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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리포트]세계화와 국제자본

신문방송학과 93학번 손창원


1. 서 론
작년 연말의 외환위기 이후로 IMF는 어려움을 뜻하는 한국의 보통명사가 되었다. 원래 프랑스 출신의 관료였던 국제통화기금 총재인 미셸 캉드쉬는 의심할 여지 없는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세계 각국 정부가 자국의 부채를 제대로 갚지 못하고 경제위기를 더 이상 독자적으로 돌파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외국 금융시장의 도움을 필요로 할때마다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미셸 캉드쉬가 10년 이상을 일하고 있는 IMF, 국제통화기금 앞에서는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 어떤 큰나라의 대표들도 도움을 달라고 빌어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만다. 그가 각국 정부에 자금을 지원해주는 절차는 먼저 엄청난 재정긴축 프로그램이나 과감한 특별조치의 시행을 조건으로 내걸고, 그것을 각국의 정부가 받아들인다면 몇몇 부자나라의 대표들에게 최종결정을 받은후 최종적으로 자신의 사인을 하고 엄청난 액수의 돈을 넘겨주는 과정이다.
그러나 1995년 1월 이런 막강한 권력을 가진 미셸 캉드쉬는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문제를 홀로 결정하여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국제통화기금의 50년 역사 중 가장 엄청난 규모의 대출을 위의 어떠한 조건이나 절차를 밟지 않고 자신이 홀로 결정하여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것은 일명 '페소화 구출 대작전'이라고 명명한 멕시코 외환위기에의 지원 건이었다. 80년대 초반 이래로 세번째의 경제위기를 맞게 된 멕시코의 국가부도 사태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각국의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국제통화기금 등이 합작한 막대한 규모의 금융지원안을 발표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는가? 국제자본시장, 금융시장과 초강대국인 미국을 비롯한 각국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이때의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세계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국가권력이외의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게 된다.
이 글에서는 국제자본의 형성과 성격, 세계의 경제위기, 동아시아의 외환위기에 국제자본이 끼친 영향,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현존하는 영향력 등을 중심으로 세계화와 국제자본의 문제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2. 본 문
1) 멕시코 경제위기
1995년 뉴욕의 월스트리트, 그와 관련한 투자회사들, 그리고 크고 작은 개인 투자기금 관리회사들이 멕시코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공해준 빚이나 주식, 채권등은 이미 5백억달러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외국인 투자가들에게는 엄청난 액수의 손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페소화의 엄청난 폭락이 그것인데, 멕시코 정부가 자국화폐를 평가절하하게 되었다는 발표이후 3일만에 무려 30%이상의 페소화 폭락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곧 미국 정부의 각 부처에 위기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고 클린턴 대통령은 정부차원에서 멕시코에 4백억불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원내 다수당인 공화당이 의회에서 이를 추인해줄리 만무했다. 한편, 멕시코의 경제위기는 남반구, 중부유럽, 아시아 등 멕시코 경제와 별 관련이 없는 다양한 나라들에게 동시에 영향을 끼치는 모습을 보였다. 전혀 생각지 못한 외부요인들때문에 이들 각국은 자국의 이자율을 대폭 올려 자국의 화폐가치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려 하였으나 여의치 못했다. 당시 진행되고 있었던 세계적 자본 이탈의 흐름은 범지구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시장경제의 확대 및 자유민주주의로의 발전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었고, 미정부의 위기대책위원회는 IMF 초재 캉드쉬에게 즉각적이고 적절한 구원을 요청한 것이다. 불과 2주일 만에 미셸 캉드쉬 총재는 자신의 지위와 IMF의 신용도를 담보로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177억불(이는 IMF가 1회 대출 가능한 최고한도 77억불과 모든 규정이외의 100억불을 합한 액수이다)을 지원하는 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마침내 미국 행정부는 IMF, 국제결재은행, 캐나다 정부등과 함께 500억불이 넘는 비상구제금융을 실시한다고 발표할 수 있었다.
캉드쉬는 이후에 만일 멕시코 시장이 붕괴했다면 더 이상 걷잡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며, 각 나라에서 도미노처럼 연쇄작용

을 불러일으켜 궁극적으로 세계적 금융 대공황에 도래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전례없는 조치는 '투기꾼들을 위한 대탈주극'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부유한 소수를 위해 다수의 혈세납부자들이 치러야 했던 가장 뻔뻔스런 날강도 사건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세계적 투기자본의 이익을 지켜준 이 사건은 국제자본과 관련하여 전 세계적인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보여준다.
미국과 같은 슈퍼 권력체 정부는 물론이요 유럽의 중앙은행들, 그리고 전지전능한 것으로 통하던 IMF조차도 모두가 한 단계 위의 독재적 폭력앞에 굴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국제자본시장'이라는 폭력이다.
2) 한국의 경제위기
우선 한국은 국제자본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 특별한 존재는 아니다라는 것을 인정하자. 국제금융자본은 전세계적인 관점에서 아시아를 바라보고 그 아시아의 일부로서 한국을 바라보게 될 뿐이다. 작년말 IMF 프로그램의 모범생으로 꼽히는 태국과 한국이 올해 인도네시아의 주가와 매우 비슷한 양태를 보이고 있는 것은 이를 증명한다. 폭력이 난무했던 인도네시아 사태가 세계언론에 보도되면서 한국역시 인도네시아와 동일시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국제자본이 투자대상으로서 아시아권을 묶어서 생각하고 있다면, 한국의 위기를 바라보는 관점도 국내적인 것이어서는 안된다.
국제사회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으로 정치, 경제적인 세력들의 시각을 들 수 있다. 이 점에서도 한국의 안보적 의미는 퇴색하고 있으며, 경제논리가 득세한다는 것을 주목해보자.
먼저 동아시아의 성장배경에서 시작해보면, 사실 동아시아의 성장은 지난 85년 일본엔화 강세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85-95년 엔화는 1달러당 240엔에서 79엔대까지 수직상승했고, 해외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안정성 도모책으로 달러와 연동되어 있던 아시아 통화가 상대적으로 약세화하면서 아시아 국가들

의 수출경쟁력이 상승했다. 또한 엔강세 영향을 피하려던 일본기업들이 아시아에 생산거점을 마련키 위해 직접투자를 확대하면서 '아시아의 기적'을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94년 중국의 위안화가 49.6%나 평가절하되었고, 중국, 베트남등 후발국들의 추격이 본격화 되었다. 경쟁력은 약화되었고, 95년 8월에는 엔화마저 약세로 돌아섰다. 96년 이후 동아시아 각국의 무역수지 적자폭은 증대되었다. 여기서 촉발된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각국은 민간차원의 단기외채를 끌어들이는 구조를 고착시킬 수 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해외 투기성 자본을 동원한 부동산 거품이 동아시아의 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성장에 제동이 걸리고 통화가 하락되자 투기성 단기자본들이 일거에 빠져나가고 이후 추락은 끝이 없었다. 자본이 들어오자 흥하였고,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망한 것이다.
물론 한국의 특수한 경우들도 한 몫 단단히 했다. 이런 모든 위기들이 예견되었지만 제도 언론들중 한국경제가 대공황을 맞을 수 밖에 없는 조건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보도한 매체는 하나도 없었다. 한국은 외환부족, 원화가치에 대한 불안감 증가, 외국자본의 이탈, 외환보유고 고갈 등의 연쇄작용으로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살펴본 멕시코의 경제위기, 아시아의 몰락, 최근 엔화의 약세 등을 일괄적으로 지배하는 커다란 흐름이 있다. 바로 국제자본이다.
3) 국제자본시장의 형성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재는 국제자본시장을 '맹수들의 정글'이라고 표현했다. 한 국가 (심지어 그것이 가장 강력한 국가일지라도)와 국제기구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오늘날 세계를 좌지우지 하고 있는 맹수들의 정글은 언제 어떻게 형성된 것이며,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가?
(1) 국제자본시장의 형성
과거 본격적인 최초의 금융가라고 할 수 있는 로스차일드

가는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의 배상금과 승리한 영국의 경제부흥비용을 빌려주는 등 양국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더욱 더 큰 발언권을 갖게된 로스차일드가는 엄청난 금융지배력을 가졌으며, 이것을 국제자본의 태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금융자본의 국제화는 국가간 무역거래의 증진과 더불어 1950년대말부터 시작되었다. 1950년대 후반 미국의 활발한 해외투자활동과 서유럽국가들의 전후 복구자금 수요 및 주요국의 외환 자유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유로시장이 국제금융시장의 중심지였다.
1945년 2차대전이 끝나고 세계각국은 달러부족에 직면하였다. 생산설비에 제재를 받지 않고 오히려 전시 중에 생산력을 배가한 미국과 전쟁으로 황폐한 구주제국과의 경제격차로 인해 후자가 경제력을 부흥하기 위하여 대량의 원료와 자재를 미국에서 매입하려고 해도 지불용 달러자금에 허덕였다.
연합국 간에서는 전시중에 1944년 세계의 자유무역을 부활하기 위한 브레튼 우즈 협정이 성립하여 1945년 IMF와 세계은행이 발족하고 1947년 GATT가 발족하고 있었지만 세계무역의 현실은 이러한 국제기관이 의도하는 이상과는 달랐다.
미국은 1948년 구주의 경제부흥을 목적으로 하여 마샬플랜이라 하는 구주 부흥 계획을 실시하였는데, 이 플랜에 의해 유럽에 대한 미국의 원조를 실시하고, 그 원조총액은 130억불에 이르렀다. 이 원조를 받아들이는 체제를 갖추기 위해 유럽은 후에 OECD의 모체가 된 OEEC를 발족시켰다. 이 미국의 원조에 힘입어 유럽은 공업생산은 증대되고 달러부족도 완화되었다.
각국이 환시세의 절하효과와 1950년 미국경기의 회복으로 유럽의 달러보유고는 재차 증대되기 시작하였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세계경기는 상승하였다. 그후 서독으로 대표되는 유럽과 일본의 경제가 착실히 부흥한 반면 1950년 이래 미국의 국제수지는 만성적자가 되

어 1953년 이후로는 미국에서 금이 구주제국으로 유출되기 시작하였다.
서구전체의 국제수지와 금달러준비도 1958년에는 현저하게 호전되었기에 영국을 위시한 서구 주요 12개국은 일제히 통화의 교환성 회복을 실시하였다. '교환성 회복'이란 어느 나라가 자국의 통화에 대한 제한을 풀어 이것을 자유로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자유화 정책의 실시는 세계무역의 확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1957년까지 유럽은 미국의 국제수지의 적자에서 얻은 미달러화 그대로 외화준비로서 축적해왔으나, 전통적으로 '금선호'에 강한 구주제국은 달러부족이 해결된 1958년 이후, 보유 미달러화를 미국이 가진 금과 교환하는 경향을 강력하게 밀고 나갔다. 이로서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폭의 확대와 더불어 미국의 금보유는 급격히 삭감되어갔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1960년 10월 런던 자유금시장에 첫번째의 골드러쉬(금투기현상)가 생겨 금의 거래시세는 41달러로 올랐다. 이것은 미달러의 신뢰에 대한 첫도전이고, 또 달러 불안의 표명이기도 했다. 미국 금보유고의 감소는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보장하는 미달러화의 신뢰를 저하시켜 나갔다. 그 때문에 1960-1961년 사이에 미국정부는 금유출의 원인인 국제수지의 개선으로서 달러의 신뢰를 회복시키기 위해 각종의 '달러방위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국제수지는 개선은 커녕 점점 적자폭을 확대해 가기만 했다.
달러불안은 격화하여 두번째의 '골드러쉬'가 일어났다. 한편 미달러화와 영파운드화의 양기축통화의 불안과 동요를 배경으로 하여 국제간 유동성 논의가 활발하게 되어, 선진국간의 '자본이동의 자유화'는 1960년대 후반에 크게 진전하였다. 선진국의 '환자유화'의 진전과 다국적 기업의 발전과 더불어 국제간의 단기자금의 이동도 활발하게 되었다.
1969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달러 방위책'의 일환으로서 국내

인플레의 해소를 위해 금융, 재정의 긴축책을 채택하였으나 이 긴축정책은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현상을 미국경제에 가지고 왔다. 미국의 국제수지는 인플레 진행에 의해 국제경쟁력의 저하로 무역수지 흑자가 격감하고 재정수지는 한층 더 악화되었다.
닉슨은 1971년 신경제조치 (소위 닉슨 성명)을 발표하여 그 중에서 미달러화의 금교환성 정지를 선언하였다. 이 미달러화의 금교환성 정지는 IMF 구체제 (브레튼 우즈 체제)의 근간부터 동요를 주어 '닉슨 쇼크'라 불려지면서 세계의 국제통화정세를 크게 불안에 몰아넣었다.
1973년 유럽시장에서는 대량의 달러투매가 되어 이것을 계기로 이탈리아, 일본, 스미스, 서독 등에 변동환율제가 시행되게 된 것이다. 1976년에는 자메이카에서 IMF 잠정위원회에서 금평가의 폐지, IMF 증자 등을 원칙으로 전혀 새로운 신체제를 수립하였다.
잇따른 국제수지 적자 등으로 1970년대 초반 미국 달러화의 금태환 정지선언으로 비롯된 환율제도의 혼란으로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OPEC 산유국들이 두차례에 걸쳐 석유파동을 일으켰고, 미국이 이에 달러의 통화량의 증가로서 대처하면서 막대한 오일 머니가 신디케이트 대출을 통해 산유국에 흘러들어갔다. 이들은 다국적 금융자본을 통하여 비산유국에 이 오일머니를 대량공급하였으며 이것이 현재 개발도상국들의 외채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 1977년 이후에는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국제은행들의 대출경쟁의 심화로 신용공여조건이 크게 완화되고 차입규모도 대형화되는 추세가 되었으며, 막대한 양의 자금이 개발도상국 등으로 흘러들어갔다.
결국, 1970년대초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가 누적되면서 고정환율제를 붕괴시켰고, 1944년이후 30여년간 서구세계를 지탱해온 브래튼 우즈 체제가 붕괴된 것이다. 자유로운 자본의 이동이 원활하게 되고, 또한 오일 위기로 인해 형성된 오일 달러는 국제 금융 자본시장의 규모를 크게

증진시키게 된다.
(2) 오일달러와 국제자본시장
1973년과 1979년의 2차례의 석유파동으로 OPEC 산유국들의 외환 보유고는 비정상적으로 비대화되었지만, 비산유국 특히 비산유개발도상국들은 국제수지 적자폭이 급격히 확대되어 경제개발에 커다란 차질을 빚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은 이러한 오일 위기에 통화량의 팽창으로 맞섰으며, 유로시장은 이러한 상황에서 오일달러의 시장환류에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였다.
오일 달러는 1970년대 중반이후 국제수지 적자로 허덕이던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국제수지 적자보전을 위해 과거와 같이 IMF나 IBRD 등 국제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국제금융시장에 필요한 자금을 직접 조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많은 민간 상업은행들은 개발도상국 정부를 상대로 하는 거액의 상업금융에 관심을 모으게 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에 국제적 신디케이트 대출이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국제금융자본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양적인 팽창을 거듭하던 국제금융시장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질적인 변화를 보인다. 1980년대 초반에는 농수산물의 가격하락과 세계경기의 전반적인 침체 및 국제적인 고금리 현상에 따른 개발도상국의 외채이자부담가중 등으로 외채문제가 점차 표면화되었다.
1980년대들어서면서 금융, 자본시장이 급성장하였으며 특히 금융자유화 및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등을 바탕으로 자본의 조달과 운용면에서 국내의 금융, 자본시장 간에 상호통합이 진전되면서 국제적인 자금이동이 확대되고, 각국의 금융, 자본시장의 상호연관성이 증대되는 등 금융의 범세계화 현상이 뚜렷해지는 것이다.
오일달러가 일으킨 개도국들의 외채문제는 이미 1980년대 초반에 멕시코의 외채상환불능사태를 계기로 위기상황을 맞았었다. 1982년 멕시코 외채문제를 계기로 표면화된 개발도상국들의 외채문제는 곧이어 중남미 지역은

물론 아프리카, 동유럽, 아시아 지역 등으로 계속 확대되면서 위기상황을 맞게 되었으며 마침내 국제금융자본시장의 기존질서를 뒤흔드는 위협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되었다.
4) 국제자본의 성격과 특성
  (1) 자본시장의 자유화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본시장의 자유화 조치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국제금융자본시장은 변화한다. 1980년대에 들어와 선진국의 자본자유화는 첫째, 각국의 경제활동이 점차 국제화되고 대외거래규모가 방대해짐에 따라 자본의 조달과 운용에 있어서의 국제화란 측면, 둘째, 경제의 효율성 문제와 관련하여 금융시장의 기능강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각국이 경쟁의 저해요소가 되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거나 철폐할 필요성 등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급진전되었다.
  (2) 자본시장의 유동성과 시장성
이들이 유동성과 시장성을 중시하며 단기증권이나 채권을 선호하게 된 것은 1980년대 들어서의 개발도상국들의 채무불이행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민간은행들은 채무국들의 잇따른 채무불이행 사태로 불량채권이 증가하고, 속수무책으로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기에 이후 자산운용에 있어서 언제든지 처분이 가능한 유동성과 시장성을 중요시하게 된 것이다.
  (3) 국제자본시장의 규모의 급증
국내외의 시장참여가 점차 자유화됨에 따라 발행국이외의 특정 금융자산의 규모와 비중이 급속히 확대되었고 거래되는 금융상품의 종류도 예금이나 대출 형태뿐만 아니라, 증권, 금융선물, 옵션 거래 등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시장 규모의 성장으로 국제금융시장은 전세계에 걸친 24시간 영업체제로 발전하였다. 고도로 발전된 정보통신 네트워크의 형성으로 뉴욕, 동경, 런던을 잇는 하나의 국제자본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4) 이윤사냥은 빛보다 빠르다
엄청난 자유를 누리게 된 세계금융시장은 이제 하루거래액 1조

5천억달러라는 엄청난 액수의 돈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전자장비로 무장된 군대와 같이 24시간 내내 수익성 높은 곳을 찾아 온 지구를 몇바퀴씩 돌고 있는 직업적 금융투기꾼들이다.
80년대 이후 범세계적인 규제완화 추세에서 크게 바뀐 국제금융시장 구조안에서 개별 국민국가의 통제를 벗어나는 사적인 금융자본이 엄청나게 증가하였는데, 이를 '투자은행 계열'이라고 부른다. J.P 모건, 헤지펀드 등이 여기에 속하지만 반면 국가규제아래 있는 금융자본은 한국의 시중은행과 비슷한 '상업은행 계열'이 된다.
미국 자본의 보통명사화된 '월스트리트'는 이중 투자은행 계열의 산실이다. 오늘날 월가의 자본은 세계자본시장을 독점해 가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냉전이 끝난후 유일하게 세계의 맹주로 남게 된 미국이 다시 달러를 기축 통화로 세우기 위해 추진하는 고 달러정책이 있었다.
월가의 투자은행 계열의 대표적인 자본 '헤지편드'는 1백만 달러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연간소득이 일정액 이상인 1백명 미만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주가, 환율, 금리 등의 움직임에 따라 활동하는 주식, 통화, 채권 등의 금융자산이나 금융부채의 미래가치를 사고파는 거래를 뜻한다. 이들이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자금은 4조 5천억에서 6조 달러에 이르기에 IMF 회원국 모든 은행의 외환보유고를 합한 것보다 많은 액수이다. 때문에 이들이 한꺼번에 특정통화를 사들이거나 팔 경우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의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더라도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이 전문적 금융투기꾼들은 범지구적으로 연결된 전자정보망을 통해 하루에도 수십번씩 거의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미국달러를 엔화와 바꾸고, 곧이어 스위스 프랑과 바꾸고 그리고 또다시 미국달러를 되사는 식으로 불과 몇분사이에 환율거래꾼들은 한 시장에서 다른시장으로 뉴욕의 한 상대방에게서 런던이나 홍콩의 다른 거래상대에게로 날아다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수억의 거

래가 이루어진다. 이를 거대한 전자 카지노에 비유한 케인즈의 말은 옳을 수 있다.
  (5) 국제자본의 무국적성
자본의 세계화로 국경통제가 철폐되면서 민족국가의 주권은 상대적으로 의미를 잃어버리고 거의 무정부적인 분위기가 팽배하게 되었다.
오늘날 공황은 외환위기로부터 시작되어 은행의 파산, 재벌의 파산, 중소기업들의 파산, 민중생존의 파산으로 이어지는 특성을 갖는데 이는 무정부성을 주요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경제위기는 일국적인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것이다. 그 이유는 국제적 요인이 좌우하는 공황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외환위기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자본의 국제적 이동이 활발해짐으로써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통합되어 왔다. 특히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일국적으로 자본과 국제기구가 융합된 국가 독점자본대신에 초국적화한 산업, 금융 자본이 세계경제를 실질적으로 움직여가고 있다.
초국적자본은 수익율이 높은 곳을 찾아다니고 사회복지 축소와 노동시장의 유연화, 이 두가지를 합쳐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 시키려한다. 이를 위해 이러한 초국적 자본이 제공하는 논리는 규제완화, 자유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민영화 등이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초국적 자본의 논리가 '세계화'란 이름으로 잘못 포장되어 재생산되었다.
5) 새로운 권력
이른바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정치적 계급이 권력의 무대 위로 등장하였다. 이 권력체의 영향력으로부터는 어떤 국가, 기업, 어떤 보통의 시민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 권력체란 범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제자본이다. 이제 국제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 속도나 수량면에서 완전히 정부나 국제기구의 통제 밖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들 국제 금융업계의 대투기꾼들은 특정 국가의 화폐가치를 떨어뜨리거나 특정 주식의 가치를 폭등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기 위해 굳이

비밀스런 골방 같은 곳에서 몰래 만날 필요가 없다. 사실상 이 자본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대개가 납득할 만한 논리속에서 나오고 있으며, 또 대부분 선진 자본주의 국가 정부들이 자초한 것이다. 그들은 이른바 '자유로운 무한국경시장'이라는 경제학의 이름으로 모든 울타리를 체계적으로 제거해왔다. 예전에는 국경을 넘나드는 돈과 자본의 흐름이 이러한 울타리를 통해 적절히 통제되었지만 이 울타리들이 사라지면서 통제불능의 상태가 된 것이다.
돈의 흐름이 민족 국가의 통제없이 제멋대로 흘러다닐 수 있게 된 것은 1973년 들어 선진 자본주의 나라사이에 당시까지 통하던 상호 고정된 환율제도가 붕괴하면서부터라는 것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다. 브레튼 우즈 시스템의 붕괴이후 여전히 자본의 국제흐름을 통제하고자 하던 나라들은 매우 강력한 압력을 받게 되었다. 이들 나라의 독점 대기업들은 이자율이 낮은 다른 나라 자본을 쉽사리 빌려올 수 없어서 국제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마침내 영국, 일본이 자본이동의 제한을 철폐하였고 '금융시장'이 거의 독자적인 경제체제의 모습을 갖추고 차곡차곡 성장해 나가게 되었다. 이 새로운 권력이 정치권력보다 한차원 높은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은 더이상 과장이 아니다. 이제 국제질서는 국민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경제적 세력과 순수하게 이윤만을 위해 움직이는 초국적 자본의 대립과 협조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자본주의의 진화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대부분 사회적 긴장과 문제를 일으킨다. 실업은 그 대표적인 예이며 대체로 자본의 유동성이 크게 확대되는 시점에서 가시화된다. 한국의 경제위기를 비롯한 아시아의 위기도 경제의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진화가 빚어낸 부조화의 산물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세계자본의 투기적 성격과 본래 노동시장의 고유한 긴장,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국제자본과 국민국가간의 대립이 문제의 본질일 수 있다.
국제자본시장의 직업적 거래꾼들은 단기자금을 빌어다가

환투기에 쏟아붓는 방식으로 실물경제에서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수익을 뽑아간다. 이제 돈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장과 국가사이의 권력투쟁적 성격이 예전에 비해 훨씬 강하게 대두된다는 뜻이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세계화는 각국 정부로부터 다국적자본으로의 통치권 이동현상을 초래했고, 이는 민주주의의 후퇴, 환경 및 시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 각국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깊숙히 침투한 새로운 국제규범은 그것이 미칠 지대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이 국제규범을 급속도로 진전시킨 주체는 바로 국제규범들로 인해 가장 이익을 얻게 될 소수의 다국적 기업이라는 데 있다.
이제 국제자본은 지구 어느곳에서건 어느 정부나 어느 중앙은행으로부터도 통제받지 않고 활동한다. 수천억달러에 이르는 자본이 간단한 컴퓨터 조작을 통해 전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이러한 자본의 움직임은 각국의 외화정책, 이자율, 노동정책, 환경정책 등 이전에는 주권국가의 정부가 가지고 있었던 정책결정권을 간단히 '무력화'시킨 것이다.
6) 초국적 자본의 세계화 논리
초국적 자본과 다국적 기업의 산업자본으로 조직된 국제자본시장의 압력은 너무나 거세어 각국 정부와 기구들은 이들 업계의 압력에 굴복하는 정책을 펴야만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새로운 요구가 정부들을 몰아세웠는데 그것은 재산세의 대폭인하, 자본투자에 대한 세금인하, 모든 금융 서비스에 대한 규제완화 내지 탈규제화, 정부 공공지출액의 과감한 축소, 사회보장제도의 제한 등이다.
세계화 지구화의 물결과 더불어, 아무리 새로운 예산이 편성되고 아무리 새로운 법안을 제정한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더더욱 범지구적인 불평등 현상이 더 심화 확대, 고착화될지도 모른다.
한국의 예를 살펴보자. 재벌들과 정부가 그동안 초국적 자본이 잡는 바람에 붕 떠서 세계화니 초일류기업이니 세계

경영이니 공격경영이니 하면서 무모한 경영을 일삼으면서 근거로 내세운 것은 초국적 자본이 제공하는 논리였다. 규제완화, 자유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민영화 등등 지난 5년간 쏟아져 나온 모든 논의들은 죄다 자신의 창작물이 아니라 국제자본의 논리였던 것이다. 재벌들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언론들이 초국적 자본의 신자유주의 논리를 수입해서 사용했던 것은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재벌의 자본축적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체계에 편입된 한국자본시장은 각국 정부와 기업에게 범지구적 자본 덩어리에 접근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국내은행은 이를 통해 자국내 저축이나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해외로부터 엄청난 규모로 끌어 올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재벌에게 특혜제공되었다. 능력이상의 국가부채를 그들 임의대로 지은 것이다.
그러나 간과한 것은 국제금융, 자본시장의 생리인데, 각 나라의 이자율이 서로 달라서 존재하는 위계질서를 보지 못한 것이다. 쉽게 흘러 들어온 돈은 이자율이 높은 곳을 찾아서 부단히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외환위기는 쉽게 흘러들어왔던 돈이 빠져나가면서 시작하였다.
재벌은 국제시장에서의 비약적인 자본축적에 힘입어 스스로의 힘으로 은행과 증권시장, 외자를 자신의 명의로 직접 조달하기도 하였다. 민간주도 경제, 신자유주의의 첨단논리에 힘입은 이들 재벌들은 경제위기가 닥친 이후에는 슈퍼은행 등의 설립을 주장하며 은행의 소유, 경영권까지 요구하며 세계자본질서에의 편입을 꾀한다.
정부통제, 정부관료의 통제 뿐만 아니라 노동에 대한 통제를 회복하는데도 일정정도 도움이 된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는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패권분파의 이데올로기였다. 그들이 열렬히 신봉하고 선전해와서 누구나 당연히 여기는 세계화는 바로 초국적 자본의 세계지배전략이며 이데올로기 인 것이다.


제 외환위기에서 시작된 한국의 경제위기를 기회로 세계의 초국적 자본들은 한국시장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개혁은 정경유착과 부패관행의 개혁이고, 은행과 재벌의 결탁관계의 청산이다. 민중의 요구와 일치하는 이 개혁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자신들의 그림인 신자유주의 질서, 완전한 개방화를 이룩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몇가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비대한 이윤만을 쫓아다니는 국제자본의 논리앞에 평등을 내세우는 전통적인 민주주의와 각국 시민들의 인권보장은 가능할 것인가? 외채의 노예가 되어 평등한 입장에 서지 못하는 각국 정부의 대표들이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가? 국제자본이 요구하는 각종 개혁을 거부할 경우 큰 부작용이 예상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을 모두 수용한다면 아시아에 기대만큼의 대규모 자금유입이 이루어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정말 IMF의 권고나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개혁은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우리가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가?
인류의 삶을 보편화시킨 세계화는 미셀 초스도프스키의 말처럼 '빈곤의 세계화'일 뿐이다. 하나로 통합된 국제자본시장이 국제정치보다 진보했다는 불일치, 모순이 현재의 문제점의 근본이라면, 이미 초국가적인 금융자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미국 등 초강대국과 국제기구들의 영향력과 힘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권력이 대량실업과 빈민을 양산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이 밑바탕에 깔린 이데올로기 '신자유주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세계어디에서나 균일해야 하며 자유주의 경제질서 이외에는 어떤 질서도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리를 절대명제로 내세운다. 이 세계에서의 지배자는 폐쇄적이고 내부충원에 의존하는 소수집단을 형성하며, 나머지 절대다수를 고립시킨다.
7)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은 쇠퇴했는가?
지금까지의

모든 논의를 살펴보면 마치 국민국가의 하나로서 강대한 권력과 패권을 가졌던 미국 등의 국가권력들은 완전히 몰락한 듯하다. 하지만, 비록 국제자본의 힘이 강력해지고 새로운 권력으로서 자리매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쉽게 국가권력이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이번 장에서는 국제자본의 문제와 연결시켜서 아직도 달러를 중심으로 강대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을 살펴보려한다.
세계경제가 심각한 불균등 현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몇몇 경제권이 파탄의 위기에 처해있지만 가장 강대한 국가권력 중 하나인 미국은 전혀 손쓸 수 없다고 내빼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먼저 세계경제의 여러부분들이 미국의 정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는 미국증권시장의 금리인상이 유럽 및 각국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경제학적 법칙과 원칙을 깨는 일들이 미국의 시장변화에 따라 곧잘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국가의 중앙은행도 단독으로 금리를 낮추거나 외환시장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달러 화폐 공간의 상황변동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워싱턴의 재정 및 금융정책가들은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1995년 4개월 동안 미국 달러화의 가치가 엔화나 마르크화에 비해 무려 20%까지 떨어졌을때 이것은 곧 범지구적 세계경제 자체를 혼란에 빠뜨렸고 유럽과 일본사회에 또다시 불경기를 초래했다. 그 결과 모든 유럽화폐들의 환율도 떨어졌으며 수천개의 기업들이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이때 IMF의 한 수석경제학자는 "시장이 미친듯이 움직인다"는 말까지 하게 되었다. 과연 이러한 달러화의 움직임은 아무런 논리도 없이 불합리하게 움직였던 것일까?
당시 달러화의 하락은 단지 "미국의 정치전략에서 의도적으로"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미국은 자신의 상품을 해외시장에서보다 값싸게 판매함으로써 수출 경쟁력

이 떨어진 경제부문을 살리고자 했던 것이다. 달러화 시세는 어느덧 세계시장을 둘러싼 일본이나 독일 등과의 경제전쟁에서 일종의 '무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마치 음모와 밀실담합에 관한 허황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은 매우 설득력있는 얘기이다. 세계금융시장에서 범지구적으로 활약하는 대다수는 사실상 미국 금융기관들이며, 또 이들은 세계곳곳에 필요한 시설이나 통신망 같은 하부구조를 모두 갖추고 있다. 이들이 미국정부의 통제를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 행정부나 재무부,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추구하는 목표나 발언에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미 정부는 단지 몇마디의 코멘트나 정보의 효과적인 유출로 달러의 하락과 상승을 조작할 수 있다. 사실 1995년 "달러화의 폭락은 교묘한 미국 통화정책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시장은 결코 "미친듯이 비논리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이 민활한 미 행정부의 지휘봉에 정확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3. 결 론
세계화의 사전적 정의는 나라간 국경 자체의 한계나 차이를 뛰어넘어 지구촌 전체를 하나의 경영 단위로 삼는 보다 공세적이고 전략적인 기업활동을 말한다. 세계화는 기업가들이 민족의 틀을 뛰어넘어 범지구적 차원에서 보다 자유로운 활동을 하기 위해 모든 장벽들을 시원하게 열어젖히자는 의미에서만 진보적인 것이지, 일하는 사람들한테는 이 세계화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세계화의 논리중 노동의 합리화, 공공부문의 민영화, 정부의 탈규제화라는 세가지 물결은 노동의 세계를 심각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제 자본이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국제주의, 세계화 운동은 모든 나라들의 경계선은 물론이요, 각 나라에서 예전부터 내려오던 사회질서들을 하루 아침에 허물어뜨리고 있다. 자본의 신규 투자를 미끼로 세금면제나 수천억의 보조금, 또는 도로, 통신, 항만과 같은 사회간접자본 시설들을 공짜로 요구하며 그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그들은 세금이 낮은 나라를 찾아서 끊임없이 이동한다. 이윤이 생기면 그 나라 은행에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이자소득세 등의 세금이 낮은 곳을 찾아간다. 다른 한편에서는 범지구적 자본가들이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자꾸만 낮추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어느 나라나 사정은 비슷하다.
사회적 부는, 따지고 보면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것인데도 그들이 가져가는 부분은 자꾸만 줄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는 절대로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가들에 의해 목적의식적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자본과 상품이 국경선을 넘어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도록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다.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한 국제자본은 개별국가의 장기적 발전에 대해서는 일말의 고려도 하지 않고 이윤만을 찾아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의 외환위기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누차 설명했으며 한국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곳간만을 채우려는 정

부의 수출증대, 기존외채의 기간연장 등으로는 위기의 반복을 부를 뿐이다. 덩치가 한없이 불어난 투기자본 앞에 어떤 개별국가가 저항할 수 있는가?
초국적 자본의 거대화 / 무국적화로 이들이 개별국가의 통제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힘과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이제까지 국제질서를 지배해오던 국가권력의 독점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국민국가를 개별단위로 하는 여타의 초강대국 시스템, 국제기구들 등을 한 차원 뛰어넘는 강대하고 거대한 국제자본은 이제 국제질서를 지배하는 새로운 힘이다. 물론 국가권력이 자신의 힘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며 이들은 아직도 막강한 권력과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자본과 국가권력간의 갈등, 투쟁, 협력, 이해관계가 앞으로의 인류사회의 수많은 일들을 결정해나가고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근 동아시아의 위기 역시 국제자본과 패권국가 미국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일치하여 일어났다는 것을 밝혀낸바 있다. 동아시아에의 금융시장 지배를 열망하는 국제자본과 동아시아에 대한 영속적인 영향력의 확대를 원하는 미국의 패권주의의 이해관계가 공존하면서 투기자본이라는 '핵'과 미국의 '패권'은 한 몸이 되었다. 이들은 이 지역을 적절하고 치명적으로 공략했고 성공하고 있다.
우리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국제자본으로 대표되는 경제와 국가권력으로 대표되는 정치의 모순이다. 경제적으로 거의 통일된 진행과정은 불평등성을 심화시키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성장한 모습인데 반하여 정치적으로 갈가리 나뉘어져 있는 국가는 아직도 평등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고수한다. 이러한 갈등이 국제사회에 끊임없는 긴장과 모순관계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 자본과 토착자본의 충돌, 국가권력과 국제자본의 충돌, 초국적 기구와 국제자본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국가주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 등이 새로운 사회의 모순점들이 되는 것이다. 현상을 쫓아 본질을 파악하기에도 벅찰정도로 빠르고 극심하게 변하는 국제사회의

변화이기에 어설픈 대안의 모색은 오히려 회피이고 도망이다. 이 글을 쓰며 내 고심한 한가지 사실이 국제자본과 초국가권력앞에 속수무책인 동아시아의 한나라에 불과한 한국의 대학 4학년생인 내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만 하고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새로운 천년은 암담한 것만이 아닌가? 모든 것이 모호하지만 국제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본질을 보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서 문제의 제기가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 참 고 자 료

투기자본과 미국의 패권,  이찬근, 연구사
세계화의 덫, 한스 피터 마르틴, 하랄드 슈만, 영림카디널
경제대공황과 IMF 신탁통치,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한울
빈곤의 세계화, 미셀 초스도프스키, 당대
국제관계론 강의, 한울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사미즈 아민, 한길사
제 3세계와 외채위기, 창비사
국제자본이동이 국내자본형성 및 경상수지에 미치는 효과, 전주성, 대외경제연구소
국제자본전략, 김신, 석정
신자유주의와 세계민중운동,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한울
HTTP://suryun.pwu.ac.kr/~seven/w-ir.html : 국제관계정의
"신자유주의는 제 4차 세계대전", 한겨레신문 97년 8월 6일자
외자보다 수출이 근본대책, 김철환, 와이즈디베이스
지구촌 실업의 정치경제학, 송하영, 와이즈디베이스
무너진 동아시아 신화 한계인가 국제자본의 몰락인가 外 다수 신문 및 잡지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