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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계속되는 반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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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반세계화
조재용 국제부장 jaecho@hk.co.kr



또 시위가 일어났다. 지난 주말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례회의는 회의기간내내 3,000~4,000여명의 시위대에 시달렸다. ADB가 지원하는 댐건설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ADB가 아시아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정서가 보다 깊은 이유였다.

국제기구 회의가 열릴 때마다 이를 반대하는 시위는 미 시애틀의 세계무역기구(WTO)회의가 그랬고, 지난달 워싱턴의 국제통화기금(IMF) 춘계회의도 시위대가 세계적 주목을 끌었다. 지난 1일 노동절 역시 반세계화 행동가들이나 좌파들의 시위가 세계 주요도시를 장식했다. '세계화의 문제'가 폭발적인 대중논의와 행동수준으로 도약한 것을 보면 시위대의 목적은 일정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들은 마치 폭주기관차일 것만 같았던 '세계화 주의'에 제동을 걸어 덜컹거리는 모습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누구이고,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시위대 속에는 제각각의 목표와 기치를 내건 수백개의 NGO가 혼재했다. 또 무정부주의자와 노조세력이 단합하는가 하면 운동가 대학생들도 연합하고 있다. 그래서 시위대의 목소리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환경파괴저지를 외치는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이 있는 한편 세계화가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블루칼라들의 보호주의도 노골적이다. 대학생 운동가들로 부터는 개도국 부채탕감의 소리가 들리고, 과격 무정부주의자들은 아예 '자본주의 타파'의 피킷을 들기도 했다. 이들은 세력이 다양했고, 그런만큼 대안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세계화의 문제는 다면체의 얼굴을 갖고 있지만 자주 부딪치는 논점은 세계화가 빈국을 도와주는가, 아니면 부국에 더 기여하는가로 모아진다. 각국 내부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여러 통계가 있지만 얼마전 세계은행이 발표한 '세계화 평가'라는 보고서는 작금의 세계화논쟁이 상당한 근거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생계비가 1달러수준에 불과한 절대빈곤층은 세계적으로 거의 줄지 않았다. 1990년 13억명이던 이 빈곤층은 1998년 12억명인 것으로 집계돼 거의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합경제의 원리가 풍미하던 1990년대의 세계화가 인류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별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고성장을 계속해 온 동아시아 지역의 경우 빈곤층 비율이 27.6%에서 15.3%로 주는 의미있는 진전을 보였다. 보고서는 그러나 성장이야말로 빈곤을 해결하는 최상의 대안이라는 사실, 그리고 개방적 국가들이 폐쇄적 국가들보다 고성장을 이루었다는 통계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무엇이 되었든 갈수록 분명한 것은 이 논쟁이 반드시 필요한 논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중시해야 할 것은 그 결론이 점점 모호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화는 되돌릴 수 없는 세계질서의 원리로 이미 굳어져 있다. 반 세계화 시위가 강력할 수 있었던 것도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세계화의 도구를 동원해 조직화, 행동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전세계가 지금 '세계화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다만 세계화의 문제가 본질적으로 정치적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세계화논쟁의 표적이 되고 있는 IMF나 WTO, 세계은행 등은 결국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를 대표하는 현실 때문이다. 이들 기구의 투명성이나 민주적 운영을 촉구하는 대안론자들의 표적은 사실 미국으로 모아진다. IMF의 경제위기 처방을 둘러싼 논란은 독립국가의 주권제약에 관한 문제이고, WTO의 160개국 관련국이 하나의 룰에 합의하기 위해서는 국가주권이나 이해의 유보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어딘가에서 지난번 아시아 경제위기와 같은 일이 또 발생한다면 이 논쟁은 미결의 상태에서 즉각, 다시 폭발하게 될 것이다. 부정할 수도 없고, 해답을 얻지도 못하는 이 논쟁은 상당 기간 세계를 맴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