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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현대투신 사태 뒷 얘기

현대투신사태를 기억하시지요. 지난 주 노동절(5월1일)과 어린이 날(5월5일)이 묘하게 이어져 현대투신사태 와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느긋한 휴일을 즐기셨을 줄로 압니다. 휴일이 겹친 때문인지 현대투신 사태가 지난 4일 정몽헌 회장의 사재출자 등의 발표 이후 잠잠해지고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이슈(Issue)가 사라졌다고 본질마저 사라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잠잠한 시장이 언제 또다시 일본 북해도의 활화산(活火山)처럼 폭발할 지는 아무도 모를 입니다. 때문에 현대투신사태를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갖가지 방안을 도출해야 합니다.

이처럼 다소 심각하게 말씀 드리는 것은 '현대사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개인적인 판단 때문입니다.

'참여연대, 현대투신운용 펀드 불법운용 제기(4월24일)', '정부, 양대 투신사(한국·대한)에 공적자금 추가 투입하되 현대투신 지원방안 유보(4월25일)', '현대 계열사 전 종목 폭락, 외국인들 현대주 집중 매각, 증권가에 현대 유동성 위기설 확산(4월26일)?. 현대사태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만 현대그룹은 초기 진화에 실패했습니다.

현대투신사태의 본질은 현대투신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대그룹 전체적인 금융권의 신뢰도 하락에서 발생한 문제이고, 현대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분쟁이 원인(遠因) 또는 근인(根因)으로 작용한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더욱이 현대사태가 봉합된 상황에서도 현대그룹은 현대투신의 문제 차원에서 해결했다고 자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수술대도 들어가지 않은 채 응급처치약 한 봉지 먹고 병원은 퇴원한 것이 아닌 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현대 사태는 시작일 뿐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더 많지 않나........벌써부터 출입기자로서 걱정이 앞섭니다.

현대사태가 시작일 뿐이라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현대사태의 해결과정에서 현대그룹 측이 보여 준 어설픈 시장관(觀)이 그것이었습니다.

현대 측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태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보다는 개인 대주주의 보호막 치기에 급급했습니다.

현대그룹 출입기자들이 대안이 나오기를 학수고대 할 때 현대 측은 무엇인가 내놓을 듯이 제스쳐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뚜껑을 연 대책안은 그 동안 현대그룹의 주장해 왔던 계열사 매각·분리·청산 등의 그룹구조조정안이었고, 사외이사제 강화 등의 단골 메뉴였습니다. 특히 지배구조개선이라는 본질에는 사외이사 강화와 투명한 이사회운영이라는 단골메뉴라는 맞불작전으로 희석시키려 했던 게 고작이었습니다.

이 같은 대책안들이 이번 사태를 총지휘한 그룹 구조조정위원회(위원장 김재수 현대건설 부사장)에서 심사숙고 끝에 내놓은 것이고 보면 그룹 수뇌부의 회장 받들어 모시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은 현대투신이 4월 27일 공식 발표한 알맹이 없는 대책안을 기억하실 겁니다.)

무엇인가 발표하고 싶어도 '오너'와 관련된 것이다 보니 윗선으로 올라갈 수록 차(車) 떼고, 포(包) 떼는 식의 결국은 싱거운 장기판이 되고 말았지요.

둘째, 현대투신문제에 대한 원인에 대한 현대와 정부-국민들간의 시각차이입니다.

의사가 진단을 잘해야 처방이 나오고, 처방이 나와야 약을 제대로 쓰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사태 초기 현대의 진단은 이렇습니다. "현대투신의 부실은 현대의 잘못이 아니라 정부가 떠넘긴 한남투신의 인수 때문이었고 정부가 한남투신인수조건으로 내건 자금지원의 불충분 때문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부실덩어리 한남투신을 정부에서 현대에 떠넘길 때 저리의 증권금융지원조건을 제시했지만 금리가 떨어지는 바람에 자금지원효과가 반감된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옳은 얘기입니다. 하지만 현대투신의 문제는 한남투신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국민투신의 잘못된 인수와 고수익을 노리고 대우채를 무리하게 편입시켰다가 8000억 원을 까먹은 경영상의 잘못된 판단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세 번째, 시장에 대한 현대의 오만함입니다.

현대는 지난 4일 대책안을 발표하면서 정몽헌 회장의 사재출자(1000억 원 상당)와 함께 1조7000억 원의 현대계열사 담보를 현대투신에 예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순자본잠식분이 1조2000억 원(정확하게는 1조1900억 원)이니 1조7000억 원의 담보를 내놓겠다는 얘기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담보가치의 평가에 대해서 현대는 지극히 현대다운(?) 발상을 펼쳤습니다. 현대는 4만5000원에 실제 거래 중인 '현대정보기술'을 9만9000원으로, 1만5000원 선의 경쟁사 주식이 있는데도 '현대택배'는 4만9500억 원으로, 영업을 갓 시작단계인 '현대오토넷'의 주식가치를 6만8750원으로 평가했습니다.

저는 현대 담보가치에 대한 평가를 시장에서 알아보기 위해 당일 열심히 증시관련 애널리스트들을 접촉했습니다. 그 결과 한결같이 "코스닥 올라간다고 주식 값이 오르겠느냐?"면서 "장외에서 9000원 가던 아시아나항공 주식이 지금 3000원 대에 거래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부정적인 견해가 주류였습니다. 이 말은 현대 역시 코스닥에 등록되면 현재의 시장값어치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시장에서 암시한 대목이었습니다.

현대는 '시장이 현대편일 것'으로 해석했지만 저는 '시장은 현대편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느꼈지요. 현대 주식을 시장에 내놓으면 우리 주식은 9만9000원 간다는 식의 가치평가가 이번 현대사태를 보다 장기화로 가져간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대사태가 잠잠해진 지금 시장의 평가, 국민들의 시선을 어떻게 분석하고 새로운 타개책을 내놓을 지 궁금합니다. 이번 사태로 20%나 떨어진 주식가치를 다시 올리려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데 어떠한 묘수를 던질 지 기대가 됩니다.

"현대는 지금 현대 리스크라는 마이너스 프리미엄을 해결해야 한다." 한 애널리스트의 얘기입니다. 정말로 그 동안 쌓아 온 현대의 명성이 '마이너스 프리미엄'이라는 최악의 부메랑으로 현대를 향해 되돌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