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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제도는 짱, 효과는 쫑(2)

주주총회 시즌을 맞이해 상장회사마다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있는 반면 작년에 선임된 사외이사 가운데 많은 사람이 물러나고 있다. 사외이사제는 IMF 외환위기의 주범 가운데 하나인 기업의 경영을 선진국 형으로 바꾸기 위해 정부가 강제로 도입한 제도이다. 선진국 기업이 활용하고 있으므로 우리 기업도 이를 의무적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외이사제가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그 제도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받아 들일 마음이 없고, 여건이 성숙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외국에서는 사내 이사들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외부인의 시각을 참고하여 경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영진이 자발적으로 사외이사를 고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나라 경영진은 사외이사제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사외이사를 통해 경영을 효율적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없고 의무비율만 충족시키겠다는 소극적 입장이다. 이들이 경영에 간섭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기업과 가까운 사람, 친분이 있는 사람, 우호적인 사람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고 있으며 경영진은 이들이 회의실에서 거수기 역할만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상당한 보수를 주고 있으니 회사 경영에 간섭하지 말고 고마워해라."라는 생각이 그 밑에 깔려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비록 기업이 사외이사제라는 의무 제도를 충족시키더라도 정부가 애초에 기대했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사외이사제 역시 다른 많은 제도와 마찬가지로 빛 좋은 개살구꼴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데에는 회사 경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외이사가 우리 나라에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 것도 한 요인일 수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사외이사제가 수요자의 필요에 의해 나타난 것이 아니라 강제된 것이라는 데에 있다. 수요를 강제로 억제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수요를 강제로 창출하려는 것도 문제이며 시장경제의 원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사외이사제를 모든 상장회사에 강요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사외이사를 스스로 도입하게 만들 수 있는 여건을 시장에 마련해주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고 이것이 선진 정부 경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