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악의 빈곤과 기아를 얘기할 때면 에티오피아의 참상을 빼놓을 수 없다. 그곳은 우리에게 굶주림에 시달려 피골(皮骨)이 상접한 어린이들을 돕자는 운동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곳을 방문해 직접 체험한 모습은 글자 그대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에티오피아는 빈곤이 인간을 얼마나 참담한 생명체로 전락시킬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금은 내란 끝에 결국 두 나라로 분리됐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의 참담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빈곤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들고, 조금만 부족해도 불평을 늘어놓는 우리의 좁은 마음을 부끄럽게 만든다. 하지만 기아와 빈곤은 먼 나라의 얘기만은 아니다.
현재의 북한도 10년 전의 에티오피아와 별반 다를 바가 없고, 20% 이상의 세계인구가 아직도 절대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IMF이후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총 가구 중 7%는 1인당 월소득이 22만원 미만인 빈곤층으로 추정된다. 빈곤은 저축을 불가능하게 하고, 이것은 다시 투자 부족을 유발한다.
투자가 부족하면 생산을 증대시키기 어렵고, 따라서 고용과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다시 소비가 줄어드는 ‘빈곤의 악순환(vicious circle)’이 나타난다.
저개발국은 이 악순환에서 탈피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선진국으로의 도약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소비는 지금까지 논의한대로 여유로운 사람들의 사치스런 행태만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빈곤 상태에서도 생존을 위한 소비는 있게 마련이고, 소득이 전혀 없는 계층도 때로는 지나친 낭비를 할 때가 있다. 절대소득수준이 낮으면 소비에서도 다른 행태가 나타난다.
소득의 절대수준이 최저 생계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면 소비가 오히려 소득을 초과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소득보다 소비가 많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소득이 증가할수록 소득증가분에 대한 소비의 증가분도 높게 나타난다.
즉 소득이 10만원 증가할 경우 소비를 7만원 증가시킨다면 한계소비성향이 70%라고 말하는데, 낮은 소득수준에서는 이 성향이 높게 나타난다. 이것은 소득수준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증가율은 평균보다 높게 나타나는 경향을 말해준다. 그러나 케인즈의 절대소득가설에서 설명되는 대로 소득수준이 낮으면 소비의 절대수준은 낮게 마련이다.
비록 현재의 소득수준은 낮아도 미래소득까지 감안해 소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젊은 계층이 중년층보다도 더 높은 소비성향을 나타내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것은 자신의 소득을 현재의 월급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평생 동안 벌 수 있는 높은 소득수준을 고려해 소비지출을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일생의 소득수준을 미리 감안해 소비수준을 결정한다고 보는 이론을 평생소득가설(life-cycle hypothesis)이라고 한다. 평생소득은 앞서 설명한 영구소득과 유사하나, 인생의 주기에 따라 소비행태를 결정한다는 측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실제 사람들의 소비 행태는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때로는 영구소득이나 평생소득에 좌우되고, 이웃의 행태에 흔들려 분에 넘치는 호피무늬 옷을 과시소비로 사들이기도 한다. 좋았던 시절의 영화를 잊지 못해 풍요로웠던 소비의 늪에서 평생을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자동차 왕으로 유명한 포드는 지독한 구두쇠였으나 포드 2세는 낭비벽이 심했다고 한다. 부자간의 대조적인 소비행태를 묻자 “그 녀석은 아버지를 잘 만났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평생소득가설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오늘부터는 낭비가 심한 아이를 꾸중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낭비를 하는 이유는 부모를 과신했거나, 그도 아니면 아마도 자신의 평생기대소득을 부모보다 높게 책정했기 때문이리라.
지금은 내란 끝에 결국 두 나라로 분리됐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의 참담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빈곤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들고, 조금만 부족해도 불평을 늘어놓는 우리의 좁은 마음을 부끄럽게 만든다. 하지만 기아와 빈곤은 먼 나라의 얘기만은 아니다.
현재의 북한도 10년 전의 에티오피아와 별반 다를 바가 없고, 20% 이상의 세계인구가 아직도 절대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IMF이후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총 가구 중 7%는 1인당 월소득이 22만원 미만인 빈곤층으로 추정된다. 빈곤은 저축을 불가능하게 하고, 이것은 다시 투자 부족을 유발한다.
투자가 부족하면 생산을 증대시키기 어렵고, 따라서 고용과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다시 소비가 줄어드는 ‘빈곤의 악순환(vicious circle)’이 나타난다.
저개발국은 이 악순환에서 탈피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선진국으로의 도약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소비는 지금까지 논의한대로 여유로운 사람들의 사치스런 행태만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빈곤 상태에서도 생존을 위한 소비는 있게 마련이고, 소득이 전혀 없는 계층도 때로는 지나친 낭비를 할 때가 있다. 절대소득수준이 낮으면 소비에서도 다른 행태가 나타난다.
소득의 절대수준이 최저 생계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면 소비가 오히려 소득을 초과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소득보다 소비가 많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소득이 증가할수록 소득증가분에 대한 소비의 증가분도 높게 나타난다.
즉 소득이 10만원 증가할 경우 소비를 7만원 증가시킨다면 한계소비성향이 70%라고 말하는데, 낮은 소득수준에서는 이 성향이 높게 나타난다. 이것은 소득수준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증가율은 평균보다 높게 나타나는 경향을 말해준다. 그러나 케인즈의 절대소득가설에서 설명되는 대로 소득수준이 낮으면 소비의 절대수준은 낮게 마련이다.
비록 현재의 소득수준은 낮아도 미래소득까지 감안해 소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젊은 계층이 중년층보다도 더 높은 소비성향을 나타내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것은 자신의 소득을 현재의 월급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평생 동안 벌 수 있는 높은 소득수준을 고려해 소비지출을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일생의 소득수준을 미리 감안해 소비수준을 결정한다고 보는 이론을 평생소득가설(life-cycle hypothesis)이라고 한다. 평생소득은 앞서 설명한 영구소득과 유사하나, 인생의 주기에 따라 소비행태를 결정한다는 측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실제 사람들의 소비 행태는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때로는 영구소득이나 평생소득에 좌우되고, 이웃의 행태에 흔들려 분에 넘치는 호피무늬 옷을 과시소비로 사들이기도 한다. 좋았던 시절의 영화를 잊지 못해 풍요로웠던 소비의 늪에서 평생을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자동차 왕으로 유명한 포드는 지독한 구두쇠였으나 포드 2세는 낭비벽이 심했다고 한다. 부자간의 대조적인 소비행태를 묻자 “그 녀석은 아버지를 잘 만났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평생소득가설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오늘부터는 낭비가 심한 아이를 꾸중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낭비를 하는 이유는 부모를 과신했거나, 그도 아니면 아마도 자신의 평생기대소득을 부모보다 높게 책정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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