 해와 달, 바람과 구름, 밤하늘의 별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공짜로 넉넉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세상에는 온통 모자라고 부족한 것 뿐이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붸던 어린 시절에.....' 시골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느끼게 하는 가락이다. 어릴 적 농촌에 살았던 사람이면 거의 간직하고 있는 추억이 있다. 고무신 벗고 메뚜기 잡으러 들판을 뛰어다니던 기억이다. 그 때는 천지가 메뚜기였다. 한참만 열심히 잡노라면 가지고 간 사이다병에 메뚜기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도 남으면 검정고무신에 메뚜기를 담아오곤 했다. 그러던 메뚜기가 이제는 최고급 안주로 변신하였다. 웬만한 사람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게 된게 요즈음 메뚜기이다.
'돈을 물쓰듯 한다'는 말이 있다.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쓴다는 뜻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물인심만큼은 후했던 것이 우리네 조상들이었다. 그러던 것이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 먹으면서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요즈음에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들이 물을 팔아 먹느라고 혈안이 되어 있다. 신토불이 물로도 안되었던지 배타고 길어온 다른 나라의 물까지도 팔아 먹는 세상이 되었다.
2. 신인류의 사랑
얼마전 유행하던 노래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맘에 안드는 그녀에겐 계속 전화가 오고, 내가 좋아하는 그녀는 나를 피하려 하고, 거리엔 괜찮은 사람 많은데 막상 소개를 받으러 나가 보면 어디서 이런 여자가 나오는지 괴롭고, 예쁘다 싶어서 접근하려면 이미 애인이 있고.....'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다. 그러나 어떡하랴. 세상에 미인을 찾는 사람은 많은데, 이 세상에 미인은 절대 부족한 것을. 남성들은 대부분 예쁜 여성과 사귀고 싶어한다. 영화속의 여주인공과 데이트하고 싶어한다.
이 점은 여성들도 마찬가지이다. 핸섬한 남성을 보면 호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케빈 코스트너와 같이 멋진 남성이 많기만 하다면 해결은 간단하다. 마음만 먹으면 그처럼 멋진 남성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막상 그런 남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희귀한 것이다. 그래서 인기가 있다. 희소가치 때문이다. 만일 세상의 남성이 모두 케빈 코스트너처럼 잘 생겼다면, 그는 여성들에게 전혀 인기가 없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가 겪는 일상의 일이 아닌가 한다. 우리네 직장생활이 그렇고, 봉급이 그렇고, 호주머니 사정이 또한 그러하다. 사람의 수명이 넉넉하지 못하듯, 세상의 모든 것도 부족한 것 뿐이다. 부족함이야말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명백한 법칙이다. 언어창조에 남달리 뛰어나고 고상한 표현을 즐기는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희소성의 법칙(稀少性의 法則, law of scarcity)이라고 불렀다. 희소성의 법칙이란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 반면, 이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자원의 양이 부족한 현상을 말한다. 그러니 희소성의 법칙이란 달리 표현하자면 '부족함의 법칙'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물론 여기서 부족하다 함은 자원의 절대량이 다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산에 살면서 계곡에 내려가 물을 길어 먹는 사람들은 축제 때 물을 서로 선물로 주고 받는다. 늪지대에 살면서 습기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은 일꾼을 고용해서 개천을 파 배수를 시킨다." 기원전 3세기에 살았던 중국의 한비자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볼 때 어떤 자원들은 여전히 풍부하다. 그러나 아무리 풍족한 자원일지라도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희소성의 법칙은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일상의 법칙인 것이다.
3. 엔트로피법칙
이와 관련되는 법칙이 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Entropy)법칙이 그것이다. 석유나 석탄 등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지하자원의 양은 일정하다. 그런데 이들 자원은 한번 사용하면 재생이 불가능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현세대 뿐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들에게도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는 자원고갈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오늘날 중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자원고갈문제는 엔트로피법칙과 관련이 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열역학 제1법칙(이는 에너지불변 또는 에너지보존의 법칙이라고도 함)에 의하면, 예컨대 기름을 태워 자동차를 움직일 때 내연기관에서 기화된 기름은 열에너지와 운동에너지로 바뀌고, 다른 일부는 일산화탄소의 형태로 대기 중에 방출된다. 이때 이들 에너지의 양을 모두 합하면 처음 기름으로 있을 때의 에너지 합과 같다. 즉, 우주에 있는 에너지와 물질은 그 형태만이 변화하며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열역학 제2법칙(이를 엔트로피법칙이라 함)에 의하면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즉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혹은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이용할 수 없는 것으로, 또는 질서화된 것으로부터 무질서화된 것으로 변화한다. 요컨대 집중에너지의 상태에서 분산에너지의 상태로 변한다. 따라서 열에너지, 운동에너지, 일산화탄소 등은 다시 기름으로 만들 수 없으며, 설사 만들 수 있다고 해도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의 소비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자원의 고갈문제는 필연적으로 대두될 수 밖에 없다.
한 마디로 엔트로피법칙은 지구의 물리적 한계, 즉 에너지의 유한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또 우리 인간은 그 한계를 절대로 넘어설 수 없으며, 이 법칙에 의해 계속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세계관이자, 21세기 문명의 기초이다.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문명비평가의 한 사람이며 카터 행정부의 브레인으로 활약한 바 있는 제레미 리프킨(J. Rifkin)은 그의 저서 {엔트로피──새로운 세계관}(Entropy── A New World View)에서 엔트로피법칙은 현대의 세계관을 초월한 것이며, 그 힘은 천동설을 믿던 중세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갈릴레이 갈릴레오(G. Galileo)의 지동설로 대체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설득력이 큰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다음 다음 세대, 즉 우리의 손자 세대에 이르면 엔트로피의 세계관은 제2의 천성이 되어 버릴 것이며, 우리가 뉴톤적 체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엔트로피의 영향력을 특별히 의식하는 일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생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래학자인 허만 칸(H. Kahn)이나 {제3의 물결}의 저자인 앨빈 토플러(A. Topler) 등의 많은 학자들이 각기 독자적인 관점에서 현대문명을 논하고, 그에 경종을 울리며 미래를 헤쳐 나가기 위한 새로운 제언들을 하고 있지만, 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적인 약점은 현대 세계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가장 어려운 문제들 중의 하나인 에너지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4. 엔트로피법칙과 산업혁명
엔트로피법칙을 이용하면 역사발전의 과정에 대한 모든 설명이 가능하다. 예로써 산업혁명의 본질을 파헤쳐 보자. 기원전 1세기경에 로마군의 유럽 점령이 있었다. 당시 유럽대륙은 울창한 원시림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그후 약 1천년은 목기문명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그러다가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이 있으면서 인구 증가로 경작지의 확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해짐에 따라, 새들이 나뭇가지에서 날아 올라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 다녀도 인가를 발견하기 힘들던 유럽대륙의 울창한 삼림이 본격적으로 제거되기 시작했다.
16세기경에 이르러서는 스칸디나비아반도 외의 전유럽의 삼림자원이 상당히 고갈되었다. 15세기에 스코틀랜드를 방문한 로마교황 피우스 2세는 남루한 옷을 걸친 사람들이 교회 입구에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검은 돌맹이를 얻어 가지고 안심한 듯이 돌아왔다. 이 지방은 삼림이 적기 때문에 장작 대신 이러한 돌덩이를 땔감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그의 편지 속에 적고 있다. 이 돌덩이는 다름 아닌 석탄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땔감용으로 석탄을 몰랐던 것은 아니나, 무겁고 냄새나며 일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등 나무보다 에너지원으로서 열등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나고 상업활동이 점점 활발해지면서 목재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목재 기근'현상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
유럽에서 제일 먼저 에너지원을 석탄으로 바꾼 나라는 영국이었다. 영국은 대륙에 비해 큰 삼림이 없고 인구는 상대적으로 많아 자원문제가 심각했다. 따라서 일찍부터 석탄을 땔감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석탄을 캐내 운반하는 과정에서 사람이나 가축의 힘만으로는 곤란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시 영국의 도로는 거의 포장되지 않았으며 무거운 석탄을 실은 마차가 지나갈 때마다 도로가 움푹 파여졌다. 게다가 비가 오면 움푹 파인 바퀴자국에 진흙탕물이 고여 지나갈 수가 없었다.
이러한 석탄수송 위기에 해답을 준 것이 바로 증기기관과 철로의 발명이었다. 증기기관 발명의 의의를 이해하는 데에는 새로운 에너지원의 사용이라는 변화된 환경요인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사실 인류 최초의 증기기관 발명은 이미 기원전 3세기에 고대 그리스에서 있었지만, 당시에는 궁정에서의 노리개감으로 사용되었을 뿐이었다.
증기기관의 발명 이후 계속되는 일련의 기계류의 발명은 순식간에 산업사회의 개막을 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국 우리는 산업혁명을 인류문명이 발전하는 데 위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대적인 절박한 요구가 가져온 '부수적인 산물'이었음을 동시에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엔트로피법칙과 에너지 고갈의 문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는 빙하기가 3번 있었다. 수억년 전만 해도 지구상에는 100-200m나 되는 원시림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었다. 그러다가 빙하기가 도래하여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나무가 쓰러지고 그 위에 모래와 물이 덮여 큰 수렁을 만들었다. 그후 수만년간 지압과 지열에 의하여 웅덩이들이 탄소화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광물이 바로 석탄이다.
한편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등장하는 파충류와 공룡이 살던 시대는, 주먹만한 파리(?)가 날아다니고 강아지만한 벌레(?)가 기어다니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미국의 스미스소니안 박물관에는 높이만 30m나 되는 공룡의 화석이 있다고 한다. 이윽고 빙하기가 시작되어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하면서 그 커다란 생물체들이 땅속에 매몰되었다. 그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지열과 지압에 의해 땅속에 묻혀 있던 생물체들이 기름덩어리로 남게 된 것이 지금의 석유이다.
이렇듯 수억년에 걸쳐 형성된 석유와 석탄이라는 중요한 에너지원을 인류는 불과 수백년만에 거의 소비하고 말았다. 이들 자원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고갈되는 것은 얼마 남지 않았으며, 따라서 대체에너지원의 개발 등 미래의 에너지 문제의 해결은 인류의 생존 자체를 결정짓는 가장 중대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이와 같이 엔트로피법칙은 경제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개념이다. 지구상에 있는 에너지의 양은 유한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낄 줄을 모른다. 오랜 세월에 걸쳐 생성된 자원들이 바닥을 드러낼 지경이다. 엔트로피법칙은 지구인들에게 보내는 경종이다. 동시에 21세기 인류구원의 메세지다.
1. 보고픈 메뚜기
이 땅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후 그토록 목마르게 기원했던 천국은 현실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천국을 갈구했다 함은 현세가 천국이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모든 것이 넉넉하고 풍요롭지 않았다. 그러니 쓸모 있는 것들을 무한정 공짜로 얻는다는 것은 좀처럼 생각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공짜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재화가 있었다. 이들 재화는 존재량이 무한히 많아 돈이나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재화를 무료재(無料財, free goods)라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무료재, 즉 '공짜재'조차도 더 이상 공짜가 아니었다. 해와 달, 바람과 구름, 밤하늘의 별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공짜로 넉넉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세상에는 온통 모자라고 부족한 것 뿐이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붸던 어린 시절에.....' 시골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느끼게 하는 가락이다. 어릴 적 농촌에 살았던 사람이면 거의 간직하고 있는 추억이 있다. 고무신 벗고 메뚜기 잡으러 들판을 뛰어다니던 기억이다. 그 때는 천지가 메뚜기였다. 한참만 열심히 잡노라면 가지고 간 사이다병에 메뚜기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도 남으면 검정고무신에 메뚜기를 담아오곤 했다. 그러던 메뚜기가 이제는 최고급 안주로 변신하였다. 웬만한 사람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게 된게 요즈음 메뚜기이다.
'돈을 물쓰듯 한다'는 말이 있다.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쓴다는 뜻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물인심만큼은 후했던 것이 우리네 조상들이었다. 그러던 것이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 먹으면서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요즈음에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들이 물을 팔아 먹느라고 혈안이 되어 있다. 신토불이 물로도 안되었던지 배타고 길어온 다른 나라의 물까지도 팔아 먹는 세상이 되었다.
2. 신인류의 사랑
얼마전 유행하던 노래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맘에 안드는 그녀에겐 계속 전화가 오고, 내가 좋아하는 그녀는 나를 피하려 하고, 거리엔 괜찮은 사람 많은데 막상 소개를 받으러 나가 보면 어디서 이런 여자가 나오는지 괴롭고, 예쁘다 싶어서 접근하려면 이미 애인이 있고.....'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다. 그러나 어떡하랴. 세상에 미인을 찾는 사람은 많은데, 이 세상에 미인은 절대 부족한 것을. 남성들은 대부분 예쁜 여성과 사귀고 싶어한다. 영화속의 여주인공과 데이트하고 싶어한다.
이 점은 여성들도 마찬가지이다. 핸섬한 남성을 보면 호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케빈 코스트너와 같이 멋진 남성이 많기만 하다면 해결은 간단하다. 마음만 먹으면 그처럼 멋진 남성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막상 그런 남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희귀한 것이다. 그래서 인기가 있다. 희소가치 때문이다. 만일 세상의 남성이 모두 케빈 코스트너처럼 잘 생겼다면, 그는 여성들에게 전혀 인기가 없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가 겪는 일상의 일이 아닌가 한다. 우리네 직장생활이 그렇고, 봉급이 그렇고, 호주머니 사정이 또한 그러하다. 사람의 수명이 넉넉하지 못하듯, 세상의 모든 것도 부족한 것 뿐이다. 부족함이야말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명백한 법칙이다. 언어창조에 남달리 뛰어나고 고상한 표현을 즐기는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희소성의 법칙(稀少性의 法則, law of scarcity)이라고 불렀다. 희소성의 법칙이란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 반면, 이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자원의 양이 부족한 현상을 말한다. 그러니 희소성의 법칙이란 달리 표현하자면 '부족함의 법칙'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물론 여기서 부족하다 함은 자원의 절대량이 다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산에 살면서 계곡에 내려가 물을 길어 먹는 사람들은 축제 때 물을 서로 선물로 주고 받는다. 늪지대에 살면서 습기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은 일꾼을 고용해서 개천을 파 배수를 시킨다." 기원전 3세기에 살았던 중국의 한비자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볼 때 어떤 자원들은 여전히 풍부하다. 그러나 아무리 풍족한 자원일지라도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희소성의 법칙은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일상의 법칙인 것이다.
3. 엔트로피법칙
이와 관련되는 법칙이 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Entropy)법칙이 그것이다. 석유나 석탄 등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지하자원의 양은 일정하다. 그런데 이들 자원은 한번 사용하면 재생이 불가능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현세대 뿐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들에게도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는 자원고갈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오늘날 중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자원고갈문제는 엔트로피법칙과 관련이 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열역학 제1법칙(이는 에너지불변 또는 에너지보존의 법칙이라고도 함)에 의하면, 예컨대 기름을 태워 자동차를 움직일 때 내연기관에서 기화된 기름은 열에너지와 운동에너지로 바뀌고, 다른 일부는 일산화탄소의 형태로 대기 중에 방출된다. 이때 이들 에너지의 양을 모두 합하면 처음 기름으로 있을 때의 에너지 합과 같다. 즉, 우주에 있는 에너지와 물질은 그 형태만이 변화하며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열역학 제2법칙(이를 엔트로피법칙이라 함)에 의하면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즉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혹은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이용할 수 없는 것으로, 또는 질서화된 것으로부터 무질서화된 것으로 변화한다. 요컨대 집중에너지의 상태에서 분산에너지의 상태로 변한다. 따라서 열에너지, 운동에너지, 일산화탄소 등은 다시 기름으로 만들 수 없으며, 설사 만들 수 있다고 해도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의 소비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자원의 고갈문제는 필연적으로 대두될 수 밖에 없다.
한 마디로 엔트로피법칙은 지구의 물리적 한계, 즉 에너지의 유한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또 우리 인간은 그 한계를 절대로 넘어설 수 없으며, 이 법칙에 의해 계속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세계관이자, 21세기 문명의 기초이다.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문명비평가의 한 사람이며 카터 행정부의 브레인으로 활약한 바 있는 제레미 리프킨(J. Rifkin)은 그의 저서 {엔트로피──새로운 세계관}(Entropy── A New World View)에서 엔트로피법칙은 현대의 세계관을 초월한 것이며, 그 힘은 천동설을 믿던 중세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갈릴레이 갈릴레오(G. Galileo)의 지동설로 대체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설득력이 큰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다음 다음 세대, 즉 우리의 손자 세대에 이르면 엔트로피의 세계관은 제2의 천성이 되어 버릴 것이며, 우리가 뉴톤적 체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엔트로피의 영향력을 특별히 의식하는 일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생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래학자인 허만 칸(H. Kahn)이나 {제3의 물결}의 저자인 앨빈 토플러(A. Topler) 등의 많은 학자들이 각기 독자적인 관점에서 현대문명을 논하고, 그에 경종을 울리며 미래를 헤쳐 나가기 위한 새로운 제언들을 하고 있지만, 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적인 약점은 현대 세계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가장 어려운 문제들 중의 하나인 에너지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4. 엔트로피법칙과 산업혁명
엔트로피법칙을 이용하면 역사발전의 과정에 대한 모든 설명이 가능하다. 예로써 산업혁명의 본질을 파헤쳐 보자. 기원전 1세기경에 로마군의 유럽 점령이 있었다. 당시 유럽대륙은 울창한 원시림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그후 약 1천년은 목기문명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그러다가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이 있으면서 인구 증가로 경작지의 확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해짐에 따라, 새들이 나뭇가지에서 날아 올라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 다녀도 인가를 발견하기 힘들던 유럽대륙의 울창한 삼림이 본격적으로 제거되기 시작했다.
16세기경에 이르러서는 스칸디나비아반도 외의 전유럽의 삼림자원이 상당히 고갈되었다. 15세기에 스코틀랜드를 방문한 로마교황 피우스 2세는 남루한 옷을 걸친 사람들이 교회 입구에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검은 돌맹이를 얻어 가지고 안심한 듯이 돌아왔다. 이 지방은 삼림이 적기 때문에 장작 대신 이러한 돌덩이를 땔감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그의 편지 속에 적고 있다. 이 돌덩이는 다름 아닌 석탄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땔감용으로 석탄을 몰랐던 것은 아니나, 무겁고 냄새나며 일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등 나무보다 에너지원으로서 열등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나고 상업활동이 점점 활발해지면서 목재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목재 기근'현상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
유럽에서 제일 먼저 에너지원을 석탄으로 바꾼 나라는 영국이었다. 영국은 대륙에 비해 큰 삼림이 없고 인구는 상대적으로 많아 자원문제가 심각했다. 따라서 일찍부터 석탄을 땔감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석탄을 캐내 운반하는 과정에서 사람이나 가축의 힘만으로는 곤란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시 영국의 도로는 거의 포장되지 않았으며 무거운 석탄을 실은 마차가 지나갈 때마다 도로가 움푹 파여졌다. 게다가 비가 오면 움푹 파인 바퀴자국에 진흙탕물이 고여 지나갈 수가 없었다.
이러한 석탄수송 위기에 해답을 준 것이 바로 증기기관과 철로의 발명이었다. 증기기관 발명의 의의를 이해하는 데에는 새로운 에너지원의 사용이라는 변화된 환경요인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사실 인류 최초의 증기기관 발명은 이미 기원전 3세기에 고대 그리스에서 있었지만, 당시에는 궁정에서의 노리개감으로 사용되었을 뿐이었다.
증기기관의 발명 이후 계속되는 일련의 기계류의 발명은 순식간에 산업사회의 개막을 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국 우리는 산업혁명을 인류문명이 발전하는 데 위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대적인 절박한 요구가 가져온 '부수적인 산물'이었음을 동시에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엔트로피법칙과 에너지 고갈의 문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는 빙하기가 3번 있었다. 수억년 전만 해도 지구상에는 100-200m나 되는 원시림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었다. 그러다가 빙하기가 도래하여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나무가 쓰러지고 그 위에 모래와 물이 덮여 큰 수렁을 만들었다. 그후 수만년간 지압과 지열에 의하여 웅덩이들이 탄소화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광물이 바로 석탄이다.
한편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등장하는 파충류와 공룡이 살던 시대는, 주먹만한 파리(?)가 날아다니고 강아지만한 벌레(?)가 기어다니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미국의 스미스소니안 박물관에는 높이만 30m나 되는 공룡의 화석이 있다고 한다. 이윽고 빙하기가 시작되어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하면서 그 커다란 생물체들이 땅속에 매몰되었다. 그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지열과 지압에 의해 땅속에 묻혀 있던 생물체들이 기름덩어리로 남게 된 것이 지금의 석유이다.
이렇듯 수억년에 걸쳐 형성된 석유와 석탄이라는 중요한 에너지원을 인류는 불과 수백년만에 거의 소비하고 말았다. 이들 자원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고갈되는 것은 얼마 남지 않았으며, 따라서 대체에너지원의 개발 등 미래의 에너지 문제의 해결은 인류의 생존 자체를 결정짓는 가장 중대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이와 같이 엔트로피법칙은 경제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개념이다. 지구상에 있는 에너지의 양은 유한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낄 줄을 모른다. 오랜 세월에 걸쳐 생성된 자원들이 바닥을 드러낼 지경이다. 엔트로피법칙은 지구인들에게 보내는 경종이다. 동시에 21세기 인류구원의 메세지다.
'형설지공 > 경제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4 절 기회비용 (0) | 2001.03.08 |
---|---|
제 3 절 경제학의 등장 (0) | 2001.03.08 |
제 1 절 자원과 재화 (0) | 2001.03.08 |
외환위기 이후의 거시경제변수 조정과정: 국가간 횡단면 자료 분석 (0) | 2001.03.07 |
회사채 신속인수 방안의 개선점 (0) | 2001.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