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형설지공/경제경영

벤처창업학부 설치, 시류(時流)에 성급하게 편성하는 것이 아닌가?

벤처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투자자뿐만이 아니다. 관련부처 공무원도, 그리고 재벌 기업 간부도 안정된 일자리를 박차고 창업 대열에 동참하느라 야단들이다. 이에 뒤질세라 우리 학교도 벤처창업학부를 설치할 모양이다. 내년부터 신입생을 뽑는다고 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인터넷의 발달은 분명히 정보화 사회를 앞당길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적 역할을 벤처기업이 담당하게 돼 있다는 생각을 모두들 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관련 교육 단위조직을 설치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본격적으로 배출하겠다는 것이 그 설치 배경이리라. 그런데 벤처 열풍이 앞으로 얼마나 계속될 것인지? 그래서 벤처창업학부 설치가 과연 옳은 선택인지? 대학의 한 구성원으로서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나라는 외환 위기로 IMF에 코가 꿰이는 최악의 상황을 맞은 후 2년여 시간이 흘렀다. 정부는 그 동안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에 대해서는 강압적으로 합병과 매각을 추진했다. 아울러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 시장에 경쟁논리를 적용하는 경제정책도 펴나갔다. 이 과정에서 대량 실업문제가 발생했고 그 해결을 위해 정부가 벤처기업을 대대적으로 지원.육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제는 기존의 제조업을 굴뚝산업으로 비하(卑下),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그러면서 정부는 벤처기업의 육성을 유일무이한 현실적 대안으로 생각하고 지원을 일층 강화하는 추세다. 이러한 상황변화에 영합하고 싶은 우리 대학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벤처기업은 초기 창업 단계에 있는 기업으로서 고부가가치를 독점적으로 추구하는 특성을 갖는다. 때문에 비록 성공 비율(기껏해야 5% 미만)은 낮지만 일단 성공하기만 하면 엄청난 독점이윤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최근 코스닥 시장에서 이들 기업들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급상승함으로써 투자자들을 위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 노릇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어떻든 독점이윤을 추구하는, 그것도 대부분이 망하게 되어있는 벤처기업에 재정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은 정부가 '도덕적 해이' 현상을 앞장서 조장하는 꼴이 된다. 뿐만 아니라 독점을 공공연히 지원하는 것이어서 아이러니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WTO출범 이후, 세계가 정보화 사회로 변모하고 하나의 지구촌을 이뤄 가는 과정에서 우리 나라에서도 시장에 경쟁론리를 적용하는 정책을 적극 펴왔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정보화를 빠르게 수용, 시장을 경쟁구조로 유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투기를 부추기고 사회 정의와 동떨어진 독점을 합법적으로 지원하는 서로 반대되는 경제정책을 함께 추진해 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상반되는 두 개의 정책이 동시에 추진될 경우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아닌가.

정보화는 고도의 신용이다. 고도의 신용과 그 신용을 안에서 떠받치고 있는 도덕적 기반이기도 하다. 그런데 벤처는 모험이고 모험은 신용과 도덕이라는 두 축을 한꺼번에 무너뜨린다.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벤처기업은 미지의 신대륙 항해(航海)를 위해 집을 나서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사랑하는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매정하게 떠나기 마련이다. 이처럼 벤처는 도덕성이라는 부분과 신용으로 맺어진 기존의 모든 관계를 가차없이 파괴하는 곳에서 나온다. 이렇게 볼 때 벤처기업은 정보화 사회와 함께 굴러가게 되어 있는 양수레바퀴가 아님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정책적으로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명분도 없고 적절하지도 않다. 벤처 열풍도 거품처럼 조만간 꺼진다고 보아야 한다. 벤처창업학부 설치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