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형설지공/입시

2006 인터넷 실명제 논란

1. 이슈의 발단

올해 3월9일 국회에서는 인터넷에서라도 개인이 정치적 의견을 밝히기 위해서는 실명으로 해야 한다는 새로운 선거법이 통과되었다. 이 법안이 통과되자 다음날인 3월10일 148개의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인터넷 실명제 거부’ 성명을 발표하였다. 또한 실명제 통과의 두 주역인 원희률 의원과 김학원 의원의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공표하였다.

또한 주요 포털 사이트를 포함한 인터넷 매체들도 모두 반대하고 나섰으며, 국가인권위원회까지도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이 법안이 ‘정치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국민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시도’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인터넷 언론사, 시민·사회단체, 네티즌들은 3월18일 헌법재판소에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개정 선거법 제82조의 6항(인터넷 언론사 게시판, 대화방 등의 실명 확인)과 제261조(과태료)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서를 제출했다.


인터넷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장단점을 살펴보고 어느 편이 더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판단해서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


2. 인권 보호 차원에서 반드시 시행해야

먼저 찬성하는 입장의 근거를 살펴보자. 우선 피해자의 인권 보호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심한 욕설이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인터넷에 유포함으로 해서 당사자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고 심하면 자살에 이르게까지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가 실시되면 이런 피해 사례는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둘째, 여론의 조작을 막을 수 있다. 지난 8월22일 <한겨레> 보도를 보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팬클럽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 ‘사이버 전사대’라는 이름의 조직을 만들어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여론몰이를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공략 대상 사이트를 108개로 나눠 전담조를 편성하고 책임자까지 지정하는 등 조직적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비단 이 경우뿐 아니라도 정치적으로 어떤 목적을 가진 이런 사이버 사조직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쇼핑몰 등에서 소비자를 가장해 특정 회사의 고용인들이 제품 사용 후기를 올려서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경우도 여론 조작의 한 행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불법 광고나 바이러스 유포 행위가 줄어들 것이다. 스팸 메일로 불법 광고나 바이러스를 유포하거나, 각종 게시판에 광고문을 도배하는 일 등이 실명제가 실시되면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청소년들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유포되는 선정적인 광고 메일이 줄어들어 건전한 인터넷 문화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성이 지니는 장점이 있지만, 올바른 사이버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라도 인터넷 실명제는 반드시 실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3.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

이제 인터넷 실명제에 반대하는 입장의 근거를 살펴보자.

우선 표현의 자유를 들 수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억눌려 살았던 국민들이 인터넷을 통하여 자유롭게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고 여론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전자 민주주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일들이다. 청와대, 전자 정부, 그리고 지방자치 단체 홈페이지 등에는 시민들의 정치적 소견이 여과 없이 올라오고 있다. 따라서 실명제 때문에 시민들이 정치적 소견을 밝힐 방법이 제한된다면 이것은 엄연히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인터넷 언론사, 시민·사회단체, 네티즌 등이 청구한 헌법소원 소장에는 인터넷 실명제가 헌법 제21조인 표현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 제17조인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제11조 평등권, 제15조 직업의 자유, 제10조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실명제가 도입되면 개인의 사이버 활동 기록이 모두 남기 때문에 ‘끔찍한 감시 사회’를 초래할 것이며 과도하게 수집된 개인 정보가 유출되어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사이버 공간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헌법도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모든 국민에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4. 사이버 폭력 근절을 위한 불가피한 조처

그럼 이제 ‘인터넷 실명제’가 사이버 폭력 근절을 위한 불가피한 조처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 보자.

지난 6월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아 얼굴이 인터넷에 공개되어 수모를 겪은 일명 ‘개똥녀 사건’과, 지난 5월 실연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여성의 사연이 미니홈피에 공개되면서 그 남자 친구의 개인정보가 인터넷에 유출돼 욕설 등에 시달리다 회사까지 그만둔 사건이 있었다. 그 밖에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연예인 엑스파일 사건’, ‘창원 왕따 동영상 사건’ 등 인터넷을 통해 정신적 고통을 받은 이들이 많아지면서 인터넷의 역기능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윤리운동 단체인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이 8월11일 제1회 사이버 양심 포럼을 열고 ‘사이버양심 5적(敵)’을 발표했다. 포럼에서는 ① 욕설·비방 등 사이버 언어 폭력, ② ‘야동’, ‘야사’ 등 청소년 유해정보 유포, ③ 허위 사실·유언비어 퍼뜨리기 등 사이버 명예 훼손, ④ 아이디 도용 등 개인정보 침해, ⑤ 다른 이의 창작물을 퍼나르는 저작권 침해 등을 사이버 양심 5적으로 선정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적 수준이고, 정보통신(IT) 강국임을 자처하면서도 사이버 통신 문화는 매우 낙후한 것이 사실이다. 인터넷의 익명성으로 인한 네티즌들의 피해 사례가 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인터넷 실명제’ 도입 찬성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 각종 여론 조사 기관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초기에 찬성과 반대 비율이 6:4이던 것이 요즘은 8:2까지 벌어져 찬성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여론에 힘입어,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과 여당은 ‘인터넷 실명제’ 도입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이버 폭력 때문에 겪는 피해자들의 명예 훼손과 정신적 고통을 생각하면 표현의 자유 이상으로 피해자들의 ‘인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경찰청에 접수된 각종 사이버 범죄 건수는 2002년에 11만8868건, 2003년에는 16만5119건에 달했으며 2004년 올해에는 이미 20만건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정통부는 10월까지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와 사이버 폭력행위 처벌 강화, 신속한 차단 방안 등을 뼈대로 한 인터넷 실명제 관련 법과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