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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제도는 짱, 효과는 쫑(1)

나는 강의 시간에 "우리 나라는 좋은 나라."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교과서에 나온 문구로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외웠고 지금도 기억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뒤에 단서를 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제도 측면에서는."
우리 나라는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를 거의 다 흉내내고 있다. 선진국이 지녀야 할 4대 보험제도(산재보험, 의료보험, 국민연금, 실업보험)도 우리 나라에 모두 구비되어 있을 정도이니 우리 나라는 선진국이며 그야말로 좋은 나라이다.
그러나 좋은 제도만 갖추었다고 내용 면에서도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옷을 입었다고 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제도는 어떻게 되든 내용만 좋으면 더 바람직하다. 그런데 우리는 제도만 갖추면 내용까지 해결되는 것처럼 외국의 제도를 무작정 도입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제도라도 도입해서 강제로 내용(효과)를 거두고자 하는 목적이겠지만 주변 여건이나 그 제도의 영향을 받고 수행해 나갈 당사자나 국민들의 마음가짐이 부족할 경우에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효과는 없으며 부작용만 초래할 뿐이다.
요새 전국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국민연금도 대표적인 예이다. 그 제도야 누가 뭐랄 수 없을 정도로 좋다고 알려져 있다.(비록 나는 무식의 소치로 국민연금 제도의 도입을 반대하지만.) 그러나 전제 조건은 모든 가입자의 소득이 정부에 의해 "거의" 정확하게 파악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봉급생활자를 제외하고 그 소득이 정부에 의해 파악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금을 거두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국세청조차 수십년 동안 자영업자의 소득 추적에 시간과 돈을 투입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경제학에서는 '비대칭적 정보'라고 한다. 본인은 자신의 소득을 알고 있지만 상대방(정부)은 그 소득을 알고 있지 못해 정보의 양이 비대칭적인 경우를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영업자는 정부가 자신의 소득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이용해 자신의 소득을 적게 신고하려 하고, 반대로 정부는 많이 추정하는 경향이 있어 양측의 싸움은 끊이지 않게 마련이다. 이런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좋은 제도만 정치일정에 맞추어 서둘러 도입하려 한 것이 당국의 실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