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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미국 경제 최장기 호황의 배경은?

국민들은 자신감과 희망에 부풀어있고 일자리는 도처에 널려있다. 기업가 정신은 따뜻한 봄날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듯 곳곳에서 피어나고 있다.” 경제전문 주간 비즈니스위크지(誌)가 지난 2월말로 107개월이란 사상 최장의 경기호황을 기록한 미국경제를 최신 특집호에서 커버스토리로 다루며 이같이 묘사했다.

지난 91년 3월부터 시작된 미 경제 확장국면은 베트남 특수로 전후 최대호황을 누렸던 61∼69년의 기간을 능가했고 이제 10년째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또한 폴 케네디 교수가 ‘강대국의 흥망성쇠’에서 지적한 “미국의 경제·군사적인 주도권이 끝났다”는 예언을 완전히 거짓말로 만들어 버렸다.

미 경제는 지난 9년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3분의 1 이상 증가했고 한해에 100만달러(약 12억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사람이 10만명을 넘어섰다. 국가의 살림살이도 흑자재정을 나타내며 국고가 탄탄해졌고 그동안 소외됐던 장애인과 조기 명예퇴직자들에게도 일자리가 돌아갔다.

이같은 경제번영으로 인한 가장 큰 미국의 변화는 국민들의 심리적 변화다. 지난 90년초 우울증과 불안감을 말끔히 씻어내며 미국인들은 일본이 월등한 기술로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고 더 이상 우려하지 않게됐다.

그렇다면 미 경제 호황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는 기업과 근로자, 정부 등 노사정(勞使政)의 합작품이었다.

지난 80년대 말과 90년대 들어 기업들은 뼈를 깎는 다운사이징(감원)을 실시했고 컴퓨터와 정보기술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 생산성을 극적으로 높였다. 대형 기업들은 지금도 혁신과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지난 1월 26일 6000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기술력을 향상시키고 회사발전에 기꺼이 희생했다.


<> 근로자들 해고불안 사라져

노동자들은 실력만 갖추고 있으면 언제든지 재취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고에 대한 공포가 사라진 지 오래다. 보스턴 연준(FRB·聯準)은 해고자가 92년보다 한달 이상 빠르게 일자리를 찾는다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워싱턴 행정부도 경기확장을 유지하기 위해 한몫 거들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감세정책을 추진해 기업가 정신을 북돋웠다. 또 20여년간에 걸친 항공, 트럭, 정보통신, 금융서비스의 규제완화 역시 경기확장의 초석이 됐다.

부시와 클린턴 대통령체제 아래에서 자본지출 활성화 법안은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해소하는 지름길이 됐다.

향후 10년간 미 재정흑자 규모는 1조달러가 예상되지만 사회안전세를 포함하면 3조달러에 달한다.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은 “재정적자는 정부의 문제해결에 대한 무능력을 나타낸 상징이었다”며 흑자기조에 의미를 부여했다.

중앙은행격인 미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지난 94년과 95년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한 것 빼고는 통화정책을 비교적 느슨하게 운용해 왔다.

미국 밖 국가들의 변화도 미 경제 확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과의 냉전종식은 상당액의 군비가 경제성장 비용으로 전환됐다. 이와 동시에 유럽과 아시아에서 무역장벽이 낮아지기 시작해 미 기업들이 이전보다 훨씬 많은 재화와 용역을 외국에서 팔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추진력은 무형의 자산이다.


<> 이민자들도 한몫

미 경제는 벤처기업들을 지원하고 똑똑한 이민자들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흡수하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지난 97년 기준 미국의 화학엔지니어는 21%가, 컴퓨터사이언스는 20%가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국립과학재단이 밝혔다. 또 무형의 자산에 투자된 돈은 구체화하기 힘들지만 지난 10년간 1조달러가 유입됐다고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경제학자 에릭 브린욜르슨이 주장했다.

미 경제가 호황 10년째로 진입하면서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기도 한다. 먼저 벤처캐피털 시장이 폭발적인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벤처투자자들은 지난해 신예기업에 450억달러를 쏟아부었고 이는 각종 아이디어들이 세계수준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초석을 만들어 주었다. 때문에 MBA 출신들도 80년대보다 10배 이상 늘어난 10∼20%가 졸업 후 곧바로 창업에 나서고 있다.

로버트 라이시 전 노동장관은 “경기확장 기간 동안 생겨난 기업의 70%가 컴퓨터·인터넷과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또한 여성기업가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여성이 사장인 기업이 92∼99년 사이 42%나 늘었고 이 기간 동안 고용창출 증가율도 102%에 달한다. 미 경제 성장과 함께 기업수익이 늘고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주식시장도 급팽창했다.

나스닥은 91년 3월 기준 지수 500에서 올해 2월 현재 4000포인트대를 나타내고 있다. 다우존스 공업평균 주가는 이 기간 동안 300%나 올랐다. 국민들도 재테크 수단으로 주식을 선호해 일반 가정의 금융자산 중 54%(98년 기준)를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 91년 이후 4000만명의 새로운 투자자들이 증시에 발을 들여놓게 됐고, 98년 기준 전체 가구의 약 50%에 해당하는 8000만명이 직접 투자하거나 뮤추얼 또는 연기금펀드로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심지어 19∼35세 중 21%가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기업들은 주식시장이 활황장세를 이어가면서 지난 9년간 5000개 이상의 기업들이 증시에 몰려와 3000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증시는 최근 수수료가 파격적으로 싼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금융 엔지니어링이 발달하면서 금리스왑과 같은 장외시장의 파생상품 규모가 전세계적으로 92조달러로 지난 92년말(25조달러)보다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사상 최장의 경기호황이 남긴 명암(明暗)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긍정적인 측면은 미국의 빈곤층이 지난 91년 10.5%에서 98년 8.5%로 떨어졌다는 것. 흑인의 실업률도 전반적으로 하락해 남자는 14%에서 7%로, 여자는 12%에서 7%로, 10대 청소년은 36%에서 28%로 낮아졌다.

또 미국 가정의 66.8%가 현재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 이는 91년 64.1%보다 3%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특히 히스패닉계는 집 소유비율이 39%에서 45.5%로, 아프리카계는 42.7%에서 46.7%로 증가했다.


<> 빈부격자는 더욱 심화

부정적 측면은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산층 가정의 수입은 지난 98년 3만9308달러로 경기확장 기간 동안 10% 올라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거의 변동이 없다.

전체 국민의 최상위 5%가 국가 전체 수입의 약 50%를 차지하지만 하위 20%는 총 수입액의 5%에 불과하다. “경기가 확장할 때 자본가는 좋지만 노동자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뉴욕대 에드워드 울프 교수가 분석했다.

또 경기는 잘 나간다고 하지만 4400만 미국인들이 의료·건강보험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시장개방에 따른 저가수입품의 유입으로 철강, 섬유 등과 같은 산업에서 수천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무역적자도 지난해 GDP의 3.4%로 달러화 약세에 악영향을 줄 정도다.

소비자 부채도 또다른 걱정거리다. 비사업부문의 파산건수는 91∼98년 사이 60%나 늘어났고 신용차입 부채는 96년 이후 2배 증가했다. 경제가 갑자기 둔화되고 수입증가율이 정체되면 파산하는 소비자들이 속출할 것이다.

그러나 미 경제를 전반적으로 밝게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 87년과 같은 증시 대폭락이 있어도 이를 막을 만큼 경제가 활기를 띠고 있어 투자자들에게 강한 신뢰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해 4·4분기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약 6%에 달했고 실업률 역시 4%로 30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병문 기자>

일부학자 "대공황때와 유사점 많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비즈니스위크는 미 경제 호황이 1920년대의 대공황을 앞둔 상황과 유사하다고 경제평론가들의 말을 인용, 경종을 울렸다.

70년이란 격차를 두고 있지만 그 당시 미 경제는 인플레가 낮고 생산성이 높아 온통 장밋빛 일색이었다. 자동차와 전자 등 신기술의 발달로 기업들의 수익은 호전됐고 주가는 급등했다. 대공황 및 90년대 국제금융위기의 전문가인 버클리대학 베리 아이헌그린 교수는 "양 시대 상황이 평행선을 이루듯 매우 비슷해 걱정이 앞선다"고 우려했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20년대에도 사람들은 1913년에 창립된 FRB가 경기사이클을 제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능력을 강하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FRB와 다른 연준(聯準)들의 정책운용이 그 당시는 옳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1929년의 주가 대폭락을 촉발해 장기불황으로 몰아갔다고
최근 학자들이 결론지었다.

피터 테민 MIT대 경제역사학자는 "20년대말 경기침체는 피할 수 없었지만 정책운용만 잘했다면 대공황은 분명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FRB는 그 이후 경제운용에 대한 노하우를 습득해 왔지만 20년대와 90년대의 유사성은 여전히 닮아있다. 대량생산에 따른 자동차 매출 급신장은 29년 경제를 최정점으로 선도했듯이 현재는 정보기술이 주도하고 있다. 정보기술지출(tech spending)에 대한 증가율은 97년 11%에서 99년 16%로 크게 늘었지만 다른 분야는 그대로다.

문제는 기술지출 신장률이 5%까지 떨어지게 되면 기술주(株) 가격이 급락하며 전체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 최근 들어 시장충격은 경기침체로 이어지지 않지만 주가 급락세는 주식투자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수입에 타격을 줘 경기침체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 미국 가정은 금융자산의 54%를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89년의 28%보다 2배 늘어난 것으로 주가급락은 가정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 또 할부구입하면서 신용차입한 부채는 지난해만 62%늘어난 900억달러에 달한다. 부동산을 담보로 한 부채는 소유한 주택가격의 43%로 경기침체기로 들어서면 부동산 디폴트가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들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인텔, AOL(아메리카온라인) 등 인터넷기업들은 가입자 확보를 위해 수익감소를 감수하며 경영전략을 펼치고 있지만 영원히 '공짜점심'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최근 기업들의 비금융부채는 해마다 10%씩 늘어 경기후퇴기에 암초로 작용할 불씨다.

이와 함께 경기하락기에는 자금이 썰물처럼 빠지며 악순환을 가속화한다.

지난해 해외에서 미국에 7200억달러가 유입됐지만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주가가 하락하면 자금이탈, 경기침체를 부채질할 수 있다. 컬럼비아대학 프레데릭 마쉬킨 교수는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적절한 통화정책이 경기침체를 막을 수 있다고 믿지만 언제든지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고 충고했다.

실제로 1929년 10월 주가의 대폭락 이후 경제가 장기간 반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기업인과 정부당국자가 알게 된 것은 1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이와 똑같이 지난 97년 아시아위기 이후 세계은행이 이를 과소평가했지만 전세계적으로 파급을 몰고 오지 않았는가.

이제 경제가 잘나갈 때 최악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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