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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한국의 국가경쟁력

조동성 서울대교수 국제지역원 원장 cho@ips.or.kr


스웨덴 친구로부터 스웨덴어에는 경쟁(competition)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회복지가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어서 사람들간에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과연 인간 사회에서 경쟁이 사라질수 있을까. 1980년대까지 경쟁은 기업들이 시장에서 소비자를 놓고 힘겨루는 내용을 의미했다. 그러나 최근 경쟁은 기업간, 국가간의 관계를 포함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화와 무관하지 않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경제활동은 국경을 초월하여 이루어지고 있고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가진 독자적 능력 뿐 아니라 각 기업을 떠받치고 있는 소속 국가의 힘, 즉 국력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경쟁력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고자 하는 시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87년 스위스 IMD는 세계경쟁력 연감을 통해 국가경쟁력 순위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 두 기관에서 경쟁적으로 발간하는 국가경쟁력 순위는 한국을 포함한 해당국가에 여러 시사점을 주고 있다. 특히 각국은 구체적인 경제정책을 세우는데 있어 이들 자료에 많은 의존을 한다.

그러나 IMD나 WEF는 같은 모델을 사용했기 때문에 연구 결과 또한 비슷해야 하나 실제로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1999년 한국은 IMD 연감 47개국 중에서 38위로 하위권에 머무른 반면, WEF보고서에서는 59개국 중 22위로 중상위권에 있다. 이 차이는 두 보고서 모두 엄밀한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고 방법론에서 자의성이 있으며, 경영자들의 주관적인 설문조사를 사용하는 등 엄격한 분석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두 보고서는 모두 스위스에서 선진국 학자들의 시각에 입각하여 기본적으로는 선진국경제를 위하여 만들어졌다.

기존 보고서들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번에 산업정책연구원(IPS)이 발간한 국가경쟁력 보고서는 큰 의미를 가진다. 이론적인 면에서 IPS보고서는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 교수의 다이아몬드 모델을 일반화한 9-팩터 모델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방법론적인 면에서는 설문조사 자료를
배제하고 대한무역 투자진흥공사의 100여개 해외무역관을 통해 정보를 직접 수집함으로써 가장 최근의, 그리고 믿을 만한 자료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국가를 나누어 선진국 선발개도국 후발개도국 후진국 등 그룹내 비교를 통해 각국에 알맞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보고서 내용 중 한국경제에 대한 연구결과를 보면 우선 인적자원이 51개 국가 중 7위에 올라있어,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경제의 국가경쟁력 원천이 사람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고용비율에서는 3위인 반면 고임금으로 인하여 투입산출지수는 39위로 쳐져 있다. 노사분규
정도를 뜻하는 근로 자세 역시 37위로 내려가 있다. 앞으로 한국경제가 국가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생산성과 근로자세를 보다 높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IPS 보고서는 같은 수준의 국가간에 존재하는 국가경쟁력의 차이점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컨데 투입산출지수에 있어서 한국은 전체 51개국에서 중하위권이지만, 선발개도국 4개국 중 4위, 후발개도국 4개국과 비교해도 4위권의 최하위에 놓여 있다. 즉 한국은 임금 압력 때문에 개도국과의 경쟁에서 크게 밀린 것이다.

IPS보고서는 한 나라의 경제가 막연하게 전세계 모든 국가를 상대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수준의 소수 국가들과 싸우고 있는 현실을 깨우쳐주면서 보다 과학적인 자세로 각국 경제의 미래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 각국에서 널리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