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형설지공/경제경영

하이에크의 자생적 질서에 대해

I. 머리말: 문제의 인식
하이에크의 폭넓은 연구활동은 철학 및 사회과학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연구업적들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은 그가 사회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사회를 진화되고 있는 일련의 규칙체계(evolved system of rules)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라고 부르고 있다.

하이에크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회제도는 인간의 의도적이고 합리적인 계획 또는 의지에 의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되고 있는 사회의 질서를 의도적으로 바꾸거나 새롭게 설계하려는 시도-예컨데 사회주의제도를 달성하려는 노력 등-는 무모한 짓이며 오히려 아주 위험한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하이에크가 경제를 보는 시각의 두드러진 특징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그가 경제문제를 항상 조정 또는 협력(coordination)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많은 사회적 현상을 자생적 질서의 결과로써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자들은 오랜동안 시장에서 경제주체들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자연스럽게 조정되고 협력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하이에크는 시장이란 것 자체를 바로 각 개인의 계획을 조정해 주는 메카니즘으로 인식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런 시각을 형성하는데는 어떤 사회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바로 "자생적 질서"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는 homo economicus를 가정하고 있는 신고전학파 경제학과는 아주 다른 분석의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하이에크의 경제에 관한 이런 새로운 시각을 잘 살펴 보면 그것들은 결국 하나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그것은 바로 지식에 관한 문제 (problem of knowledge)이다. 하이에크의 연구에는 그의 지식에 대한 아주 독특한 인식이 깔려 있다. 그의 지식에 대한 인식은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1) 지식이란 기본적으로 사회의 모든 가치에 체화되어 있고, 2) 사회의 구성원들은 이러한 사회의 가치를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이에크의 지식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사회진화에 있어서 과학적 또는 이성적 지식의 역할이 매우 미약하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 결과 그는 사회주의와 같은 중앙집권적 조직을 정당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또한 사회진화의 과정에서 정부나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질서란 과연 무엇이며, 이러한 질서는 어디에서 오는가? 다시 말해서 이런 자생적 질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이에크는 사람들이 따르는 행동규칙(rules of conduct)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규칙이 "좋은" 사회질서를 낳게 하는가? 규칙의 선택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하이에크는 비록 어떤 종류의 진화된 질서는 그 자체로써 바람직한 것이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된 질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가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항상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말하는 적절한 행위준칙 (adequate rules of conduct)이란 과연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인 데, 사실은 그는 여기에 대해서 명쾌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 사실, 하이에크는 그의 전생애를 통해서 자생적 질서 (특히 시장)에 관한 논의를 전개시켜 왔다고 할 수 있는데, 어떤 행위준칙이 이러한 자생적 질서에 도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 명쾌하 게 밝히고 있지 않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 논문에서는 그의 지식의 주요한 형태를 암묵적 (tacit, implicit, practical) 지식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하이에크의 자생적 질서에 관한 이론을 더 자세히 살펴 보 고 이 자생적 질서가 그가 말하는 암묵적 지식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는 그의 지식에 관한 이론을 살 펴 보면서 그가 왜 자생적 질서에 도달하게 하는 적절한 행위규칙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알아 볼 것이다.



II. 자생적 질서
하이에크는 질서를 "다양한 요소가 결합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그 전체의 일부를 인지하면 나머지 부분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거나 또는 나머지 부분에 대한 예측이 정확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경우"라고 정의하고 있다 (Hayek 1973, p. 36). 이러한 질서의 개념을 그는 가끔 시스템(system), 구조(structure), 또는 패턴(patter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이에크의 출발점은 어떤 사회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이 과연 인위적 (artificial)이고 어떤 것이 자연적(natural )인 것인가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될 수가 없다는 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원래 어 떤 것이 인간의 의도에 의한 산물이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가를 설명하려고 하는 고대 그리이스의 철학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하이에크는 어떤 사회현상은 단순히 자연적이냐 아니면 인위적이냐 하는 것 만으로는 설명하기가 충분하지가 않다고 인식 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사회현상의 예로써 하이에크는 시장, 인간의 언어, 잔디밭 위에 난 지름길 등을 들고 있다.

따라서 하이에크는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면서 3분법을 제안하고 있다 (Hayek 1973, pp. 20-22). 하이에크는 이 세 번째의 자생적 질서라는 것을 인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중간쯤의 것으로 규정지으려 고 하는 것 같다. 즉 이는 인간의도의 결과인 조직(organization)도 아니고 자연적인 것의 산물도 아닌 그 중간의 어떤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자생적 질서라는 것은 조직과는 달리 인간행위 (human action)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인간의도(human design) 의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1)

하이에크는 그의 논의의 핵심에 자생적 질서와 조직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자생적 질서와 인위적 질서의 차 이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는 자생적 질서의 특징을 복잡성(complexity), 추상성(abstractness), 그리고 비의도성 (nonintentionality)의 세가지 특징을 들고 있다 (Hayek 1973, p. 38).

자생적 질서는 인간의 두뇌에 의해 완전히 인식되고 제어될 수 없다는 점에서 아주 복잡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잡성은 대 부분의 사회질서가 인간의 이성(reason)이 아니라 인간의 신념(beliefs)과 가치판단(judgments)에서 초래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또한 자생적 질서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별 요소들의 추상적 시스템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질서의 존 재는 단순한 관찰이나 감각기관에 의해서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신적으로 그것들을 재구성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자생적 질서는 인간이 만든 어떤 의도(design)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용될 수가 없 다. 다만 자생적 질서는 인간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규칙화해 주기 때문에 때로는 유용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 유용성은 인간행 동의 기대된 결과라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하이에크는 이 자생적 질서가 어떤 의도 또는 목표의 달성에 활용될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질서란 과연 무엇이며, 이러한 질서는 어디에서 오는가? 다시 말해서 이런 자생적 질서는 어떻게 나타 나는가? 하이에크는 사람들이 따르는 행동의 준칙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III. 행동규칙
하이에크에 의하면 사람들의 행위를 지배하는 어떤 반복성 또는 규칙(regularities or rules)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선천적(innate) 또는 유전적(genetic) 규칙이고 다른 하나는 후천적(learned) 또는 문화적(cultural) 규칙이다. 선천 적 규칙성은 생물학적 진화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며 후천적 규칙성은 인간의 문명의 진화에 의해서 형성된다. 물론 이 두가지 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하이에크가 특히 관심을 갖고 강조하는 것은 바로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규 칙이다.

선천적 행동규칙은 비교적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Hayek, 1979, p. 160) 문화적인 규칙과 완전히 분리시킬 수가 없다. 이렇게 서로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선천적 규칙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하이에크는 선 천적 규칙들이 문화적 규칙에 예속된다고 한다. 예컨데, 그가 주장하는 것을 보면, 조그만 원시적인 부족은 아주 복잡한 사회로 발전해 나가는데 이는 바로 규칙이 문화적으로 진화되어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회진화의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런 문화 적 규칙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적 현상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는 문화적 규칙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화적 규칙은 선천적 규칙들 보다 훨씬 빨리 변화해 나간다. 그리고 문화적 규칙은 대부분 주로 모방( imitation) 을 통해서 확산되고 이것은 사회진화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문화적 행동규칙은 따라서 어느 사회를 지배하는 모든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 이 문화적 규칙은 두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번째는 인간의도에 의하지 않고 만들어진 것들이고 (전통, 관습, 규범, 등), 두 번째는 인간의 의도에 의해서 설 계된 것들이다 (법제도, 조직 등).

행동규칙들은 어떻게 변화해 가는가? 이는 오랜 시간에 걸친 선택의 과정(process of selection)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한 다. 하이에크는 자생적 질서를 진화의 과정으로써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하이에크에 의하면 자생적 질서는 행동준칙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진화과정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에크가 자생적 질서와 진화를 같이 본다고 해서 문화적 진 화를 생물학적 진보와 똑 같이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이에크는 문화적 진화와 생물학적 진화 사이에는 근본적인 세가지 차이 점이 있다고 한다. 1) 문화적 진화는 후천적으로 학습된 (learned) 규칙을 전달하는 것이고, 생물학적 진화는 단지 선천적인 규 칙만을 전달하는 것이다. 문화적인 요소들은 학습과 모방에 의해 전달되기 때문에 생물학적 진화 보다는 훨씬 빨리 진행된다. 2) 문화적 진화는 단지 생물학적인 어미들로부터의 특성 전달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다수의 다른 개체들로부터의 특성이 전달됨 으로써 형성된다. 3) 문화적 진화는 특히 그룹의 선택 (selection of groups)을 통해 이루어진다 (Hayek, 1988, p. 25)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 사이에는 위와 같은 차이도 있지만 비슷한 요소도 많이 갖고 있다. 그는 특히 변이와 선택(var iation and selection) 과정을 중심으로 비교하고 있다. 변이의 과정(process of variation)이란 새로운 행동의 패턴이 생성되 는 과정을 말한다. 이러한 변이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이에크는 새로운 문제에 부딪치는 개인이 이 문제들을 많은 시행착 오(trial and error)들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과정에서의 행태를 주목하고 있다. 이런 과정은 개인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 려고 하는 욕구와 의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본다. 그러나 변화된 환경에 성공적으로 잘 적응한 개인들이 어떤 사회적 목표 (so cial goal)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회는 그들에게 어떤 이득을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과정을 통해서 궁극적으 로는 많은 해결방안들 중에서 선별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선별과정은 결국 적절하지 못한 해결방안들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IV. 행동규칙과 자생적 질서
하이에크의 이론 전개에서 행위규칙의 역할은 두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행위규칙이 질서의 생성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다. 사람들의 행동이 기본적으로 행위규칙에 따라서 이루어진다는 조건이라면, 자생적 질서는 인간의 의지나 이 의지를 알려주 는 의식적인 지식에 의해서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생적 질서는 단순히 행위규칙에 따라 행동하는데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 따라서 이런 자생적 질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형성된다.

두번째로는 사회변화에 따르는 모든 질서는 이러한 행위규칙과 공존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이성적 판단 만에 의해서 도출된 결론들이 만일 행위규칙들에 의한 결론들과 상충된다면 선택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Hayek 1978, p. 82). 따라서 행동지침으로써 오로지 이성만 있는 중앙집권적 조직은 자생적 질서에 비해 열등하다는 것이다. 하이에 크에 의하면 자생적 조정의 우월성은 바로 확산된 정보에 있다고 본다. 정보가 사회에 쉽게 확산되는 이유는 각각 개인들이 다 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못한 자기 환경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일 뿐 아니라, 또한 각기 다른 사람들이 다른 행동규 칙에 따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경제적 활동을 조직하기 위해서 주로이성적이고 명시적인 지식에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는 데 그런 조직에서는 각종의 행동규칙에 체화되어 있는 암묵적 지식을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

자생적 질서가 행동규칙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사실이 반드시 모든 행동 규칙이 그 질서를 형성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은 아니다 (Hayek 1978, p. 8). 그렇다면 자생적 질서를 형성할 수 있는 행동규칙의 특성은 어떤 것인가? 그런데 하이 에크는 이 질문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는 다만 만일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규칙을 서로 받아들이 지 않는다면 질서는 형성되지 않을 것이라고만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하이에크는 형성된 자생적 질서가 항상 좋은 것 만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문화적 선택의 결과가 반드시 사회에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모든 질서가 항상 사회에 이로운 것만은 아니며, 따라서 어떤 질서가 사회에 이로운 것이 되려면 이는 적절한 행위규칙에 의해 형성된 질서라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자생적 질서인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각 개체가 알맞는 행위규칙에 의해 유도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Vamberg 1986). 한편, 하이에크는 또한 진화를 발전의 과정(progressive process)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그가 간접적으로 질서를 사회에 이로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 다는 말이다. 이러한 두 상충되는 문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바로 문제이다.

하이에크는 한편 어떤 질서는 분명이 다른 질서보다 더 낫다고 말하고 있다. 즉 어떤 행위규칙들 또는 규칙들의 결합은 다른 질서보다 우월한 질서를 생성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질서를 선택하는 집단은다른 집단에비해서 더 번성한다고 한다 (Hayek 1978, p. 9). 만일 어떤 질서들 사이에 차이가 존대한다면, 이러한 우월한 질서를 생성시키는 행동규칙은 어떤 규칙인가? 다시 말해서 행동규칙의 우위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행동규칙의 선별과정은 어떤 것인가?

하이에크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논의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그의 연구를 재구성하여 분석하고 있는 Vanberg(1986) 및 민경국(1996) 등에 의하면 그는 개별적 선별과정과 그룹선별과정이라는 서로 상충되는 설명을 간접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우선 개인주의적 접근은 그 과정을 각 개체의 모방(imitation)에 의해 설명하고 있다. 즉, 몇몇의 혁신적인 개인에 의해서 새로운 규칙들이 생성되고 다른 사람들은 그 몇몇의 혁신적인 사람들이 번성하는 것을 관찰하기 때문에 그들을 모방한다는 것이 다. 이러한 설명은 방법론적 개인주의(methodological individualism) 접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선별의 단위가 개인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선별과정에 대한 설명은 그룹선별과정인데 이는 어떤 그룹이 그 규칙의 선택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는 이득을 지적하고 있다. 하이에크는 행동규칙들이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발전해 왔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발전은 바로 집 단의 선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새로운 규칙들이 확산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 새로운 규칙이 더욱 효과적 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또는 그 규칙들이 사회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계산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 규칙들이 그 그룹들로 하여금 성공적으로 인구를 증가시킬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Hayek 1988, p. 16). 그런데 이러한 설명 은 방법론적 개인주의와는 상충된다. 왜냐하면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의해 설명이 되려면 규칙의 선택에 관한 결정은 각 개인에 게 주는 이득에 의해서 결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그룹 선별과정에 대해서 민경국(1996, pp. 236-37)은 하이에크 사상 중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요소라고 지적하고 있다.



V. 지식
하이에크는 경제문제를 신고전학파에서처럼 자원의 효율적 배분문제로 보지 않고 생산적 자원인 지식과 정보를 찾아내는 문제 로 인식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경제문제는 각 개인이 개별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개인들 사이에 분산되어 있는 지식과 정보 를 어떻게 전달하고 활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시장을 지식과 정보가 수집, 교환, 분산, 집중되는 "정보 시스템"으로 보고 있다.

하이에크는 인간의 지식을 두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과학적 지식(scientific knowledge)인데 이는 전문가들이 그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지식이며 이미 잘 정리되고 조직화 되어 있는 지식을 말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특수상황적 지식 (knowledge of particular circumstances)인데 이는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잘 조직화 되어 있지 않은 지식이다. 이는 그 지식을 갖고 있는 개개인만이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지식(예를 들어 기능공의 숙련 등)이다 (Hayek 1945).

하이에크는 물리적 질서(physical order)와 현상적 질서(phenomenological order)를 구분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현상적 질 서는 물리적 객체의 특성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물리적 세계에 대한 우리 마음의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리 고 이러한 경험들이 각자가 갖고 있는 외부 세계에 대한 주관적인 지도(subjective map)에 결합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도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의 감각이 오로지 이미 존재하는 감각적 연결체계 (preexistent sensorial connection system) 안에서만 중 요한 의마를 갖는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경험에대한 인식은 이 체계 밖에서는 일어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하이에크는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이에크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특정한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행동을 수행하려고 하는 의지는 그 행동을 하게 한 목표가 달성되고 나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행동 방식은 그 개인의 의견에 의존한 다.

이러한 행동은 전통이나 관습에 의해 전달된 행동규칙에 따른다. 다시 말해서 각개인의 행동은 이성에 의해서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또한 행위규칙에 의해서 나타나는 질서는 각 개인에 의해서 제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러한 질서를 제어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이들을 합리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창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이러한 창조를 위해서 이용되는 지식을 명시적(explicit) 지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명시적이고 언어로 표현되는 지식(verbal knowledge)은 우리가 갖고 있는 전체 지식의 극히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학습(learning)이라는 것도 반드시 이런 언어적 지식의 전달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실질적(practical) 지식은 명시적 지식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따라서 인간이 따르고 있는 행동규칙에는 많은 암묵적 지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그것을 창조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단지 어떤 반복성이 있는 규칙의 결과들만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떤 패턴을 인식한다는 사실이 그것들을 이성적, 논리적, 과학적으로 설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이런 반복적 규칙의 관찰이 우리의 직관(intuitions)을 형성하는데 도움 을 줄 뿐이다. 문제는 이런 행동의 규칙을 이성적으로 또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항상 가능하다고 믿는 것 자체가 아주 잘못된 생 각이라는 것이다.

하이에크가 설정하고 있는 인간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에서 가정하고 있는 homo economicus-완벽한 계산에 의해서 행동하는-와 는 아주 거리가 먼 인간이다. 그가 설정하고 있는 인간은 그들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있어서의 합리성(rationality)의 역할은 Herbert Simon이 말하는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가정하는 인간에서보다도 훨씬 더 미약하다. Simon에 의하면 신고 전학파적 합리성은 완벽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데 인간이 갖고 있는 지극히 제한된 지식과 게산능력 때문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세상을 완전하게 인식할 수가 없고, 따라서 신고전학파적 의미의 합리성은 가정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도 물 론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는 더 나아가서 인간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행동의 규칙들을 제어하거나 창 조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하이에크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짖는 행위규칙이 제어하거나 창조할 수 없다고 인식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하이에크가 왜 어떤 행동규칙이 질서를 형성하게 되는 것인지를 명시하지 않는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하이에크가 어떤 종 류의 행동규칙이 자생적 질서를 형성하게 되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한다면 이는 이런 행동규칙을 이성에 의해서 설명이 가능하고, 이를 창조 또는 재조직하여 다음 세대에게 전달해 줄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규칙들은 이성이 제어할 수 있는 범위의 밖에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다 (Hayek 1988, p. 23). 이런 행동규칙들은 본능(instinct)과 이성(reason) 사이 에 있다고 본다. 우리가 갖고 있는 전통이나 관습은 이성에 의해서 창조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하는 이성이라는 것 자체가 바로 전통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Hayek 1988, p. 21). 이성은 전통의 근원이 아니라 전통의 산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성를 가지고 사회의 미래를 결정짖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VI. 맺는 말과 나머지 문제
위에서 논의된 문제점들을 포함해서 민경국(1996, pp. 236-37)은 하이에크의 그룹선별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지적하 고 있다. 1) 그룹 선별론은 그의 사상체계를 상실시키고 있다. 2) 행동규칙의 우위성을 검증할 기준이 불명확하다. 3) 경재을 행동규칙들 사이의 경쟁으로 파악하지 않고 그룹간의 경쟁으로 파악하고 있다. 4) 그룹 선별론으로는 보통법(common law)의 진 화를 설명할 수가 없다.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하이에크 연구의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진화경제학(evolutionary economics)에 서는 이 문제들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이에크의 연구를 우리에게 많은 문 제들에 대한 해답을 주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문제를 인식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또한 하이에크가 말하는 문화유전에 관해서는 최근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을 통해서 폭넓게 연구되어야 할 것이고 특히 최근에 논의가 되기 시작하는 "memetics"의 전개 상황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필자의 개인적인 직감으로는 동양사상의 중요한 핵심 중의 하나인 노자 철학과 불교의 세계관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 볼 수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연구를 뒷날의 연구과제로 남겨 두고싶다.


--------------------------------------------------------------------------------

참고문헌
민경국. 1996. {진화냐 창조냐}, 한국경제연구원.

Hayek, F. A. 1945. "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 American Economic Review, Vol. 35, 519-30.

Hayek, F. A. 1973, Law, Legislationm and Liberty, vol. 1: Rules and Order, London: Routledge and Kegan Paul.

Hayek, F. A. 1976. Law, Legislationm and Liberty, vol. 2: The Mirage of Social Justice, London: Routledge and Kegan Paul

Hayek, F. A. 1979. Law, Legislationm and Liberty, vol. 3: The Political Order of a Free People, London: Routledge and Kegan Paul

Hayek, F. A. 1978. New Studies in Philosophy, Politics, Economics, and the History of Idea,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Hayek, F. A. 1988. Fatal Conceit, University of Chicago Press.

Langlois, R. N. 1992. "Orders and Organizations: Towards an Austrian Theory of Social Institutions," in Austrian Economics: Tensions and New Directions, ed. by B. J. Caldwell and S. Bohem, 165-83, Kluwer Academic Publishers.

Simon, H. A., et al. 1992, Economics, Bounded Rationality, and the Cognitive Revolution, Edward Elgar.

Vamberg, V. 1986. "Spontaneous Market Order and Social Rules: A Critical Evaluation of F. A. Hayek's Theory of Cultural Evolution," Economics and Philosophy, vol. 2, 75-100.

'형설지공 > 경제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화의 기능과 경제  (0) 2001.01.25
계약수정의 경제적 분석  (0) 2001.01.25
Winner-Take-All Markets of Arts and Culture  (0) 2001.01.25
J.R.Hicks의 경제사이론  (0) 2001.01.24
[자본론]3권 내용  (0) 2001.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