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경에 처한 경제학자들
경제학의 기원
우리는 경제학자들을 무시해 버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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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란 힘든 직업이다. 기업 이사진들은 경제학자들이 비용이나 이익을 정확하게 계산해 내지 못한다고 공격한다. 박애주의자들은 경제학자들이 비용이나 이익을 너무 꼼꼼하게 따진다고 비난한다. 정치가들에게 있어 경제학자들은 희생 없는 번영이라는 공약을 좌절시키는 걸림돌이다. 가장 재치 있는 몇몇 문필가들마저 경제학자들은 모욕하는 데 인색하지 않으니 쇼(G. B. Shaw : 영국의 극작가, 소설가, 비평가)와 칼라일(T. Carlyle : 영국의 사상가, 역사가)이 그 대표적 인물들이다. 칼라일이 경제학을 '우울한 과학(dismal science)'이라 명명한 이래 경제학자들은 수난의 세월을 살아왔다.
경제학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보통 그들은 나쁜 소식의 장본인이 아니라 단순한 전달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하는 소식이란 인간은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에덴동산에 살고 있지 않다. 이 세상은 젖과 꿀이 넘쳐 흐르는 곳이 아니다. 더 맑은 공기와 더 빠른 자동차, 더 큰 저택과 더 넓은 공원, 더 많은 일과 더 많은 휴식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 중에서 어느 것이 나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 줄 뿐이다.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하지만 경제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하라고 지시하지는 않는다. 선택의 결과는 예측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물론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그냥 전달자의 역할에서 그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은 갖가지 별명으로, 예컨데 스미스는 얼뜨기(bumbler), 밀은 탁상공론가(egghead), 케인스는 풀류도락가(bonvivant) 등으로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의도마저 비웃어서는 안 된다. 케인스도 지적했다시피 거의 모든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방법을 추구하려 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경제학자들이 받는 비난의 화살에는 분명 아이러니한 감이 있다.
일례로 마셜은 경제학을 빈틈없는 논리로 짜여진 과학과 인류에게 헌신하는 정신이 조화를 이룬 전문직으로 보았다. 의학, 법학, 신학을 각각 육체적 건강, 정치적 건강, 정신적 건강을 겨냥한 세 가지 신성한 전문직으로 본 중세인들의 전통에서 한발 나아가 마셜은 경제학을 인류의 물질적 건강을 위한 네 번째 성직(聖職)으로 만들고자 했다.
실질적 쓰임새라고는 없이 무미건조한 수학으로만 점철된 경제학과 세심한 이론적 숙고(熟考)가 결여된 감정적 과격주의의 경제학이라는 그 당시 경제학 연구의 이 두 바람직하지 못한 주류(主流) 사이에서, 마셜은 중재의 실마리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가 케임브리지 대학에 창설한 교과과정은 예리한 과학적 사고력과 넘치는 열정을 겸비한 인재들을 끌어들였는데, 케인스가 바로 그 노력의 최대 결실이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세계와 현실세계는 가장 든든한 고리는 정치이다. 실제로 경제학은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 출충한 경제학자들 대부분은 관직에서 활동했었고, 특히 리카도와 밀의 경우 영국의회에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들에게서 우리는 과학적 관심사의 불꽃뿐 아니라 굽이치는 열정의 파도를 발견한다. 그들이 남긴 미적분과 통계학의 난해한 기호들의 숲에서 우리는 이따금씩 굵직한 느낌표들을 발견한다.
경제사상사는 정부와 경제학자들 간의 벌어진 충돌과 협력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스미스가 유럽 왕실들과 상인들 사이의 정경유착을 매도했을 때 근대 경제학은 태동했다. 스미스(A. Smith), 마르크스(K. Marx), 베블런(T. B. Veblen)등의 경제학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상인들이 정치를 도구삼아 실리를 취한다는 사실을 셋 다 일찌감치 감지한 점이다. 한 유명한 공식성명에서 스미스는 상인들이란 모였다 하면 소비자들을 대한으로 계략을 꾸미는 무리들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사실 오늘날 시장의 자유를 소리 높여 찬양하는 상공회의소 연설자들도 막상 시장 독점권이나 정부와의 전매특약, 기타 정부의 수익보장조치 등의 특혜가 주어졌다 하면 '얼씨구나'하고 춤을 출 것이다.
고맙게도 정치가들은 이러한 상인들의 욕구에 항상 응해 주지 않았다. 처칠(W. Churchill)의 전기(傳記)에는 처칠이 노동당 당수를 하원(下院) 건물 밖 공중화장실에서 만났을 때의 이야기가 나온다. 때는 2차세계대전 직후, 자본 국유화와 노동조합 결성을 통해 지상천국을 건설하리라는 사회주의 노동당의 공약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날로 악화일로를 걷던 때였다.
먼저 노동당 당수가 들어와서 소변기 앞에 섰다. 잠시 후 처칠이 같은 볼일로 들어와서는 그 노동동 당수를 보자마자 멀찌감치 떨어져서 다른 쪽 끝에 섰다. "오늘따라 뭐 서먹서먹하게 느끼는 점이라도 있소, 왜 그리 멀리 가슈. 워싱턴 양반?" 하고 노동당 당수는 물었다. "보호본능이외다." 하고 처칠이 으르릉거리며 받았다. "당신은 뭐든지 큰 것만 봤다 하면 국유화시키려 들지 않소!"
역대 대통령들치고 경제원리를 제대로 이해한 이는 거의 없었다. 케네디(J. F. Kennedy) 대통령은 언젠가 이렇게 실토한 적이 있다.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oard)이 재정정책(Fiscal Policy)이 아닌 금융정책(Monetary Policy)을 관장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자신이 기억해 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연방준비은행장 마틴(W. M. Martin)의 성(姓)이 금융(Monetary)의 첫 자와 동일한 M자로 시작한 덕분이라고, 그것이 참알이라면 케네디는 볼커(P. Volcker)나 그린스팬(A. Greenspan) 같은 이름의 사람들은 그 은행장 자리에 기용할 수 없었을 거라는 얘기가 된다.
선거운동 기간은 경제학자들에게는 시련의 기간이다. 정치가들이 국민들에게 더 풍성한 밥상과 더 든든한 국방을 동시에 약속할 때마다 경제학자들은 불을 보듯 뻔한게 초래될 재난들을 경고해야 한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의 그 어떤 냉철한 논리로 선거 후보자들의 달콤한 약속들과 책임 못질 호언(豪言)들이 일순간에 휩쓸어 버린다.
사실 유세연설을 앞둔 후보들이 부딪치는 어려움은 황금시간대의 텔레비전 프로를 편성해야 하는 프로듀서의 고충과도 같다.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게 경제를 설명해야지 주말 연속극에 나오는 동네 아저씨 수준보다 더 높은 언어나 개념들을 구사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일부 후보들은 이에 오히려 안도의 숨을 내쉬겠지만.
왜 정치가들과 경제정책 고문들 사이에는 서로 오해의 소지가 많을까? 아마도 이는 경제학자들이 독특한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하기 대문일 것이다. 그 언어의 이름은 모형(model)이다. 복잡한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어느 경제현상의 수만 가지 기능요인들 중 가장 주된 것들을 추출, 그 현상의 간략한 축소판을 만들어 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 내 국민 소비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로 기후, 인플레이션, 선거유세, 미국 올림픽팀의 출전성적, 혹은 국민들의 음악적 취향, 체중, 소득 등을 열거했을 때 분명 이 중에는 그 영향력이 가장 큰 요인들만을 분리, 중요도를 매기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그 나머지 무수한 부차적 요인들을 제외시킨 모형을 설계해야 한다. 그 모형은 간단할 수 있어야 한다. 최상의 경제학자란 가장 영속성 있고 가장 경고한 모형의 설계사를 뜻한다.
물론 과학자들 역시 모형을 만든다. 과거 오랫동안 물리학은 뉴턴의 인력(引力) 모형에 의존했고 천문학은 아직도 코페르니쿠스의 모형을 쓰고 있다.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탁월한 책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에서 저자 쿤(T. Kuhn : 미국의 과학사가, 패러다임이라는 개념 제시)은 이러한 과학 모형들의 발달사를 추출해 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순수과학 분야들보다 경제학의 유독 더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신장(腎臟)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를 상상해 보자. 엑스레이 결과, 그 의사는 신장의 위치가 결장(結腸)으로부터 2.5㎝ 아래쯤에 위치한다는 것을 파악한다. 그러나 의사가 막 절개하기 시작한 순간 신장이 슬그머니 위치를 바꾸어 버렸다고 상상해 보라! 경제학의 고충이 바로 여기에 있다. 경제학자가 갖가지 원인들을 분리시킨 후 그 영향력들의 평가를 시도할 때면 이미 그 영향력들은 변해 있다.
인간관계나 사회기관들이 변천함에 따라 경제학 탐구의 대상 그 자체도 모습을 바꾸어 버린다.
경제학은 '순수' 과학이 아니다. 하지만, '쉬운' 과학 역시 아니다. 너무나 유동적인 학문이기에 자료들을 꽉 붙들고 연구해 볼 수 없다는 데에 경제학의 어려움이 있다. 경제학의 대가란 무릇 기사작위(騎士爵位)나 나아가 성인(聖人)의 자격에 요구되는 능력보다 더 대단한 능력들을 갖춘 인물이라고 언젠가 케인스는 역설한 바 있다.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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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기원
어디서부터 경제사상사의 공부를 시작할까? 성서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성서에서는 토지, 노동, 자본 등에 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성서의 내용에서 신중한 분석보다는 강제적 계율들이 더 많다. 애덤 스미스가 그의 이름과 윤리적 생활태도는 성서로부터 얻었을는지 몰라도, 성서로부터 얼마나 많은 경제원리에서의 영감을 얻었을지는 의문이다.
재산의 사유를 찬양하고 부(富) 자체를 위한 부의 집적을 질타한 바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나 아리스토 텔레스의 경제학 이해는 시간은 희소자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정도에 그쳤다. 그리하여 그는 쓸데없는 학문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일찌감치 철학공부와 알렉산더 대왕의 교육에 시간을 투자했다.
결국 오늘날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의 거인으로 군립한다. 하지만 대학 서양사 강의실의 수많은 아리스토텔레스 팬들을 분개시킬 위험을 무릅쓰고 단언하건대,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라는 학문의 연보(然譜)에는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중세 신학자들 역시 경제문제들을 토론했었다. 카톨릭 스콜라학자들은 시장 내의 정의와 윤리문제로 고심했다. 그들은 '적정가격(just price)에 대한 교리를 고안해 냈고 고리대금에 관한 교회의 입장을 개량했다.
구약성서에는 동족끼리 이잘르 받고 돈을 빌려 주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이 있지만, 중세 신학자들은 이자를 위험부담, 기회비용, 인플레이션, 불편 등의 세부 품목들로 분리하여 정당화시키는 등 금지규법에 구멍을 뚫어 빠져나갈 곳들을 마련하여 정당화시키는 등 금지규법에 구멍을 뚫어 빠져나갈 곳들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여기서 신학자들은 괴로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만일 상행위에 부정적인 정통과 경전해석을 주장했다가는 그들의 말은 효력을 상실할 것이다. 대다수 신도들은 천벌 받을 각오로 고리대금 행위를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각종 상행위들을 모두 눈감아 주었다가는 교회 지도자로서의 신용은 여지없이 실추되고 말 판이었다.
결국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필요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은 경제학 원리들을 연구했다. 신학자들은 단순한 의무의 일환으로서 그들의 어린 양들에게 경제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의무란 그 어린 양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지 더 나은 생활수준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었다. 종교개혁으로 그 양테들마저 나뉘어졌을 때 그 의무는 한층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 버렸다.
중상주의자들 역시 경제학사에 나름대로의 발자취를 남겼다. 중상주의자들은 대개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유럽왕실을 보필하였던 궁정 고문들과 문인들이었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경제학 교과서'도 없었고 각자의 관심 역시 달랐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칼, 네델란드 등의 왕족들의 경제운영에 과한 자문역을 맡아 보았다.
오늘날 우리는 그 중상주의자들의 충고에서 몇 가지 공통된 견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국가는 왕실에 충성을 다하는 소수에게 독점권, 특허권, 보조금, 기타 특혜들을 부여함으로써 국가의 위계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둘째, 국가는 정복(征服) 전쟁들을 치르기 이해서는 무엇보다도 부유해야 하며, 국부(國富)의 척도라 할 수 있는 각종 귀금속들과 원료들을 얻기 위해서 식민지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셋째, 국가는 무역에 관하여 완제품의 수출량이 수입량을 초과하도록 제재를 가해야 한다. 꾸준한 무역수지 흑자는 채무국들로부터 황금을 빼앗아 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중상주의 아래 유럽 각국은 국토를 확장했다. 동시에 각국은 길드(guild), 독점권, 관세 등에서 나온 경제력을 몇몇 정계의 총아들에게 분배함으로써 내부 경제의 규제강화를 꾀했다. 정부의 규제와 간섭은 국가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프랑스 루이 14세때의 재무장관 콜베르(Jean-Baptite Colbert)의 경우, 철저한 제품생산 규제를 시행하였으며 길드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했다. 콜베르는 국왕아래 최고 권력의 과시로 언젠가 디종(Dijon) 지방에서 생산되는 모든 직물을 정확히 1,408수(繡)이어야 한다고까지 공표한 적이 있다.
우리들 경제사상사 공부하는 이 중상주의자들을 비판대 위에 올려 놓았던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스미스는 중상주의자들의이론을 다음의 몇 가지 측면에서 공격하였다.
첫째, 중상주의자들은 부(富)의 기준을 화폐나 귀금속의 보유량으로 보았다. 그러나 스미스는 참된 부의 기준은 국민들의 생활수준이어야 한다고 논박했다. 쌓아둔 금 궤짝들이 쌀 가마니들로 항상 바뀌어지진 않는 것이다.
둘째, 스미스는 부란 그 나라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측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돈을 소수 정치인들과 그들에게 아첨하는 상인들 무리에게만 돌아가게 하는 술책들은 국민 생활수준 향상에 역효과를 가져 올 뿐이다.
셋째, 스미스는 개인적 의욕, 정열 발명이나 개혁에의 의지 등이야말로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볼때, 정부차원의 보호나 독점권과 같은 특혜들을 선택된 소수에게 베푼다는 중상주의자들의 정책은 국민 참여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였다. 그리하여 근대 경제학은 세상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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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제학자들을 무시해 버려야 할까?
애덤 스미스 이래 인류역사가 배출한 대 경제학자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세상에는 주요 경제학 이론들로 설명 못 할 현상들이 허다하다. 일례로 1970년대 초의 세계적 경기침체 현상이나 노동시장 문제를 놓고 경제학자들은 아직껏 씨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이론의 기본원리들을 무시하는 국가나 개인은 어리석은 도박행위를 하는 셈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안정된 중상주의 시대를 꿈꾸는 시대착오적 열망으로 보호무역의 장벽을 드높이 쌓아나가는 국가는 결국 소비자들은 국민들에게 그 피해를 끼치게 된다.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농작물의 판매가를 높이 책정하는 국가는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힐 뿐 아니라, 결국에는 여분의 농작물들을 창고에서 썩히게 된다. 경제학자라면 이러한 점들에 대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들에게 귀기울일 정치가들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정부가 경제학자들의 조언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경제학자들은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 경제학자들은 우리들 생활수준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다.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점화된 이래 인류는 항상 미래는 당연히 현재보다는 나을 것으로 간주해 왔다. 우리는 현재상태를 최저한도로 잡는다. 허나 역사상 끊임없는 지속적 발전의 유래는 없다. 매년 선진국들이 간신히 새로운 경제암흑기를 요리조리 모면해 나갈 때마다 우리는 당연히 '그러려니' 하고 만다. 하지만 사실상 우리는 인류 발전역사의 기록을 갱신해 나가는 중이다.
조르주 두비(Georges Duby)의 11세기 유럽묘사르 들어보라. 이렇게 끔찍한 세월이 상대적으로 풍요로웠던 고대 그리이스, 로마, 바빌로니아, 이집트 시대 이전이 아닌 이후에 닥쳐 왔다는 사실은 우리를 섬뜩하게 한다.
현대 선진 사회가 이런 전율할 상황으로 돌변한 날이 있을까? 아니 제3세계 몇몇 나라의 끔찍한 수준으로라도 뒷걸음질 칠 때가 도래할까? 케인스 아니라 케인스의 할아버지라도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이러한 암흑의 도가니를 피할 수 있게끔 우리를 계몽하는 것이 대경제학자들의 목표였다는 사실이다.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가르침들이 호소력을 잃지 않고 우리에게 와닿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들 이론의 결정(結晶)들은 오늘날에도 하나같이 실질적 값어치들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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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드 부크홀츠(Todd G. Buchholz)「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pp.19-29 -
경제학의 기원
우리는 경제학자들을 무시해 버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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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란 힘든 직업이다. 기업 이사진들은 경제학자들이 비용이나 이익을 정확하게 계산해 내지 못한다고 공격한다. 박애주의자들은 경제학자들이 비용이나 이익을 너무 꼼꼼하게 따진다고 비난한다. 정치가들에게 있어 경제학자들은 희생 없는 번영이라는 공약을 좌절시키는 걸림돌이다. 가장 재치 있는 몇몇 문필가들마저 경제학자들은 모욕하는 데 인색하지 않으니 쇼(G. B. Shaw : 영국의 극작가, 소설가, 비평가)와 칼라일(T. Carlyle : 영국의 사상가, 역사가)이 그 대표적 인물들이다. 칼라일이 경제학을 '우울한 과학(dismal science)'이라 명명한 이래 경제학자들은 수난의 세월을 살아왔다.
경제학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보통 그들은 나쁜 소식의 장본인이 아니라 단순한 전달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하는 소식이란 인간은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에덴동산에 살고 있지 않다. 이 세상은 젖과 꿀이 넘쳐 흐르는 곳이 아니다. 더 맑은 공기와 더 빠른 자동차, 더 큰 저택과 더 넓은 공원, 더 많은 일과 더 많은 휴식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 중에서 어느 것이 나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 줄 뿐이다.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하지만 경제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하라고 지시하지는 않는다. 선택의 결과는 예측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물론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그냥 전달자의 역할에서 그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은 갖가지 별명으로, 예컨데 스미스는 얼뜨기(bumbler), 밀은 탁상공론가(egghead), 케인스는 풀류도락가(bonvivant) 등으로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의도마저 비웃어서는 안 된다. 케인스도 지적했다시피 거의 모든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방법을 추구하려 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경제학자들이 받는 비난의 화살에는 분명 아이러니한 감이 있다.
일례로 마셜은 경제학을 빈틈없는 논리로 짜여진 과학과 인류에게 헌신하는 정신이 조화를 이룬 전문직으로 보았다. 의학, 법학, 신학을 각각 육체적 건강, 정치적 건강, 정신적 건강을 겨냥한 세 가지 신성한 전문직으로 본 중세인들의 전통에서 한발 나아가 마셜은 경제학을 인류의 물질적 건강을 위한 네 번째 성직(聖職)으로 만들고자 했다.
실질적 쓰임새라고는 없이 무미건조한 수학으로만 점철된 경제학과 세심한 이론적 숙고(熟考)가 결여된 감정적 과격주의의 경제학이라는 그 당시 경제학 연구의 이 두 바람직하지 못한 주류(主流) 사이에서, 마셜은 중재의 실마리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가 케임브리지 대학에 창설한 교과과정은 예리한 과학적 사고력과 넘치는 열정을 겸비한 인재들을 끌어들였는데, 케인스가 바로 그 노력의 최대 결실이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세계와 현실세계는 가장 든든한 고리는 정치이다. 실제로 경제학은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 출충한 경제학자들 대부분은 관직에서 활동했었고, 특히 리카도와 밀의 경우 영국의회에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들에게서 우리는 과학적 관심사의 불꽃뿐 아니라 굽이치는 열정의 파도를 발견한다. 그들이 남긴 미적분과 통계학의 난해한 기호들의 숲에서 우리는 이따금씩 굵직한 느낌표들을 발견한다.
경제사상사는 정부와 경제학자들 간의 벌어진 충돌과 협력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스미스가 유럽 왕실들과 상인들 사이의 정경유착을 매도했을 때 근대 경제학은 태동했다. 스미스(A. Smith), 마르크스(K. Marx), 베블런(T. B. Veblen)등의 경제학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상인들이 정치를 도구삼아 실리를 취한다는 사실을 셋 다 일찌감치 감지한 점이다. 한 유명한 공식성명에서 스미스는 상인들이란 모였다 하면 소비자들을 대한으로 계략을 꾸미는 무리들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사실 오늘날 시장의 자유를 소리 높여 찬양하는 상공회의소 연설자들도 막상 시장 독점권이나 정부와의 전매특약, 기타 정부의 수익보장조치 등의 특혜가 주어졌다 하면 '얼씨구나'하고 춤을 출 것이다.
고맙게도 정치가들은 이러한 상인들의 욕구에 항상 응해 주지 않았다. 처칠(W. Churchill)의 전기(傳記)에는 처칠이 노동당 당수를 하원(下院) 건물 밖 공중화장실에서 만났을 때의 이야기가 나온다. 때는 2차세계대전 직후, 자본 국유화와 노동조합 결성을 통해 지상천국을 건설하리라는 사회주의 노동당의 공약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날로 악화일로를 걷던 때였다.
먼저 노동당 당수가 들어와서 소변기 앞에 섰다. 잠시 후 처칠이 같은 볼일로 들어와서는 그 노동동 당수를 보자마자 멀찌감치 떨어져서 다른 쪽 끝에 섰다. "오늘따라 뭐 서먹서먹하게 느끼는 점이라도 있소, 왜 그리 멀리 가슈. 워싱턴 양반?" 하고 노동당 당수는 물었다. "보호본능이외다." 하고 처칠이 으르릉거리며 받았다. "당신은 뭐든지 큰 것만 봤다 하면 국유화시키려 들지 않소!"
역대 대통령들치고 경제원리를 제대로 이해한 이는 거의 없었다. 케네디(J. F. Kennedy) 대통령은 언젠가 이렇게 실토한 적이 있다.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oard)이 재정정책(Fiscal Policy)이 아닌 금융정책(Monetary Policy)을 관장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자신이 기억해 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연방준비은행장 마틴(W. M. Martin)의 성(姓)이 금융(Monetary)의 첫 자와 동일한 M자로 시작한 덕분이라고, 그것이 참알이라면 케네디는 볼커(P. Volcker)나 그린스팬(A. Greenspan) 같은 이름의 사람들은 그 은행장 자리에 기용할 수 없었을 거라는 얘기가 된다.
선거운동 기간은 경제학자들에게는 시련의 기간이다. 정치가들이 국민들에게 더 풍성한 밥상과 더 든든한 국방을 동시에 약속할 때마다 경제학자들은 불을 보듯 뻔한게 초래될 재난들을 경고해야 한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의 그 어떤 냉철한 논리로 선거 후보자들의 달콤한 약속들과 책임 못질 호언(豪言)들이 일순간에 휩쓸어 버린다.
사실 유세연설을 앞둔 후보들이 부딪치는 어려움은 황금시간대의 텔레비전 프로를 편성해야 하는 프로듀서의 고충과도 같다.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게 경제를 설명해야지 주말 연속극에 나오는 동네 아저씨 수준보다 더 높은 언어나 개념들을 구사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일부 후보들은 이에 오히려 안도의 숨을 내쉬겠지만.
왜 정치가들과 경제정책 고문들 사이에는 서로 오해의 소지가 많을까? 아마도 이는 경제학자들이 독특한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하기 대문일 것이다. 그 언어의 이름은 모형(model)이다. 복잡한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어느 경제현상의 수만 가지 기능요인들 중 가장 주된 것들을 추출, 그 현상의 간략한 축소판을 만들어 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 내 국민 소비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로 기후, 인플레이션, 선거유세, 미국 올림픽팀의 출전성적, 혹은 국민들의 음악적 취향, 체중, 소득 등을 열거했을 때 분명 이 중에는 그 영향력이 가장 큰 요인들만을 분리, 중요도를 매기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그 나머지 무수한 부차적 요인들을 제외시킨 모형을 설계해야 한다. 그 모형은 간단할 수 있어야 한다. 최상의 경제학자란 가장 영속성 있고 가장 경고한 모형의 설계사를 뜻한다.
물론 과학자들 역시 모형을 만든다. 과거 오랫동안 물리학은 뉴턴의 인력(引力) 모형에 의존했고 천문학은 아직도 코페르니쿠스의 모형을 쓰고 있다.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탁월한 책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에서 저자 쿤(T. Kuhn : 미국의 과학사가, 패러다임이라는 개념 제시)은 이러한 과학 모형들의 발달사를 추출해 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순수과학 분야들보다 경제학의 유독 더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신장(腎臟)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를 상상해 보자. 엑스레이 결과, 그 의사는 신장의 위치가 결장(結腸)으로부터 2.5㎝ 아래쯤에 위치한다는 것을 파악한다. 그러나 의사가 막 절개하기 시작한 순간 신장이 슬그머니 위치를 바꾸어 버렸다고 상상해 보라! 경제학의 고충이 바로 여기에 있다. 경제학자가 갖가지 원인들을 분리시킨 후 그 영향력들의 평가를 시도할 때면 이미 그 영향력들은 변해 있다.
인간관계나 사회기관들이 변천함에 따라 경제학 탐구의 대상 그 자체도 모습을 바꾸어 버린다.
경제학은 '순수' 과학이 아니다. 하지만, '쉬운' 과학 역시 아니다. 너무나 유동적인 학문이기에 자료들을 꽉 붙들고 연구해 볼 수 없다는 데에 경제학의 어려움이 있다. 경제학의 대가란 무릇 기사작위(騎士爵位)나 나아가 성인(聖人)의 자격에 요구되는 능력보다 더 대단한 능력들을 갖춘 인물이라고 언젠가 케인스는 역설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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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기원
어디서부터 경제사상사의 공부를 시작할까? 성서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성서에서는 토지, 노동, 자본 등에 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성서의 내용에서 신중한 분석보다는 강제적 계율들이 더 많다. 애덤 스미스가 그의 이름과 윤리적 생활태도는 성서로부터 얻었을는지 몰라도, 성서로부터 얼마나 많은 경제원리에서의 영감을 얻었을지는 의문이다.
재산의 사유를 찬양하고 부(富) 자체를 위한 부의 집적을 질타한 바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나 아리스토 텔레스의 경제학 이해는 시간은 희소자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정도에 그쳤다. 그리하여 그는 쓸데없는 학문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일찌감치 철학공부와 알렉산더 대왕의 교육에 시간을 투자했다.
결국 오늘날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의 거인으로 군립한다. 하지만 대학 서양사 강의실의 수많은 아리스토텔레스 팬들을 분개시킬 위험을 무릅쓰고 단언하건대,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라는 학문의 연보(然譜)에는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중세 신학자들 역시 경제문제들을 토론했었다. 카톨릭 스콜라학자들은 시장 내의 정의와 윤리문제로 고심했다. 그들은 '적정가격(just price)에 대한 교리를 고안해 냈고 고리대금에 관한 교회의 입장을 개량했다.
구약성서에는 동족끼리 이잘르 받고 돈을 빌려 주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이 있지만, 중세 신학자들은 이자를 위험부담, 기회비용, 인플레이션, 불편 등의 세부 품목들로 분리하여 정당화시키는 등 금지규법에 구멍을 뚫어 빠져나갈 곳들을 마련하여 정당화시키는 등 금지규법에 구멍을 뚫어 빠져나갈 곳들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여기서 신학자들은 괴로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만일 상행위에 부정적인 정통과 경전해석을 주장했다가는 그들의 말은 효력을 상실할 것이다. 대다수 신도들은 천벌 받을 각오로 고리대금 행위를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각종 상행위들을 모두 눈감아 주었다가는 교회 지도자로서의 신용은 여지없이 실추되고 말 판이었다.
결국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필요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은 경제학 원리들을 연구했다. 신학자들은 단순한 의무의 일환으로서 그들의 어린 양들에게 경제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의무란 그 어린 양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지 더 나은 생활수준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었다. 종교개혁으로 그 양테들마저 나뉘어졌을 때 그 의무는 한층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 버렸다.
중상주의자들 역시 경제학사에 나름대로의 발자취를 남겼다. 중상주의자들은 대개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유럽왕실을 보필하였던 궁정 고문들과 문인들이었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경제학 교과서'도 없었고 각자의 관심 역시 달랐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칼, 네델란드 등의 왕족들의 경제운영에 과한 자문역을 맡아 보았다.
오늘날 우리는 그 중상주의자들의 충고에서 몇 가지 공통된 견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국가는 왕실에 충성을 다하는 소수에게 독점권, 특허권, 보조금, 기타 특혜들을 부여함으로써 국가의 위계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둘째, 국가는 정복(征服) 전쟁들을 치르기 이해서는 무엇보다도 부유해야 하며, 국부(國富)의 척도라 할 수 있는 각종 귀금속들과 원료들을 얻기 위해서 식민지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셋째, 국가는 무역에 관하여 완제품의 수출량이 수입량을 초과하도록 제재를 가해야 한다. 꾸준한 무역수지 흑자는 채무국들로부터 황금을 빼앗아 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중상주의 아래 유럽 각국은 국토를 확장했다. 동시에 각국은 길드(guild), 독점권, 관세 등에서 나온 경제력을 몇몇 정계의 총아들에게 분배함으로써 내부 경제의 규제강화를 꾀했다. 정부의 규제와 간섭은 국가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프랑스 루이 14세때의 재무장관 콜베르(Jean-Baptite Colbert)의 경우, 철저한 제품생산 규제를 시행하였으며 길드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했다. 콜베르는 국왕아래 최고 권력의 과시로 언젠가 디종(Dijon) 지방에서 생산되는 모든 직물을 정확히 1,408수(繡)이어야 한다고까지 공표한 적이 있다.
우리들 경제사상사 공부하는 이 중상주의자들을 비판대 위에 올려 놓았던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스미스는 중상주의자들의이론을 다음의 몇 가지 측면에서 공격하였다.
첫째, 중상주의자들은 부(富)의 기준을 화폐나 귀금속의 보유량으로 보았다. 그러나 스미스는 참된 부의 기준은 국민들의 생활수준이어야 한다고 논박했다. 쌓아둔 금 궤짝들이 쌀 가마니들로 항상 바뀌어지진 않는 것이다.
둘째, 스미스는 부란 그 나라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측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돈을 소수 정치인들과 그들에게 아첨하는 상인들 무리에게만 돌아가게 하는 술책들은 국민 생활수준 향상에 역효과를 가져 올 뿐이다.
셋째, 스미스는 개인적 의욕, 정열 발명이나 개혁에의 의지 등이야말로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볼때, 정부차원의 보호나 독점권과 같은 특혜들을 선택된 소수에게 베푼다는 중상주의자들의 정책은 국민 참여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였다. 그리하여 근대 경제학은 세상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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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제학자들을 무시해 버려야 할까?
애덤 스미스 이래 인류역사가 배출한 대 경제학자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세상에는 주요 경제학 이론들로 설명 못 할 현상들이 허다하다. 일례로 1970년대 초의 세계적 경기침체 현상이나 노동시장 문제를 놓고 경제학자들은 아직껏 씨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이론의 기본원리들을 무시하는 국가나 개인은 어리석은 도박행위를 하는 셈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안정된 중상주의 시대를 꿈꾸는 시대착오적 열망으로 보호무역의 장벽을 드높이 쌓아나가는 국가는 결국 소비자들은 국민들에게 그 피해를 끼치게 된다.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농작물의 판매가를 높이 책정하는 국가는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힐 뿐 아니라, 결국에는 여분의 농작물들을 창고에서 썩히게 된다. 경제학자라면 이러한 점들에 대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들에게 귀기울일 정치가들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정부가 경제학자들의 조언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경제학자들은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 경제학자들은 우리들 생활수준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다.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점화된 이래 인류는 항상 미래는 당연히 현재보다는 나을 것으로 간주해 왔다. 우리는 현재상태를 최저한도로 잡는다. 허나 역사상 끊임없는 지속적 발전의 유래는 없다. 매년 선진국들이 간신히 새로운 경제암흑기를 요리조리 모면해 나갈 때마다 우리는 당연히 '그러려니' 하고 만다. 하지만 사실상 우리는 인류 발전역사의 기록을 갱신해 나가는 중이다.
조르주 두비(Georges Duby)의 11세기 유럽묘사르 들어보라. 이렇게 끔찍한 세월이 상대적으로 풍요로웠던 고대 그리이스, 로마, 바빌로니아, 이집트 시대 이전이 아닌 이후에 닥쳐 왔다는 사실은 우리를 섬뜩하게 한다.
현대 선진 사회가 이런 전율할 상황으로 돌변한 날이 있을까? 아니 제3세계 몇몇 나라의 끔찍한 수준으로라도 뒷걸음질 칠 때가 도래할까? 케인스 아니라 케인스의 할아버지라도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이러한 암흑의 도가니를 피할 수 있게끔 우리를 계몽하는 것이 대경제학자들의 목표였다는 사실이다.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가르침들이 호소력을 잃지 않고 우리에게 와닿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들 이론의 결정(結晶)들은 오늘날에도 하나같이 실질적 값어치들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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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드 부크홀츠(Todd G. Buchholz)「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pp.1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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