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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장미의 使者와 대리인 비용

세대에 따라 연인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요즘 신세대들은 너무 쉽고 자유분방하게 사랑을 표시하지만, 기성세대 에게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꺼내기 어려워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 다.‘쉰세대’부부들은 아직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달님이나 스치는 바람에 사랑의 메시지를 간청하던 고전(古典)의 기억에서 아직 벗어나 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서구에서도 신분에 따라 사랑을 전달하는 관 습은 큰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18세기 오스트리아 귀족들은 사랑의 메신저로‘장미의 기사’를 활용 했다고 한다. 장미의 기사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청혼의 표시로 은으로 만든 장미꽃을 전달해 주는 사람을 말한다. 스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에는 당시의 관습이 희화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부호의 딸 소피를 사랑한 오크스 남작은, 젊은 귀족 옥타비안을 자신의 은 장미꽃을 보낼 사자(使者)로 선택한다.

드디어 옥타비안은 은 장미꽃에 담겨진 오크스의 청혼을 파니 날의 딸 소피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꽃을 전달받는 순간부터 두 사람은 깊은 사랑의 묘약에 취하게 된다. 소피와 오크스 남작의 대리인은 사랑에 빠지고, 여장한 옥타비안은 남작을 조롱하기 까지 한다. 오페라는 결국 우여곡절 끝에 옥타비안과 소피가 결혼하며 절정에 이른다. 대리인인 ‘장미의 기사’가 오히려 장미를 보낸 오크스의 사랑을 빼앗아버리는 희화가 아름다운 멜로디 속에 그려져 있다.

오크스는 ‘장미의 기사’를 잘못 선택했기 때문에 은장미는 물론 사랑마저도 잃게 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이 어디 ‘장미의 기사’뿐이랴. 아무리 충복이라도 대리인은 때로 주인의 뜻과는 다른 행동을 한다. 주인과 대리인의 목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주인이 직접 처리하면 좋으련만, 시장경제 에서는 불가피하게 주인과 대리인의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에서도 주주가 주인이지만, 경영자에게 모든 경영권을 맡긴다. 주주는 주인으로서 이윤 극대화를 원하지만, 경영자는 반드시 이윤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윤보다는 시장점유율을 중요시하거나 기업규모나 조직의 확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 기도 한다.

이것은 장미의 기사가 꽃을 전달하는 것보다는 사랑을 빼앗는 일에 더 신경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주주의 이익이 침해되는 경우도 생긴다. 이와 같이 주인과 대리인 관계에서 발생되는 비용을 대리인 비용(agency cost)이라고 한다.

대리인 비용은 주인이 직접 일하지 않고 대리인에게 위임하는 모든 부문에서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정부나 국회의 주인은 국민이고, 공무원과 국회의원은 주인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대리인이 국민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긴다면, 사회 전체로는 엄청 난 대리인 비용을 수반하게 된다. 공기업이나 대기업에서도 직접 경영 에 참여하지 못하는 소액주주는 대리인인 경영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공기업의 비효율도 대리인 비용으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대리인 비용을 최소화하려면 장미꽃을 직접 자신이 전달해야만 한다. 그러나 어떻게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처리할 수 있겠는가. 결국 충성스런 장미의 기사와 그의 행동을 감시할 수 있는 감독장치가 필요하게 된 다. 기업은 물론 국회나 정부, 공기업 부문에서도 대리인의 윤리의식과 대리인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감시장치를 개발해야만 한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대리인이 주인이라는 착각 속에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착각은 자유이지만 한번쯤 대리인 비용을 챙겨볼 일이다. 행여 허울좋은 장미의 기사가 사랑은 빼앗아가 고, 부실한 빈 껍데기만 남겨놓고 갈지도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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