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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금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가장 빈번히 듣는 말이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아닐까 싶다. 특히 금융산업을 둘러싸고는 하루가 멀다하고 이 말을 듣게된다. 금융기관은 투자자들의 피같은 돈을 지켜주기 보다 자신의 이익만을 좇아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결국 정부가 나서겠지 하는 마음속에서 위험을 무시한 채 고수익만을 추구했다. 정부 또한 당장 호응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때그때 조치를 취하기 보다는 유야무야 시간을 끌어왔다. 모두가 자신의 책무나 역할은 방기한 채 이익만 추구해온 셈이다. 우리는 이같은 양상을 통상 도덕적 해이라 부르고 있다.

원래 도덕적 해이는 정보의 불확실성 또는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지주와 소작인이 있다하자. 지주의 입장에서는 소작인이 혼신의 노력으로 농사를 지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주는 소작인이 노력을 얼마만큼 기울였는지 알 길이 없다. 매일 소작인을 쫓아 다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노력의 결과물 이랄 수 있는 산출량 또한 소작인의 노력을 평가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작인의 노력외에 날씨 병충해 등 많은 외적요인에 영향받기 때문이다. 지주로서는 속이 탈 노릇이지만 소작인이 얼마나 노력했는가는 정작 소작인 자신만이 알 뿐이다.

이같이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면 소작인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같은 수입이라면 일 덜하고 받는 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개개인 모두 자신에 이롭게 행동한다는 점에서 이런 행위를 나무랄 수 만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IMF 사태를 불러왔다는 우리의 도덕적 해이도 그리 나쁠 게 없잖은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답은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이다. 우리나라의 도덕적 해이는 경제학 교과서의 그것과 거리가 한참 멀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의 도덕적 해이는 당사자 모두 번연히 알면서 저지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즉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도덕적 해이가 어쩔수 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제도 관습으로 인해 백주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학 교과서의 도덕적 해이는 발각시 즉각적인 처벌을 전제로 한다. 이에 반해 우리는 발각이 돼도 처벌이 없거나, 있어도 형식적이란 점이 다르다. 쉽게 말해 발각돼도 괜찮은 도덕적 해이인 셈이다.

금융기관이 직간접으로 정부의 보호를 받는다면 그들의 위험한 투자(risk taking)는 오히려 자연스런 현상이다. 잘되면 높은 영업이익을 얻는 반면 안되면 정부 책임이기 때문이다. 일반투자자 또한 암묵적인 정부의 보장이 있는데 위험을 고려할 이유가 없다. 오로지 수익률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할 일은 자명하다. 금융기관에 대한 적절한 감독과 엄격한 법집행을 수행해야 한다. 이와함께 일반 투자자에게 고수익은 고위험을 뜻하고 최종 책임은 자신의 몫임을 알려야 한다.

과연 우리 정부가 그러했는가. IMF 사태는 그렇게 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금융기관들이 과다하게 위험에 노출됐음을 알면서도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때 일어날 일은 불문가지다. 금융기관들은 당연히 더욱 더 위험한 투기행위를 자행할 것이고 일반 투자자들도 이에 뒤질세라 고수익 상품으로 몰려들 게 된다. 시쳇말로 '배째라' 수준의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는 금융부문 뿐 아니라 우리나라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교통문화를 보자.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아도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결과는 쉽게 아수라장이 되는 도로다. 또한 4,5년마다 치러지는 선거에서도 유권자의 준엄한 심판이란 게 전혀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저질 정치가 변함없이 판치는 게 당연하다. 엄격하고 제대로 된 '법집행'과 '처벌'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