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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버블의 원조는 불 미시시피사

역사상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버블현상을 거론하자면, 프랑스의 미시시피 회사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루이 14세에서 16세로 이어지는 프랑스의 봉건왕조는 부패와 사치로 악명이 높았다. 법관의 취임선서문에까지 “나는 이 직책을 뇌물로 사지 않았다”는 서약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거의 모든 관직이 돈으로 매매됐던 그 당시 상황을 잘 보여 준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안고 존 로우(John Law)가 등장한다. 그는 1671년 영국의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유학했다. 그는 사람을 죽인 죄로 투옥됐으나, 가까스로 유럽 대륙으로 탈출한다. 금이 곧 돈이었던 금본위제도 하에서 금을 빚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돈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파리에서 금 대신 토지를 담보로 돈을 발행할 수 있는 제도를 고안해냈다. 돈을 쓰고 싶은 사람은 은행에 토지를 맡기고 은행은 토지를 근거로 지폐를 발행하는, 말하자면 토지본위제도와 같은 지폐제도인 셈이다.

드디어 루이 15세가 부임한 직후, 로우는 운 좋게도 왕실의 빚을 대납하는 조건으로 왕립은행의 설립권을 받아냈다. 이 은행은 토지를 담보로 은행권을 발행하고, 그 지폐는 언제라도 금으로 태환할 수 있게 했다. 미국대륙에 엄청난 토지를 가진 프랑스는 이 제도하에서 무한히 많은 지폐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금과 태환되는 조건이 니 이 지폐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러나 태환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금이 필요하게 됐다. 그래서 로우가 설립한 회사가 바로 미시시피다.

미시시피 회사는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금광을 개발하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금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부족했지만 금광개발이라는 신비의 호재에 주가는 폭등하기 시작했다. 미시시피는 돈을 모으기 위해 주식 발행을 늘려나갔고, 주식은 돈으로 바뀌어 그
은행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 돈은 왕실의 빚 갚기에 충당됐을 뿐 금광 개발에는 투자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이 거품의 끝은 어디로 갔겠는가. 지폐는 많이 풀렸지만 금광은 개발 되지 않았고, 물가는 폭등하기 시작했다. 지폐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폭락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사람들은 미시시피 회사의 주식을 돈이 아닌 금으로 태환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태환을 금지한다는 명령과 함께 왕립은행은 폭동으로 붕괴됐다.

영국의 남해회사(South Sea) 사건도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다. 당시 신 대륙인 남미와의
독점적 무역권을 전제로 설립된 남해회사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너도나도 미지의 세계인
남미와의 교역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거품을 알게 된 후 주가는 폭락했고, 결과는 프랑스에서와 같았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튤립에 열광해 튤립 공황을 겪었던 사건도 본질적으로는 모두 동일한 내용이다. 꽃의 향기보다는 투기에 휘말려 5만달러까지 치솟았지만, 역시 거품은 작은 한파에도 쉽게 꺼져버렸다.

버블은 항상 여러 사람의 희생으로 소수가 이익을 챙기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여타 범죄와는 달리 다수의 공범자는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한다. 단지 거품을 구별하는 혜안을 가진 사람만이 그 열풍을 피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남해회사 사태에 휘말려 2만달러를 날려버린 뉴튼의 말은 혜안이 없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나는 만유인력을 측정할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을 계측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