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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노조전임자 임금에 대하여

박종규 바른경제동인회 부회장 jkpark@kosship.co.kr


IMF 관리체제 이후 우리나라에서 개혁되고 있는 조직은 금융계와 기업이다. 반면 개혁되지 않은
조직은 정당과 노동조합이다. 전자는 돈이라는 매개체가 있고 후자는 사람들만으로 구성된 조직이기
때문인 듯하다.

돈은 국경을 넘어 돌아다닌다. 그러므로 돈을 매개호 한 조직은 좋든 싫든 국제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 할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조직은 사정이 다르다. 개혁이 이루어지려면 사람의 의식이나 사람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그 게 쉽지 않으므로 개혁이 일어나기 어렵다. 어쨌던 앞으로 개혁 분야는
정당과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를 살펴보자. 이런 결정을 내린 데 대한
나름대로의 논리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경제 전체와 국제조류를 종합해보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적지 않다.

노조의 유급 전임자수는 1만1천41명(95년 현재)이다. 평균 조합원 2백30명에 1명꼴이다. 어떤
기업에서는 13명의 노조원에 2명의 유급 전임자를 두고 있다고 한다. 6백명에 1명꼴인 일본(무급)보다
많다.

그들에게 지급하고 있는 임금 총액은 연간 약 3천억원으로 추산된다. 사무실 차량 해외출장비 집기
비품 등 모든 편의제공 비용을 포함하면 물경 4천억~5천억원에 달한다. 더구나 2002년부터 기업별
복수노조가 탄생할 경우 그 비용은 훨씬 늘어날 것이다.

지난 88년 민주화 이전에는 정부가 노동조합 활동을 억제함으로써 경영자가 노동이란 요소를 거의
무시하고도 기업을 할 수 있었다. 그 대신 일하지 않는 노조간부에게 임금을 지급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후에는 노동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노조는 전임자의 대우와 수의
증가를 요구하고 사용자측은 마지못해 이를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하여 매년 전임자는
늘어났다. 노동운동가가 양산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노동운동가가 늘면 늘수록 평화적
노사관계는 정립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이것이 오늘날 한국 노사관계의 아킬레스건(腱)이다.

우리나라 기업은 세계경쟁에 몰두해도 힘이 모자라는 판에 노사관계에 역량을 소모하는 측면이 많다고
하겠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노조간부가 기업으로부터 임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국제노동계의 상식이요 원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기업으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으면서도
회사를 오히려 어렵게 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극단적인 경우일지 모르지만, 예를 들자면 분쟁의 와중에서 부상 당한 종업원이 진단서를 병원에
요구할 때 가해자가 노조원이라고 하면 보복이 두려워 의사가 진단서 작성을 거부할 정도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용자측이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을 반대하는 것은 이런 상태에서는 기업을 할 수 없다는
막다른 항변이다. 무노동 무임금이란 명분보다도 적대적 노사관계의 해소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전임자 임금은 기업이 노조간부에게 지급해 온 관행이었다. 한편 노동조합도 당연한 것으로
알고 받아 왔기 때문에 만성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관행은 관행으로 고칠 일이지 법으로 막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그러나 사용자측은 잘못된 관행을 관행으로 고치자고 하는 것은 고치지 말자는 뜻이며 따라서 법으로
규제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벌칙조항을 없애면 노사분쟁중에 임금지급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삭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조집행부도 속으로는 폐지해야 옳은 줄 알면서도 노조 재정이 빈약하다는
점이 현실론이다.

그러나 작은 기업의 노조재정을 조합비로 충당하기 힘들면 노조도 전임자수를 줄이거나 외국처럼 퇴근
후에 노조활동을 하는 것이 노조간부의 옳은 자세가 아닐까.

그러므로 현행 유급 전임제 폐지는 다른 말로 하면 노조간부의 정리해고이고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기업도 부도라는 이름의 정리해고를 당하고 있고 은행도 통폐합으로 정리해고를 당했다. 이런 마당에
노동조합만이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전임자 임금지급 요구라고 본다.

과연 노조의 이런 주장이 맞는지 국민 입장에서 생각해 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