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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인터뷰]90년대 일본경제의 실패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 <나의 경제학>이 21세기 경제학의 기본 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꿈에도 의심해본 적이 없습니다. 경제예측 분야에서 그것의 우월성이 이미 여러차례 증명되었고, 경제예측을 정확히 수행해낼 수 있는 이론틀(패러다임)이라면, 경제현상의 과학적 운동원리에 좀더 접근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과학적 운동원리를 알아야 경제예측이 매번 정확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할 것입니다. 아주 쉬운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물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를 정확하게 알아맞추기 위해서는 중력의 법칙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경험에 의해서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도관을 따라 흐르는 물은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상식적으로 얼른 납득이 안되는 경우는, 중력의 법칙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어야 비로소 물이 흘러가는 방향을 정확히 알아낼 수 있습니다.

◈ 이런 의미에서, <나의 경제학>이 기존 경제학보다 과학적으로 훨씬 우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나의 경제학>의 경제예측 능력을 믿으려 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내 경제예측들이 그저 운이 좋아서 어쩌다 몇번 맞춘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런데 '90년대 일본경제의 실패'가 <나의 경제학>의 우월성을 다시한번 돋보이게 해주고 있습니다. 90년대 일본경제가 왜 실패했는가를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경제학은 <나의 경제학>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 자랑도 겸해서 또한번 하려구요, 배 아파요?

◈ 일본경제의 실패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은 이미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는 설득력 있는 것들도 있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흥미로운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분석이 올바르고 적절한 것이라고 입증되기 위해서는, 미래에 닥칠 비슷한 형태의 경제위기를 예고할 능력까지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 역사란 반복된다고 합니다. 똑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비슷한 형태로 반복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들은 '90년대 일본경제의 실패'와 같은 경제위기를 앞으로도 예측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미 그것이 증명되기도 했습니다.

◈ '90년대 일본경제의 실패'는 세계대공황 때 미국경제가 실패했던 것과 너무나 비슷한 양상을 보였는데, 그것을 예측해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무엇이 어떻게 비슷한가는 잠시 거론을 뒤로 미루기로 하겠지만, 그것들이 서로 비슷했다는 점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경제전문가들은 1930년대 미국경제의 실패를 근거로 하여, '90년대 일본경제의 실패'를 경고하고 예방할 수 있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흔적은 찾아볼 길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나의 경제학>의 관점입니다.

◈ 사실은 세계대공황에 대한 이론적 규명도 거의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이 대공황과 같은 경제실패의 반복을 막아내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나는 주장합니다.

◈ 세계대공항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서 발생하고 파급되었던가는 어느 정도 파악되어 있지만, 그 과학적 운동원리의 규명은 아직까지 요원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과학적 운동원리가 대체적으로나마 일본 경제학자들에게 이해되어 있었더라면, '90년대 일본경제의 실패'는 충분히 예방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 여기에 올려진 <신용수렴을 알면 경제공황을 알 수 있다>, <대공황을 해명할 수 있으면 노벨상도 문제없다>, <생리학보다는 병리학의 발전이 빠르다>, <아직도 금융위기의 무서움을 모르는 경제학자와 경제전문가들이 있다니> 등의 글을 상기해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대공황 때 미국경제가 실패했던 것과 '90년대 일본경제의 실패'가 유사하다고 왜 내가 말했던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하지만, '90년대 일본경제의 실패'에 대한 분석방향이 근래들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특히 '90년대 일본경제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우리나라에서 그런 경향이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 일본경제의 실패'는 얼마든지 반복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니, 똑같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형태로 반드시 반복될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학자와 경제전문가들도 '90년대 일본경제의 실패'를 다각도로 면밀하게 심층분석해야 했을 것이나, 강 건너 불 구경하듯이 지나치고 있습니다.

◈ 그래서 과학적으로 터무니없는 주장들이 우리나라에서 득세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를 한번 들어볼까요? 지난 11월 6일자 동아일보의 신간안내 섹션에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라는 책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기사제목도 멋져서 "일본 쇠퇴의 첫째 이유는 경영비젼없는 정치 탓"이라는군요. 그리고 "일본 경제학자가 쓴 문명비판론"이라나요? 읽어보지 않아서 그 책을 비판할 자격이 나에게는 없지만, 그래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기존 경제학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책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읽을 생각이 전혀 없는 책을 거명하면서 너스레를 떨고 있습니다. 아참, 그 책의 저자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수리경제학자라는군요. <일본은 왜 성공했는가>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는군요. 경제수학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준 책이기도 하겠네요. 성공했을 때는 성공에만 관심을 두고, 실패했을 때는 실패에만 눈길이 보냄으로써, 이율배반적으로 원인을 찾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 먼저, 내가 아는 상식 선에서 일본경제 위기의 실상을 좀 볼까요? 그럴 것도 없습니다. <일본재생>이라는 책(한출출판사 1999년 간)의 맨뒷쪽 정진성 교수의 해설란을 인용하는 것이 더 편리할 것입니다. 위의 <일본은 왜 몰락하는가>라는 책과 비슷한 분석을 하고 있는 책에, 가장 경제학적인 분석이 실려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한울출판사 편집자의 높은 안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 잠간! <일본재생>이라는 글을 같이 썼던 사카키바라씨와 다하라씨를 나무라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라는 글을 쓴 모리시마씨를 비판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들은 일본경제 위기에 대한 여러 분석중 하나씩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나도 잘 압니다. 경제학적으로 훌륭한 여러가지 분석이 있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한 내용도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독자들에게는 <일본재생>이나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 따위의 글들만 요란하게 소개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 출판계의 한계이고, 우리 경제학계의 무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 자, 내가 찬사를 보냈던 정진성 교수의 글로 돌아갑시다. 그는 "1980년대의 일본경제가 찬탄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만큼 1990년대의 일본경제의 조락은 더욱 큰 그림자를 일본에 드리우고 있다"면서 일본 경제위기의 실상을 멋지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일본경제는 "91년 4월을 정점으로 하여 이후 하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 성장률 추이를 보면 "1991년 2.9%, 1992년 0.4%, 1993년 0.5%, 1994년 0.6%"로서 0%대의 경제성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셈입니다. 93년말부터는 잠시 "불황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으나 회복력은 대단히 미약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일본정부의 수요확대정책 등에 힘입어 성장률이 "1995년 2.8%, 1996년 3.2%로 다소 높아져 경기회복을" 보였지만, "1997년 하반기부터 아시아 통화위기의 영향 및 버블 후유증이 현재화하는 가운데 다시 침체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997년 4/4분기 이후 1998년 4/4분기까지 5분기동안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계속"되었고, 1998년에는 "마이너스 2.0%의 성장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 또한 1999년 1/4분기의 실질 GDP는 "0.1%의 증가를 보여 일본경제는 점차 플러스의 성장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여전히 민간수요가 얼어붙어 있고 기업의 과잉설비도 해소되지 않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 "결국 1990년대 들어와 근 10년 가까운 기간동안 일본 경제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장기간의 불황, 그것도 실질경제성장률이 0%대라고 하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극심한 불황이 일본경제의 몰락과 퇴조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고 그는 적고 있습니다.

◈ 경제학과 교수가 아닌 일본학과 교수가 일본 경제위기의 실상을 이처럼 정말 실감나게도 쓰셨더군요. 그래서 내가 여기에 인용했고요. 지나는 길에 여담을 한마디만 하자면, 위와 같이 남의 글을 인용하여 원고지 빈칸을 메꾸는 일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경제학>에 관한 한은 어디에서도 인용할 구문을 찾을 길이 없더군요.

◈ 처음에는 항해지도도 없이 망망대해를 헤매는 기분으로 여기저기를 뒤적였으나, 내가 읽은 거의 모든 것들이 제본스가 그의 형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처럼 "화를 내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수준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래서 원고지 빈칸을 혼자의 힘으로 매꾸는 매우 험난한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 일본 경제위기의 실체가 경영비젼 없는 정치 등의 탓이라니! 아담 스미스가 하늘에서 비웃지 않을까요? 2백년보다도 훨씬 더 긴 세월동안 진보했다는 것이 고작 그것이냐고 말입니다. 이것이 기존 경제학의 한계입니다. 경제학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외부에 책임을 떠넘기고 마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수리경제학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경제학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수리경제학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아니, 경제의 올바른 분석에 장애요인만 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 차라리 정진성 교수의 분석이 훨씬 경제학적이고 설득력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금융시스템의 동요와 경제정책의 착오에서 일본경제 장기침체의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그의 글을 길게 인용해서 그 분석의 진수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글은 일본경제의 몰락 과정을 보여주고, 그 다음에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있는데, 그 모두를 여기에 인용코자 합니다.

◈ "1980년대 후반에 이른바 헤이세이(平成) 호황시의 일본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5% 정도였다." "헤이세이 경기의 경기확대 국면이 무려 53개월이나 지속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것은 1960년대 후반의 대형경기인 이자나기 경기의 경기확대국면 57개월에 필적하는 것으로 이 시기에 일본인들은 고도성장의 재래까지 꿈꿀 정도로 장기호황에 도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헤이세이 경기는 "이른바 '버블'이 붕괴하면서 1991년 4월을 정점으로 하여 이후 하강국면으로 접어들고" 말았으며, 그 뒤의 사태전개는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습니다.

◈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일본금융시스템의 동요입니다. "일본금융시스템의 동요를 가져온 직접적인 계기는 1980년대 후반 헤이세이 호황시에 발생한 버블이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붕괴한 것이다. 버블붕괴의 후유증으로 일본의 금융기관은 거대한 불량채권을 떠안게 되고 이것이 직접적으로 금융기관의 경영을 악화시켰다"고 적고 있습니다.

◈ "정부의 두터운 보호와 규제 하에 은행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은행부도신화(銀行不到神話)'는 1994년에 일부 신용조합의 경영난과 이를 구제하기 위한 '도꾜공동은행'이란 특별은행의 설립을 통한 구제조치가 이루어지면서 사살상 무너졌다. 1995년 7월에는 도꾜의 최대 신용조합의 파산이 표면화되고, 8월에는 제2지은(地銀)의 최대규모인 효고(兵庫)은행과 기즈(木津)신용조합의 처리가 발표되어, 효고은행은 청산되고, 기즈신용조합은 도꾜공동은행을 개조한 '일본판RTC'에 업무가 인계되었다. 금융기관의 파산은 1927년의 금융공황 이래의 사건이다.

◈ 또한 1927년에는 홋카이도다쿠쇼쿠(北海島拓植)은행과 같은 대형은행이 도산했으며, 증권회사의 경영난 끝에 1997년에 산요(三洋)증권의 도산에 이어 4대 증권회사의 일익을 담당하던 야마이치(山一)증권이 도산했다. 1998년에는 일본의 세개의 장기신용은행중 장기신용은행과 일본채권은행이 사실상 파산하여 국유화되었다.

◈ 이와 같이 연달아 발생한 금융기관의 파산은 금융시스템 자체의 마비를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시스템 전체의 신뢰도에 큰 타격을 주었다. 비록 파산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거액의 불량채권을 안고 있던 대부분의 금융기관은 리스크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여 대출기피라고 할 정도로 대출에 신중해지면서 실물경제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때 세계 최강으로 불리던 일본의 은행은 이제는 오히려 일본경제의 발목을 잡는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 "1980년대에 잘 나가던 일본경제가 1990년대에 이와 같이 참담한 상황에 빠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단기적 시야에서 국제적 요인을 제외하고 국내적 요인만 생각해본다면, 최대의 요인은 버블붕괴에 있다. 다음으로 정부의 부적절한 경기대책을 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버블이라는 것은 '자산가격이 경제의 기본적 요인에서 큰 폭으로 괴리되어 상승'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가ㆍ지가와 같은 자산가격이 경제실태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 것인가를 보는 데는 몇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장 간단한 체크는 명목GDP와 비교하는 것이다. 주가ㆍ지가의 명목GDP 비(比)를 보면 1980년대 후반에는 양자 모두 큰 폭으로 상승하고, 1990년대 전반에 급락해서 거의 원상태로 돌아가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어, 이 시기의 자산가격의 움직임이 경제실체로부터 괴리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이러한 주가ㆍ지가의 큰 폭의 상승은 대규모 캐피털 게인(Capital Gain)을 발생시켰다. 1986-89년의 경우, 거의 매년 1년 분의 명목GNP에 필적하는 캐피털 게인이 발생하였다. 즉 이 4년간은 매년 일본국민 전체가 벌어들이는 총소득에 필적할 정도의 캐피털 게인이 계속 생겨난 것이다. 반면 1990년 부터는 주가ㆍ지가의 하락에 의해, 이번에는 거액의 캐피털 로스가 발생했다."

◈ "자산가격의 상승은 거액의 캐피털 게인을 발생시켜 이른바 '자산효과'에 의해 가게 및 기업 지출을 크게 증대시킴으로써, 1980년대 후반에 국내수요 주도에 의한 대형의 경기확대국면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자산가격이 1990년을 고비로 하락추세로 반전되면서 이번에는 자산효과와 완전히 반대의 메커니즘으로 경제주체의 지출을 억제하게 되었다. 이것은 '역자산 효과'라고 불리어진다. 1991년 이후 경기침체에도 이 영향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

◈ "자산가격의 하락은 여기서만 그친 게 아니다." "버블의 붕괴에 의해 기업 자산구성의 균형이 무너지고", 금융기관의 불량채권을 증가시킴과 동시에 그 수지도 악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금융기관이 떠안은 불량채권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1997년의 일본 대장성 발표에 의하면, 21조 3천억엔, 각 은행의 계산으로는 2분류(회색채권), 3분류(회수우려), 4분류(회수불능)룰 합쳐 76조엔에 달하며, 담보충당금을 포함시키면 1백조엔의 문제 채권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이러한 불량채권의 발생으로 전술한 바와 같이 경영파탄에 빠진 금융기관이 발생하고, 파탄에 빠지지 않은 금융기관은 리스크에 민감해져 안전성을 중시해서 대출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잠깐 사족을 달자면, '회색채권'은 '고정여신'으로, '회수우려'는 '회수의문'으로, '담보충당금'은 '대손충당금'으로 번역되어야 함을 참고적으로 밝혀두는 바입니다.

◈ 다소 장황하지만 여기에 굳이 옮긴 것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되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또한 90년대 일본경제의 실패와 대공황시의 미국경제 실패가 얼마나 비슷한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정책당국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은 거품경기를 일으키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내가 거명했던 <신용수렴을 알면 공황을 알 수 있다> 등의 여기에 올려진 글들을 상기해보면, 이 점은 더 명확해질 것입니다.

◈ 한편, 정진성 교수는 다음과 같이 두번째 요인을 지적했습니다. "1990년대의 불황이 장기화된 요인으로는 정부의 부적절한 정책대응도 거론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불황이 장기화됨에 따라 재정정책에 의한 경기부양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1995년경부터 경기 회복기미가 보임에 따라 정부는 1997년에 오히려 9조엔의 대폭적인 증세를 단행하였다."

◈ "이같은 대폭적인 증세는 가계에 엄청난 부담을 주면서 1997년 가을 이후 개인소비가 감소하고 이것이 경기전체의 후퇴를 촉진시켰다. 이와 같은 정책적 판단 착오는 직접적으로는 1995년경의 경기회복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와 관련되지만, 그 배경에는 재정수지 개선이 당시 최대의 정책과제였다는 점이다.

◈ 일본 재정위기는 1970년대 후반부터 심각해졌다. 1979년의 국채 의존도는 사상 최고인 34.7%에 달했다. 1980년을 재정재건 원년으로 정하여 일반세출의 절약을 통한 적자국채의 신규발생을 억제하는 방침을 취했다. 그 결과 1990년도 예산에서 비로소 적자국채 의존으로부터의 탈피를 실현했으며 국채의존도는 1991년도에는 10% 이하로 떨어지는 성과를 올렸다.

◈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서 불황 극복을 위해 6회에 걸친 경기대책을 실시하고 이 과정에서 1992년 건설국채의 증발, 1994년에는 적자공채가 발행됨에 따라 재정구조는 다시 악화되었다. 1993년경부터 경기가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자, 하시모토 내각은 재정수지 개선을 정책의 최우선과제로 하여, 1997년에는 전술한 9조엔의 대폭적인 증세를 실시하면서 재정구조개혁법을 성립시켰다. 이 법률은 2003년까지 적자국채의 발행을 제로로 하는 것을 목표로 매년도의 적자국채의 발행을 전년도보다 줄이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었다.

◈ 그러나 1995년경부터 경기회복은 기대한 만큼 강력한 것이 못되었고 전술한 바와 같이 증세에 의한 소비심리 위축으로 경기는 다시 악화되었지만, 정부는 재정구조개혁법에 묶여서 불황에 대해 기동적인 대응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 "1995년부터 회복되던 일본경제가 1997년부터 다시 극심한 불황에 빠지자, 일본 정부도 더 이상 재정수지 개선을 경기부양에 앞선 과제로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98년 4월에는 총사업비 16조엔이 넘는 '총합경제대책'이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사회간접자본 정비 7조 7천억엔, 특별감세 등의 감세 4조 6천억엔, 토지대책 2조3천억엔 등으로서, 향후 1년간의 실질성장률을 2% 정도 높일 것으로 일본 정부는 기대했다고 합니다.

◈ 이후에도 "경기후퇴가 계속됨에 따라 새로운 오부치 내각은 98년 11월 24조엔 규모의 긴급경제대책 발표"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사회간접자본 정비 8조 1천억엔, 감세 4조엔, 대출기피에 대한 대책으로서의 금융지원 5조 9천억엔, 고용대책 1조엔 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98년 3/4분기 이후 여섯 분기만에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공투자는 거의 유일하게 경기를 떠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 "한편 금융시스템의 안정화를 위한 일련의 법정비가 추진되었다. 98년 10월에는 금융재생법이 성립되어 금융시스템의 안정화를 위한 제도가 도입되었다. 특별공적관리가 가능하게 되어 장기신용은행과 일본채권은행 등 두개의 장기신용은행이 특별공적관리의 대상이 되었다. 공적자금도 30조엔에서 60조엔으로 대폭 확충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99년 3월에는 15개 은행에 대하여 7조 5천억엔이 공적자금이 투입되어 자본증강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 이상에서 길게 인용한 정진성교수의 글이 우리를 공감하게는 하지만, 경제학자라면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 버블경제가 일어났는가, 일본 경제정책이 착오를 일으켰다는 주장은 결과론적인 분석이 아닌가, 사전적으로 경제예측을 해내어 경제정책의 착오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등을 해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 <나의 경제학>의 견지에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원리적 실체규명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기존 경제학의 수준으로는 원리적 실체규명을 할 수가 없기는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길고 길게 정진성 교수의 글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인용이라면 그의 글을 읽어보도록 권하는 정도에서 그쳤을 것이나, <나의 경제학>이 등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그럼, 이제 <나의 경제학>으로 일본경제 위기의 실체에 한번 접근해볼까요? 별볼 일 없다고 느껴졌을지도 모를 <나의 경제학>의 위력을 다시 확인해볼까요? 여기에서 "다시"란 경제예측에 의해서 <나의 경제학>의 위력이 이미 확인되었다는 것을 의미함을 재삼 강조하는 바입니다.

◈ 단도직입적으로, 일본경제의 실패는 경제정책의 실패입니다. 매년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현실이 증명하듯이 일본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은 세계 최강입니다. 그 무역흑자를 기반으로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본이 미국 공채를 내다팔면 미국 정부가 부도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여전히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며 1인당 GNP도 세계 최고수준입니다. 경제정책의 실패 이외에는 일본경제가 90년대 내내 0% 대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10년간이나 침체를 거듭할 이유를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 <나의 경제학>의 눈으로 바라본 '일본경제정책의 실패'를 단순명쾌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1980년대 후반의 헤이세이(平成) 호황기의 경제성장률이 지나치게 높았고 또한 지나치게 길었는데, 일본정부는 그것을 방치하는 실수를 저지름으로써 대규모의 거품경기를 발생시켰고, 그 거품이 조만간 꺼지면 깊은 경기후퇴를 피할 수 없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 헤이세이 호황기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5% 정도였고, 경기확장 국면은 53개월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이것을 과도하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거나 이해가 안된다는 경제학자가 혹시 있다면, 그의 일본경제에 대한 안목은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경제의 고도성장기인 1955년부터 1973년까지의 연평균 성장률은 10%를 넘어섰던 기록이 있고, 이 당시 1960년대 후반의 이자나기 경기의 경기확장은 57개월이나 지속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그것은 <나의 경제학>중 <소득결정론>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지적이 나올 수 있습니다. <나의 소득결정론>은 아직까지 내 머리 속에만 있을 뿐, 이 세상에 단 한번도 나타난 적이 없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것을 이 단계에서 모두 소개할 수는 없어도, 간단하게나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 여기에서, 이미 약간이라도 소개된 바 있는 <나의 가격론>으로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가격결정론>에 의해 일정한 가격 수준이 결정되면, <가격변동론>은 그 가격 수준의 변동폭을 결정하는 것과 똑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소득결정론>에 의해 소득 수준이 결정되면, <소득변동론>에 의해 그 소득 수준의 변동폭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 아직도 이해가 어렵다면, <나의 소득론>을 다시 자연현상에 비유해볼까요? 해변가에서 바닷물이 어디까지 올라오는가를 관찰한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 운동법칙을 연구한다고 합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운동원리는 파도의 영향일 것입니다. 파도가 높게 치면 물은 해변가 높은 곳까지 이를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눈에 띄는 운동원리는 밀물과 썰물을 일으키는 달의 인력의 작용일 것입니다. 밀물 때는 높은 데까지 물이 올라오고 썰물 때는 낮은 데에 머물 것입니다. 나머지 한가지 운동원리는 지구 온난화가 미치는 영향일 것입니다. 지구가 빙하기에 들어서면 바닷물도 얼어붙어서 해변은 저 멀리까지 밀려나 있을 것이며 온난기에는 육지 깊숙히 바닷물이 차 있을 것입니다.

◈ 한 경제의 소득이 어떤 수준을 보이느냐도 위의 자연계 현상과 거의 유사하다는 것이 <나의 경제학>의 주장이며, 그 이론체계도 이 현상들과 똑같은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구 온난화의 작용원리가 <나의 소득결정론>이고, 달의 인력의 작용원리가 <나의 소득변동론>이며, 파도의 작용원리가 <나의 소득 카오스론>입니다. 이 세개의 이론들이 모여서 <나의 소득론>을 구성하고, 그것은 <나의 가격론>과 <나의 체제론>과 함께 <나의 경제학>을 구성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도록 하지요.

◈ 80년대 후반 일본의 경우, <나의 소득변동론>에서 주어지는 소득 변동폭이 <나의 소득결정론>에서 결정된 소득수준을 너무 추월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1960년대에는 <나의 소득변동론>에서 주어지는 소득 변동폭이 <나의 소득결정론>에서 결정된 소득수준을 너무 크게 추월하지는 않음으로써, 90년대와 같은 경제위기로 까지는 발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너무 어렵나요? 기존 경제학계의 용어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 너무나 쉽지요. 1960년대 일본경제는 잠재성장력이 매우 커서 10% 이상의 고도성장을 수년간 지속해도 결정적인 고장을 일으키지 않았으나, 1980년대 후반에는 잠재성장률이 크게 떨어져 있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1960년대의 절반수준에 불과한 연평균 5% 정도의 성장률을 기록하고도 거품경기와 그 후유증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켰다는 것입니다.

◈ 이제 이해가 가나요? 그럴 것입니다. 이처럼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을 나는 왜 생소한 용어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론을 들먹거리면서 어렵게만 설명했어야 했을까요? 그것은 잠재성장률이라는 용어가 기존 경제학의 이론체계 속에서는 그 이론적 근거를 도저히 찾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새 유행하고 있는 잠재성장률을 추정하는 방법도 이론적 근거를 찾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이고요.

◈ 최근(11월 4일) 한국은행은 <잠재GDP 및 인플레이션압력 측정결과>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잠재GDP를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그 발표에서 "잠재생산은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를 완전히 고용하여 달성할 수 있는 최대생산수준으로 정의되기도 하나, 최근에는 경제안정화 측면에서 추가적인 인플레이션의 압력을 유발하지 않는 생산수준"으로 정의하고 있더군요. 참 멋진 정의였습니다. 그런데 그 추정방법에 의한 추정치가 기존 경제학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더군요. 고도로 훈련받은 경제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암호문자 같은 경제수학을 동원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 위 연구보고서의 분석결과는 "1999년 상반기까지의 자료를 이용하여 추정한 최근의 잠재GDP 성장률은 4.0% 수준"이라더군요. 그리고 한국은행의 이 보고서는 "잠재GDP 성장률은 3저 호황기 이후 완만한 하락세를 나타내는 가운데, 외환위기 직전에는 대체로 6-7%대를 유지하였으나 1998-99년중 성장률은 4%대로 하락한 것으로 추정"되었다고 부연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9%를 넘을 것이 확실한 99년도 성장률은 인플레이션압력을 대단히 크게 받아야 하겠군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지요? 통화적 요인과 석유가 인상과 같은 비용인상에 의한 인플레이션 압력은 존재하지만, 수요급증과 같은 실물적 요인에 의한 물가상승압력은 그렇게 크지는 않지요? 물가상승압력이 잠재성장률 '4%'와 실제의 성장률 '9% 이상' 사이의 갭인 '5% 이상'까지 부하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경제학>의 판단이기도 합니다.

◈ 만약 작년에 잠재성장률 이하의 실적을 올렸기 때문에 금년의 성장률 '9% 이상'이 결코 높은 것이 아니라는 따위의 변명을 늘어놓는 경제전문가가 있다면, 이 사람도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까지 계단을 뛰어오르게 하면,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숨이 차서 헐떡거리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요.

◈ <나의 경제학>의 견지에서 본 우리 경제의 최근 잠재성장률을 한번 짚어볼까요? 한국은행의 분석결과와는 반대로, 환란 전에는 5%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 경제는 94년과 95년에 각각 8.3%와 8.9%라는 과도한 성장률을 기록했고, 96년에도 6.8%라는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초과수요를 발생시켜 국제수지 적자를 눈덩이처럼 키움으로써, 환란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 <나의 경제학>적 판단입니다.

◈ 이에 비해, 한국은행의 위 보고서는 91-95년 사이의 잠재성장률이 8.2%였고, 96년은 7.4%라고 분석하고 있더군요. 참, 어이가 없습니다.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는데도 초과수요가 발생하고, 대규모 국제수지 적자가 나타날 수 있을까요?

◈ 한국은행 연구가 생산함수에 의존한 것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이제는 아시겠지요? 생산함수의 계수는 안정적이지 못해서 항상 변동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인데, 이같은 사실은 한국은행만의 문제는 아니고, 세계의 거의 모든 경제학계와 경제연구기관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 어려운 이야기 할 것 없이, 상식적으로 좀 더 설명해볼까요? 경제가 잠재성장률을 넘어서는 성장률을 기록하게 되면, 물가상승압력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가 잠재성장률을 넘어서는 성장을 하게 되면 초과수요가 발생하고, 그것은 일차적으로 물가상승압력으로 나타나겠지만, 이차적으로는 수입수요의 증가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수입의 증가는 물가상승압력을 완화시키기도 합니다.

◈ 다시 정리해서 말하자면, 94년과 95년의 우리 경제는 잠재성장률을 넘어서는 경제성장을 기록하게 됨으로써, 초과수요가 발생하여 수입이 급증하고 대규모 국제수지 적자가 발생하여, 결국은 환란으로 귀결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나의 주장은 환란을 예고하면서 내세웠던 미래형 논리이므로, 틀림이 없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한국은행의 위 보고서에 나타나 있는 91-95년 사이의 잠재성장률 8.2%와 96년의 7.4%는 얼토당토않은 수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나의 주장처럼, 94년과 95년의 잠재성장률은 5%에도 훨씬 미치지 못했었다는 것이 설득력 있을 것입니다.

◈ 과거의 일이야 아무렇게나 분석한들 어떻습니까? 여기저기서 그럴싸한 핑계거리를 끌어다 대면 누가 합당한 반론을 제기할 수 있으며, 반론을 제기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미래의 일을 예측토록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것이 어떻게 귀결되는가를 보는 것이 누구의 견해가 옳은가를 판별하는 첩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제 나의 <소득결정론>에 입각하여, 우리 경제의 금년과 내년 잠재성장률을 제시코자 하니,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지켜보기 바랍니다. 단언컨데,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이제 7-8% 대까지 올라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환란을 극복하면서 그것이 크게 높아진 것입니다.

◈ 그래서 나는 여기에 올려진 <향후 2년의 경제예측 : 정부의 경제정책이 걱정이다>라는 글에서 "2천년도의 일시적인 경기조정만 무사히 넘기면 2천1년부터는 다시 고도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던 것입니다.

◈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이처럼 높아진 이유를 밝히자면, <나의 소득결정론>의 대강이나마 먼저 보여주어야 하고, 그러자면 논의가 너무 길어지고 복잡해질 것이 뻔해서, 지금 단계에서는 나의 일방적인 주장만 펼쳐놓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조만간 현실화되는 것을 기다리고자 합니다. 만약 나의 주장이 조만간 현실화되면, 그래서 <나의 소득결정론>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게 되면, 그 때에 가서 <나의 소득결정론>의 정체를 밝혀볼까 합니다.

◈ 어떻든, "잠재GDP"라는 개념은 <나의 소득결정론>에 의해 주어지는 "소득수준"과 거의 동일한 개념인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나의 경제학>에서는 그것이 이론적 제합성과 통일성을 확보하고 있어서 기존 경제학계의 추정치보다 훨씬 정확할 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 우월하다는 점을 우선 밝혀두고자 합니다.

◈ 그래서 일반인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경제학자라고 하더라도 <나의 경제학>에 미치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개념들과 논리를 전개한 것이기도 합니다. <나의 경제학>의 우월성을 자랑하자는 것이었지요.

◈ 본론으로 돌아가서, 일본 정부는 1960년대 고도성장기의 추억에 도취되어 1980년대에는 일본경제의 잠재성장률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 바람에 경기과열을 예방하지 못함으로써 거품경기를 만드는 실책을 저질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에 반해, 최근의 미국 경제는 장기간의 호황국면을 지속하면서도 아직까지는 지나친 거품경기나 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적 난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경제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나는 미국의 경제정책 성공이라는 평가를 주저치 않습니다.

◈ 한때 미국경제의 장기호황의 위험성을 지목했던 나는 미국 FRB의장의 적절한 정책적 발언들을 지켜보면서 당분간은 안심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가가 지나치게 빠르게 상승한다 싶으면, 어김없이 FRB의장이 나서곤 했던 것입니다. 인플레이션 위험성을 들먹이면서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함으로써 주가를 진정시키고 경제의 과속을 예방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현명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 내가 그를 더 높게 칭찬하고자 하는 것은 금리인상의 경제적 역기능을 최소화하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수차례 하여 경제를 진정시키고, 그래도 부족하면 그때 가서 최소한의 금리인상만 단행하여, 작은 금리인상 폭으로도 경제안정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정책적 고려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그가 <나의 경제학>과 같은 이론적 기반 위에서, 다시 말해, 경제의 운동원리에 입각하여 위와 같은 지혜를 발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세계대공황을 겪었던 미국경제의 경험이 그런 지혜를 가져다 준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사실, 경험처럼 위대한 것은 없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고통스런 경험은 우리 인간을 더욱 지혜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 일본도 세계 대공황을 겪지 않았던 것은 아닐 텐데 그런 지혜를 발휘하지 못한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1980년대 후반 일본경제는 어떤 특별한 정책적 저지도 받지 않고 경기가 과열된 것인데, 결국 그것이 거품경기로 연결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정진성 교수가 지적했듯이, 주가와 지가의 상승으로 1986부터 89년까지 거의 매년 1년 분의 명목GNP에 필적하는 캐피털 게인이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 이런 사태가 전개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면 일본정부는 사후조치라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즉, 주가와 지가의 과도한 상승은 언젠가 멈출 수밖에 없고, 이 다음에는 그것들의 급락에 따른 신용수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신용수렴에 대비하여 정책적 수단을 예비하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대비책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는 것이 나의 소감입니다. 그래서 정진성 교수가 밝힌 바와 같은 금융위기가 발생하여 일본경제를 벼랑으로 몰고 갔습니다. 아참, 신용수렴의 위험성은 이해하고 있지요? 잘 모르겠으면 위에서 내가 추천했던 나의 글들을 다시한번 읽어보길 권하는 바입니다.

◈ 90년대 들어 경기가 본격적으로 후퇴할 때도 일본정부의 경제정책은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거품경기 이후 경기가 후퇴로 전환했다면, 그 거품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성급한 경기부양조치를 들고 나섰습니다. 91년 4월 정점을 지난 일본경제가 경기후퇴를 시작한지 불과 2년도 못되어, 즉 아직도 거품이 상당한 규모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일본정부가 수요확대정책을 들고 나선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더욱 약화시킴으로써 경기회복을 늦추고 그 회복의 폭도 낮추고 말았습니다.

◈ 만약 경기부양정책이 정치적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경기가 충분히 회복될 때까지 경제를 떠받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기가 막 회복되려고 하자, 이번에는 경기를 후퇴시키는 또다른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95년 들어 모처럼 2.8% 성장률을 기록하고 96년에는 3.2%를 기록하는 등 본격적인 경기회복세를 보이려고 하던 차에, '증세를 통한 재정건전화 정책'이라는 찬물을 끼얹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1997년 4/4분기 이후 1998년 4/4분기까지 5분기동안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전에 볼 수 없었던 경기후퇴로 연결되고 말았습니다.

◈ 지금까지 90년대 일본경제의 실패에 대한 <나의 경제학>에 입각한 분석은 정진성 교수나 여타 일본 경제학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고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의 경제학>에 입각한 나의 분석은 향후에 있을지도 모를 또다른 경제실패를 예측하고 경고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내가 <나의 경제학>에 입각해서 환란을 예측했던 것이나, 내년도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을 걱정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이런 나의 주장이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말장난이나 하자는 것이냐고 비난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나의 경제학>의 실체, 그중에서도 <나의 소득론>의 실체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나를 비난하겠다면 기꺼이 감수하고자 합니다. 다만, 이점만은 밝혀두고자 합니다. 경제정책은 정확한 현실인식과 실현성 높은 경제예측에 입각해 있지 않으면 90년대 일본경제의 실패와 같은 실책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경제관료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 또 내 자랑에 정신이 없네요. 현존하는 경제이론중에서는 <나의 경제학>만이 경제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가장 실현성 높은 경제예측을 해낼 수 있으니까요. <나의 경제학>을 믿으라! 그러면 복을 받을지어다! 하하하. <나의 경제학>을 믿지 않더라도, 경제를 믿으면 90년대 일본경제의 실패와 같은 재앙은 벌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경제의 진로를 모르겠으면, 경제에 인위적인 작용을 하기보다는, 방임해두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 실제로, 경제란 충격에 대한 흡수력을 갖추고 있고 신용수렴과 같은 경제질환에 면역력도 확보하고 있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경제체가 극도로 쇠약해져 있는 상태라면 그 흡수력과 면역력도 약해져 있을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환란 전 우리 경제의 경우, 공공부문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있어서 국민경제가 그것을 부양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 그런 와중에 '신경제 5개년 계획'과 같은 터무니없는 경제정책을 추진하였으니, 환란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을 수밖에요. 특히, 94년 8.3%와 95년 8.9%라는 과도한 성장을 방치한 것도 일본경제의 실패에 버금가는 실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제체력이 극도로 약화되고 있었는데 지나치게 빠르게 달리도록 채찍질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가 그렇게도 중요한 정책목표였을까요? 한심한 사람들...... 이런 한심한 작태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의 경제학>과 '나의 경제예측'에 좀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길 고대하고자 합니다.

◈ 아참, 일본경제의 실패와 관련하여 결정적이고도 기본적인 것을 빠뜨릴 뻔했습니다. 세상사란 항상 기본적인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고 지나치는 경향이 있는데, 나도 이런 실수를 할 뻔했습니다. 일본경제는 내재적으로 실패가 예정되어가고 있었던 것인데, 그 원인은 거대한 무역흑자의 누적이었습니다.

◈ 무역흑자의 누적이 왜 일본경제의 실패를 예비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해명은 <나의 경제학>의 <나의 통화론>을 동원할 경우에 이론적 정합성을 갖추겠지만, 상식적으로도 그것의 해명의 가능하므로 <나의 경제학>을 굳이 동원하지는 않겠습니다.

◈ 국제수지 흑자가 커지면 통화가 증발될 수밖에 없어서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하게 되며,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해외투자를 늘려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환율상승에 따른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를 막기 위해서도 해외투자를 늘려야 합니다. 그래서 일본도 자연스럽게 해외투자를 선택해 왔습니다.

◈ 그런데 해외투자는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라 다닙니다. 그래야 금융기관의 경영수지의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금융기관의 경영악화 내지는 파산으로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일본이 처한 상황이 이와 같습니다. 미국에 투자했던, 특히 부동산에 투자했던 금융기관 등이 큰 손실을 입으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입니다.

◈ 이제 일본경제의 실패의 근원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아시겠지요? 아직 납득이 잘 안간다면 '국제수지 적자는 급성질환이지만 국제수지 흑자의 누적은 만성질환으로서, 그것이 지금의 일본 수준보다 더 진행하게 되면 <나의 경제학>에서조차 그 치료책이 없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교훈을 얻기 바랍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유럽의 경제패권이 어떻게 이동했는가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 역사적으로, 유럽의 해외진출이 시작되고 산업혁명이 발아한 이후, 경제패권은 폴투갈에서 스페인으로, 스페인에서 잠시 네델란드로, 네델란드에서 다시 영국으로 이동했던 것이 그것입니다. 이들 나라는 한결같이 국제수지 흑자의 누적으로 한 때는 큰 번영을 누린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생산업이 위축되고 금융업만 번창하게 되었으며, 결국은 경제패권을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경제정책 관계자들도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외환보유고를 낮추어가야 한다"고 그처럼 집착하고 강조했던 근본적인 이유를 이제는 좀 이해할 수 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