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내륙 산업요충지로 급부상
'중부권 경제동맥' 항공.물류도시로 발돋움
*근대적 산업의 태동기
1백여 년 전 인구 2만1천7백여 명에 5일장으로 시작된 청주는 오늘날 인구 75만여명의 산업도시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19세기말(1896~1899)만해도 청주는 5일장에서 양곡이나 수제품 정도가 거래되는 수준이었으나 1920년대에 들면서 인구가 배로 늘며 상행위도 활기를 띠었다.
청주상권활성화 수단으로 약령시장이 개설돼 공주로 향하던 상인들을 강제로 청주약령시장으로 유도했으나 활기를 띠지 못하고 2년만에 폐쇄한 것이 눈길을 끈다.
당시 산업활동은 주로 농업(87.2%)이었으며 수출입활동이 이 즈음 시작됐으나 쌀 보리 담배 무명 등을 사고 파는 정도에 그쳤다.
이같은 산업활동은 미군정기에 들어 방직 인쇄등 근대적인 산업(11종)이 등장하며 청주시내에는 62개 공장에 1천2백19명(남자 6백87명, 여자 5백32명)의 근로자가 산업에 종사했다. 이는 충북제천의 산업활동에서 각 78%, 44.3%에 해당하는 비중이다.
* 청주공단 등 기간산업 확충
해방이후 6.25동란 및 4.19의거, 5.16혁명등 국내.외의 어지러운 상황하에서 우리 경제구조는 자본구성 산업구조 기업구성면에서 자립성을 갖추지 못한 채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세 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행되면서 서서히 산업활동의 토대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1차 5개년 계획기에는 농업생산력증대에 의한 농업소득 향상과 국민경제의 구조적 불균형을 시정하고 기간산업과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에, 2, 3차에는 중화학공업의 기반확립과 식량 자급자족, 그리고 수출주도형 산업화정책을 주로 추진했다. 이 결과 충북경제는 산업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충북공업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청주공업단지가 이 때 조성됐으며 70년대 말에는 대청 다목적 댐이 완공돼 내륙산업도시의 기반이 조성되었다.
이 기간동안 농업부문 취업자 수도 70년대 말 56%로 감소했으나 전국평균 36%에 비하면 아직도 높은 수준이었다. 또 산업구조도 농업중심에서 광공업 및 서비스업 비중이 높아졌으며 청주는 이 기간동안 인구증가율이 꾸준히 상승, 이 시기에 청주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중부권 중심도시로 성장
정부가 질적인 성장정책으로 눈을 돌린 이 시기 청주 인구는 83년 30만명을 넘어서 87년 40만2천여명. 94년
50만 5천여명등 수도권 인구분산정책과 지방공업 육성책이 꾸준히 추진돼 청주가 중부권의 중심도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80년 산업별 총생산액을 보면 전국은 서비스부문이 가장 높고 광공업 농림업 순이었으나 청주는 서비스 농림업 광공업순을 보였다. 그러나 90년 들어 충북 및 청주권 모두 서비스 광공업 농림업의 순서를 나태내 청주권의 산업화가 크게 진전되었음을 나타냈다.
지난 85~94년간 총생산의 실질성장률을 보면 전국이 9.3% 충북 9.8%인데 비해 청주권은 5.7%로 전국 및 충북에 비해 쳐졌다.
업종별로는 농림업이 전국(2.9%)과 같고 충북(2.2%)보다 큰데 비해 광공업은 8.9%로 전국(11.4%) 충북(14.7%)에 비해 떨어지며 서비스업도 5.9%로 전국(9.4%) 충북(10.9%)에 비해 떨어진다.
청주권이 충북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80년 55.6%에서 90년 37.9%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청주권 이외 지역의 발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1차산업 사양길
청주시의 전 호수와 인구대비 농가호수 및 농업인구는 지난 76년 6.1%와 6.7%에서 93년 2.9% 3.8%로 공업화 산업화추세에 따라 점점 감소하고 있다. 경지면적도 75년이후 감소하다 83년 행정구역확장에 따라 증가한 후 일정(4천ha)수준을 유지하는 추세.
작목별로는 식량작물 채소 과수순 이었으며 시설원예 면적이 늘어나는 추세며 농기계도 다종 다량으로 보급돼 기계화 영농이 촉진됐다.
축산업은 국민소득향상에 따라 축산물 소비량도 늘면서 사육두수가 지난 79년에 4천두정도에서 95년 8천두정도로 배 늘었으며 도축두수는 동기간 3배정도 늘었다. 반면 돼지는 소고기 소비증가에 따라 일정수준을 유지했다.
한편 농협등 1차산업관련 단체들의 활동이 활성화되며 단체수와 활동영역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80년대 2.3차산업 급성장
청주는 70년대에 공업화의 터전을 다진이래 80년대에는 수도권 과밀억제정책과 중부고속도로 개통이 맞물려 공업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특히 85년~95년 기간동안 사업체 수 및 근로자 수의 연평균 증가율이 전국평균을 상회하면서 제조업 연간 생산액이 85년 1조원을 돌파한 후 94년 4조원을 넘어서 61년 23억여원의 1천7백28배에 달했다. 이 기간 청주공단도 3단지 54만8천평이 79~86년에, 4단지 37만4천평이 87~89년에 각각 조성돼 LG그룹등 대기업 공장이 속속 입주했다.
이에따라 수출실적도 81년 3천8백여만달러에서 86년 6억5천만달러, 88년 10억6천만달러등 증가세를 보여 94년에는 24억4천여만달러로 증가했다.
이로인해 청주는 전형적인 소비도시에서 30여년만에 생산도시로 탈바꿈하며 80년대 중반이후 가장 급속한 공업화율 및 인구증가율을 기록했다.
도.소매업체 수도 지난 76년보다 3배정도 늘어 94년 9천4백여개로 늘었으며 충북내 점유율도 76년 25%에서 86년 중반부터 30%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유통업계는 백화점 대형할인매장등 대형화추세에 재래시장이 위축돼 청주시가 재래시장의 특성화 테마화등 활성화대책을 내놓는 등 재편바람이 불고 있다. 이 기간동안 여인숙은 절반정도 감소한 반면 여관은 9배 증가해 대량화 추세를 보였으며 음식업소는 10배정도, 목욕탕은 4배정도 증가했다.
*4개동단에 1백여업체 입주
지난 69년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청주공단에는 95년 기준 4개 공단에 1백45개 업체에 2만9천여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5조7천여억원어치의 생산에 연 36억6천여달러어치를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전 업체의 60%(87개 사)가 1백인미만의 영세업체며 업종별로는 조립 금속업 38%, 석유화학 19.7%, 섬유업 15.2, 식품업 12.4% 순이다.
상공 유관기관으로는 중소기업청등 4개 행정기관과 5개 정부재정지원기관, 6개 공공법인체가 설립목적이나 취지에 따라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해 주거나 기술지도나 조언 등 도움을 주고 있다.
*93년 1조원대 예금돌파
청주에 최초로 근대적 금융기관이 설립된 것은 1907년 9월 한호농공은행 청주출장소였으나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94년 말 기준 4백13개점포로 예금은행 69개, 비통화금융기관 3백44개소다.
이는 충북대비 예금은행은 50.7% 비통화금융기과은 38.7%수준으로 예금액은 70~94년중 연평균 21.1%의 증가율을 보였으며 74년 1백억원을 돌파한 후 81년 1천억원 93년 1조원을 넘어셨다.
대출금은 같은 기간 24.4%의 신장률을 기록했으며 72년 1백억원 81년 1천억원 92년 1조원을 넘어섰고 충북대비 대출금 비율은 83년 최고 78.5% 기록후 94년말 58.7%의 점유율을 나타냈다.
최근 몇 년사이 IMF한파등으로 충북은행이 합병되고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부도액수는 거액화되고 부도율은 상승하는 추세를 띠고 있다.
그렇지만 청주는 청주국제공항개항과 인근 오창테크노빌산업단지등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중부권 물류유통 중심지로 부상하며 항공도시로 급 성장하고 있다.
'중부권 경제동맥' 항공.물류도시로 발돋움
*근대적 산업의 태동기
1백여 년 전 인구 2만1천7백여 명에 5일장으로 시작된 청주는 오늘날 인구 75만여명의 산업도시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19세기말(1896~1899)만해도 청주는 5일장에서 양곡이나 수제품 정도가 거래되는 수준이었으나 1920년대에 들면서 인구가 배로 늘며 상행위도 활기를 띠었다.
청주상권활성화 수단으로 약령시장이 개설돼 공주로 향하던 상인들을 강제로 청주약령시장으로 유도했으나 활기를 띠지 못하고 2년만에 폐쇄한 것이 눈길을 끈다.
당시 산업활동은 주로 농업(87.2%)이었으며 수출입활동이 이 즈음 시작됐으나 쌀 보리 담배 무명 등을 사고 파는 정도에 그쳤다.
이같은 산업활동은 미군정기에 들어 방직 인쇄등 근대적인 산업(11종)이 등장하며 청주시내에는 62개 공장에 1천2백19명(남자 6백87명, 여자 5백32명)의 근로자가 산업에 종사했다. 이는 충북제천의 산업활동에서 각 78%, 44.3%에 해당하는 비중이다.
* 청주공단 등 기간산업 확충
해방이후 6.25동란 및 4.19의거, 5.16혁명등 국내.외의 어지러운 상황하에서 우리 경제구조는 자본구성 산업구조 기업구성면에서 자립성을 갖추지 못한 채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세 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행되면서 서서히 산업활동의 토대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1차 5개년 계획기에는 농업생산력증대에 의한 농업소득 향상과 국민경제의 구조적 불균형을 시정하고 기간산업과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에, 2, 3차에는 중화학공업의 기반확립과 식량 자급자족, 그리고 수출주도형 산업화정책을 주로 추진했다. 이 결과 충북경제는 산업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충북공업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청주공업단지가 이 때 조성됐으며 70년대 말에는 대청 다목적 댐이 완공돼 내륙산업도시의 기반이 조성되었다.
이 기간동안 농업부문 취업자 수도 70년대 말 56%로 감소했으나 전국평균 36%에 비하면 아직도 높은 수준이었다. 또 산업구조도 농업중심에서 광공업 및 서비스업 비중이 높아졌으며 청주는 이 기간동안 인구증가율이 꾸준히 상승, 이 시기에 청주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중부권 중심도시로 성장
정부가 질적인 성장정책으로 눈을 돌린 이 시기 청주 인구는 83년 30만명을 넘어서 87년 40만2천여명. 94년
50만 5천여명등 수도권 인구분산정책과 지방공업 육성책이 꾸준히 추진돼 청주가 중부권의 중심도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80년 산업별 총생산액을 보면 전국은 서비스부문이 가장 높고 광공업 농림업 순이었으나 청주는 서비스 농림업 광공업순을 보였다. 그러나 90년 들어 충북 및 청주권 모두 서비스 광공업 농림업의 순서를 나태내 청주권의 산업화가 크게 진전되었음을 나타냈다.
지난 85~94년간 총생산의 실질성장률을 보면 전국이 9.3% 충북 9.8%인데 비해 청주권은 5.7%로 전국 및 충북에 비해 쳐졌다.
업종별로는 농림업이 전국(2.9%)과 같고 충북(2.2%)보다 큰데 비해 광공업은 8.9%로 전국(11.4%) 충북(14.7%)에 비해 떨어지며 서비스업도 5.9%로 전국(9.4%) 충북(10.9%)에 비해 떨어진다.
청주권이 충북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80년 55.6%에서 90년 37.9%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청주권 이외 지역의 발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1차산업 사양길
청주시의 전 호수와 인구대비 농가호수 및 농업인구는 지난 76년 6.1%와 6.7%에서 93년 2.9% 3.8%로 공업화 산업화추세에 따라 점점 감소하고 있다. 경지면적도 75년이후 감소하다 83년 행정구역확장에 따라 증가한 후 일정(4천ha)수준을 유지하는 추세.
작목별로는 식량작물 채소 과수순 이었으며 시설원예 면적이 늘어나는 추세며 농기계도 다종 다량으로 보급돼 기계화 영농이 촉진됐다.
축산업은 국민소득향상에 따라 축산물 소비량도 늘면서 사육두수가 지난 79년에 4천두정도에서 95년 8천두정도로 배 늘었으며 도축두수는 동기간 3배정도 늘었다. 반면 돼지는 소고기 소비증가에 따라 일정수준을 유지했다.
한편 농협등 1차산업관련 단체들의 활동이 활성화되며 단체수와 활동영역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80년대 2.3차산업 급성장
청주는 70년대에 공업화의 터전을 다진이래 80년대에는 수도권 과밀억제정책과 중부고속도로 개통이 맞물려 공업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특히 85년~95년 기간동안 사업체 수 및 근로자 수의 연평균 증가율이 전국평균을 상회하면서 제조업 연간 생산액이 85년 1조원을 돌파한 후 94년 4조원을 넘어서 61년 23억여원의 1천7백28배에 달했다. 이 기간 청주공단도 3단지 54만8천평이 79~86년에, 4단지 37만4천평이 87~89년에 각각 조성돼 LG그룹등 대기업 공장이 속속 입주했다.
이에따라 수출실적도 81년 3천8백여만달러에서 86년 6억5천만달러, 88년 10억6천만달러등 증가세를 보여 94년에는 24억4천여만달러로 증가했다.
이로인해 청주는 전형적인 소비도시에서 30여년만에 생산도시로 탈바꿈하며 80년대 중반이후 가장 급속한 공업화율 및 인구증가율을 기록했다.
도.소매업체 수도 지난 76년보다 3배정도 늘어 94년 9천4백여개로 늘었으며 충북내 점유율도 76년 25%에서 86년 중반부터 30%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유통업계는 백화점 대형할인매장등 대형화추세에 재래시장이 위축돼 청주시가 재래시장의 특성화 테마화등 활성화대책을 내놓는 등 재편바람이 불고 있다. 이 기간동안 여인숙은 절반정도 감소한 반면 여관은 9배 증가해 대량화 추세를 보였으며 음식업소는 10배정도, 목욕탕은 4배정도 증가했다.
*4개동단에 1백여업체 입주
지난 69년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청주공단에는 95년 기준 4개 공단에 1백45개 업체에 2만9천여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5조7천여억원어치의 생산에 연 36억6천여달러어치를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전 업체의 60%(87개 사)가 1백인미만의 영세업체며 업종별로는 조립 금속업 38%, 석유화학 19.7%, 섬유업 15.2, 식품업 12.4% 순이다.
상공 유관기관으로는 중소기업청등 4개 행정기관과 5개 정부재정지원기관, 6개 공공법인체가 설립목적이나 취지에 따라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해 주거나 기술지도나 조언 등 도움을 주고 있다.
*93년 1조원대 예금돌파
청주에 최초로 근대적 금융기관이 설립된 것은 1907년 9월 한호농공은행 청주출장소였으나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94년 말 기준 4백13개점포로 예금은행 69개, 비통화금융기관 3백44개소다.
이는 충북대비 예금은행은 50.7% 비통화금융기과은 38.7%수준으로 예금액은 70~94년중 연평균 21.1%의 증가율을 보였으며 74년 1백억원을 돌파한 후 81년 1천억원 93년 1조원을 넘어셨다.
대출금은 같은 기간 24.4%의 신장률을 기록했으며 72년 1백억원 81년 1천억원 92년 1조원을 넘어섰고 충북대비 대출금 비율은 83년 최고 78.5% 기록후 94년말 58.7%의 점유율을 나타냈다.
최근 몇 년사이 IMF한파등으로 충북은행이 합병되고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부도액수는 거액화되고 부도율은 상승하는 추세를 띠고 있다.
그렇지만 청주는 청주국제공항개항과 인근 오창테크노빌산업단지등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중부권 물류유통 중심지로 부상하며 항공도시로 급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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