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형설지공/경제경영

게임이론의 윤리적해석

받는 대로 돌려준다.

피터싱어는 이번 장에서 Game Theory적인 상황을 통해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윤리적이며, 가장 합리적인 행동이 될 수 있을지 설명하고 있다. 나는 교재에 있는 예의 상황들을 게임이론(Game Theory)에 적용하여 해석해 보고자 한다. 피터싱어는 이 장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개개인은 지극히 이기적이며, 합리적인 사람들이라고 가정하겠다. 그럴 경우에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최선응수를 생각해 보겠다. 그리고 그럴 경우에도 이 책에서와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설명하고자 한다. 결국에 상대방이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상관없이 우리의 최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전략이 존재함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개개인이 이기적인 사람들의 집단일 경우에, 그 집단을 이타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는 피터싱어의 설명을 뒷받침 하고자 한다.

배려해 주는 사람을 배려하라.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와 영국의 연합군은 프랑스 북부 전선 전역에 걸쳐 독일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사상자수가 엄청났다. 연합군은 독일군보다 수적인 우세에 있었으므로, 연합군 군인 한 사람이 전사할 때마다 적어도 한 사람의 독일군을 사살할 수 있다면, 결국에는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다. 상대편에 대한 증오를 가중시키기 위해 애국심과 흑색 선전이 끊임없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도 나도 살고 너도 살자(live and let live) 라고 알려진 공존 체제가 연합군과 독일군 사이에서 생겨나게 되었다.
이 예를 통해서 피터싱어는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도 협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전투가 벌어질 경우 양측 모두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고, 연합군의 경우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피해를 모두 상쇄할 만큼 승리에 대한 보수가 크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서, 양측 모두 상대방이 공격을 하지 않는 한 이쪽도 공격을 하지 않음으로서 결국 보수가 0이 되더라도 목숨을 보존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 결과가 피터싱어가 설득하려는 것처럼, 상대방을 배려하기 때문에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게임이론에서는 게임에서 경기자들은 모두 이기적이며, 합리적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그런 게임이론의 가정 하에서 이 전쟁의 경우를 한 게임으로 놓고 파악해 볼 때, 이 결과가 바뀌어 질 수 있을까? 각 경기자 모두 자신의 목숨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다. 상대방을 배려해서가 아니라, 꼭 이 전투에서 승리하지 않아도 다른 이들이 다른 전투에서 더 많이 승리할 경우, 결국엔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그런데 꼭 목숨을 버려가면서 전투를 벌여야 할까? 게임이론에서 다루는 방법처럼 꼭 보수를 정해주지 않아도, 목숨을 보존하는 편이 언제 죽게 될 지 모르는 전투의 상황보다는 개개인의 보수가 훨씬 크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더라도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된다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고 있다. 이런 상황하에서 두 경기자(연합군과 독일군)가 협력적이라는 조건이 없이,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가정만 가지고도 위의 예와 같은 결과를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과 협력함으로써 자신이 피해를 보게 된다면, 아니 상대방과 협력할 경우의 보수가 그렇지 않을 경우의 보수보다 크다면 경기자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통해서 협력을 할 것이다. 위의 예도 이와 같은 게임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아래에서 피터싱어는 협력의 상황에 대한 다른 예를 보여주고 있다.



맥스는 이제 막 추수를 하려 준비하는 소작농이다. 그런데 저편 언덕에 비구름이 모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맥스는 비가 오기 전에 추수를 마칠 수 없다. 오늘 거두어들이지 못한다면, 미처 추수하지 못한 곡식은 썩어 버릴 것이다. 다급해진 맥스는 이웃인 린에게 도움을 청했다. 린의 곡식은 아직 채 여물지 않았다. 맥스는 린이 추수할 때 돕겠다고 약속했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 게임이론에서처럼 보수를 정해보도록 하겠다.) -맥스가 혼자서 추수를 할 경우에 얻는 보수는 5이다. 하지만 린이 맥스를 도와 줄 경우에는 보수가 9이다. 린의 경우에서는 맥스를 도와주었으나 맥스가 린을 도와주지 않을 경우, 맥스를 도와주느라고 허비한 시간만큼 보수에 피해를 받게 되어 보수가 3이 된다. 맥스를 도와주지 않고 혼자서 추수를 했을 경우에는 보수가 5가 되고, 맥스를 도와주었을 경우 맥스도 린을 도와준다면, 맥스의 보수와 같이 9에서 맥스를 도와주느라고 허비한 시간만큼을 감해서 7의 보수를 얻게 된다.
둘 다 서로 돕는 경우에 각각의 보수가 가장 크므로, 돕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 된다.




하지만, 이 경기의 상황을 한번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한정할 때에는 결과가 달라진다. 맥스는 린이 도와줄 경우에 더 많은 보수를 얻을 수 있으므로, 린에게 도움을 청한다. 만약 린이 도와줄 경우 맥스도 린을 도와줄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맥스는 린을 도와주지 않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 왜냐하면 다음에는 이와 같은 상황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다고 가정을 했으므로, 맥스는 다음해를 위해서 준비를 하는 편이 린을 도와주는 경우보다 더 큰 보수를 얻기 때문이다. 린은 합리적인 사람이므로 맥스가 이와 같이 행동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린도 맥스를 돕는 것보다는 자신의 추수를 준비하는 편이 더 큰 보수를 주게 된다. 결국 둘다 서로 돕지 않게 되어 각각 5의 보수를 얻게 되는 것이 이 게임의 균형보수가 된다. 게임이론에서는 이 경우를 Nash 균형이라 한다.

이와 비슷한 결과를 주는 것으로 피터싱어는 '수인의 딜레마(the Prisoner's Dilemma)'를 예로 들고 있다.

피터싱어가 표현한 수인의 딜레마를 요약해 보면, 두 공범자가 경찰에 잡히게 되었다. 심문 과정에서 두 공범자는 각각 다른방에서 심문을 받게 되고, 두 공범자는 똑같은 조건을 받게 된다. 조건은 둘 다. 묵비권을 행사할 경우, 각각 6개월의 징역을 살게 된다. 한명이 자백을 하고 다른 사람은 묵비권을 행사할 경우에는 자백한 사람은 바로 풀려나게 되나, 묵비권을 행사한 사람은 죄를 뒤집어쓰게 되어 10년의 징역을 살게 된다. 둘다 자백을 하는 경우에는 각각 8년의 징역을 살게 된다. 이 경우 둘 다 자백을 하게 되어서 각각 8년의 징역을 받게 되는 것이 Nash 균형이 된다.




공범자2

공범자1

묵비권행사
자백

묵비권행사
-0.5, -0.5
-10, 0

자백
0, -10
-8, -8


Prisoner's Dilemma

그러나 현실세계에서는 앞의(맥스와 린의) 경우가 무한히 반복 될 수 있다고 피터싱어는 설명하고 있다. 그럴 경우에 맥스는 린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린이 맥스를 도와줄 경우 맥스 역시 린을 꼭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이 경우 두 경기자는 서로를 도움으로써 각각의 보수를 극대화 할 수 있다. 만약 한 경기자가 한번이라도 이탈할 경우에는 이들의 협력관계는 깨어지게 되고, 다시 회복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각 경기자는 이탈할 유인이 없다. 합리적인 경기자의 경우 계속 협력을 유지하는 것이 더 큰 보수를 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기자가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간에, 합리적이기만 하다면 이 협력관계는 깨어지지 않게 된다.

앞에서의 수인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를 맥스와 린의 경우처럼 반복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놓고, 최선의 전략을 겨루는 경기가 있었다. 그 경기에서 최고 우수한 전략으로 뽑힌 것이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Tit for Tat) 이다. 이 전략은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ㄱ) 처음에는 협력하라
ㄴ) 그후에는 상대편이 이전에 취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여라.

이 경기에서는 일반적으로 친절한 전략이 그렇지 않은 전략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사실은 비이기적인 행태가 생존과 자손 번식의 기회를 증진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비이기적인 방식으로 행위하는 사람들이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행위하는 사람만큼, 혹은 그들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설명되어 있다.

1.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 은 그 자신에게 유리할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친절한 전략도 좋은 결과를 나을 수 있도록 돕는다. 다시 말해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 과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 의 상대편 역할을 담당했던 다른 친절한 전략을 취함으로써 수감생활을 해야 하는 해의 총수는 가능한 것들 중 가장 작은 수이다. 이들 전략들은 서로 협조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계속 그렇게 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친절한 전략은 서로를 보조한다.
2. 친절한 전략과 대조적으로 비열한 전략은 상대편도 그러할 때 서로가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망친다. 즉 둘 다 비열한 전략을 구사하는 경우 모두가 좋지 않은 결과를 갖게 된다.
3. 친절한 전략과 비열한 전략이 맞부닥칠 경우, 친절한 전략은 상대편이 이기적인 행위를 할 때마다 보복을 취하는 한, 좋은 결과를 갖는다.

이제 수인의 딜레마와 같은 것이 실제 삶에서 대단히 자주 발생한다고 가정하면, 항상 눈앞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생존과 번식에 보다 유리할 것인가? 혹은 다른 개체들과 협동하기 위해 친절하게 행동함으로써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보다 더 유리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위에서 열거한 세 가지 사실로부터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모두가 친절하게 행동하는 개체 집단에서는 모두가 잘 지내게 될 것이다. 둘째, 비열한 개체 집단에서는 모두에게 나쁜 결과가 초래할 것이다. 셋째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집단에 속하는 개체 중 일부는 친절하고 일부는 비열할 경우, 친절한 개체들은 다른 개체들이 비열하게 행위 하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협조하는 것을 그만두는 한, 계속해서 좋은 결과를 누릴 수 있다. 세 번째 결론에 대해서는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비열한 개체와 친절한 개체가 상호 작용하게 되는 경우, 처음에는 비열한 개체가 친절한 개체에 비해 더 좋은 결과를 가질 수 잇다. 친절한 개체는 협력을 하기 위해 목전의 이익을 포기하는 반면 비열한 개체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처음 만났을 경우에만 해당한다. 길게 보았을 때, 안정된 집단의 경우, 이러한 이득은 별 차이를 가져오지 못한다. 집단에 속하는 개체 중 상당 부분이 친절한 개체인 한, 친절한 개체는 두 번째 만남 이후에는 다른 친절한 개체들과의 조우에서 비열한 개체보다 더 좋은 결과를 향유할 수 있다. 그들은 협동의 산물을 수확할 수 있는 반면 비열한 개체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좋아 보인다. 사실 너무 좋아 보인다. 에덴의 낙원에 비교할 수 있을 만한 진화의 노정에도 어떤 곳인가에서 사악한 뱀과 같은 존재가 기회를 엿보고 있을 수 있다. 친절한 개체들이 비열한 개체들과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고 상상하자. 이때 친절한 개체들이 자신의 행동에 보답하는 다른 친절한 개체와 그렇지 않은 비열한 개체를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친절하게 행동한다면, 비열한 개체는 상당히 큰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아무것도 되돌려 주지 않으면서 다른 개체의 협조 행위로부터 이득을 본다. 좋지 않은 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애초에는 비열한 개체의 수가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친절한 것들 보다 더 높은 비율로 번식하기 시작한다. 점차로 친절한 개체는 다른 친절한 개체를 만나기 힘들게 되고, 협력을 통해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종국에 가서는, 친절하게 행동하는 개체들이 집단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보다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당신만 어수룩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어수룩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속임수가 잘살 수 없다. 친절한 개체들이 상대편이 비협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즉시, 즉 그들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 협조적인 태도를 버리면, 비열한 사기꾼들이 어수룩한 사람들을 착취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즉 나만 어리숙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은 건전한 것이다. 어수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나쁜 결과를 낳는다. 물론 잘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속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집단 중 일부가 받는 대로 돌려주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사기꾼들을 물리칠 수 있다. 그러한 사회는 물론 낙원일 수 없다. 사랑과 친절이 더 이상 아무 거리낌없이 제안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열한 개체들이 지배하는 집단에서보다는 모든 개체가 훨씬 높은 삶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예수의 유명한 교훈인 다른 쪽 뺨을 대주어라 를 경험적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다른 쪽 뺨을 대주는 것 이 현세에서는 너무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여전히 고상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른 쪽 뺨을 대주는 것은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에게 사기 행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인식하게 만들어, 사기를 고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만약 다른 쪽 뺨을 대주고 얻어맞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람들 모두가 곤란을 받아야 한다면, 다른 쪽 뺨을 대주는 윤리는 더 이상 매력적일 수 없다.

만약 비열한 개체들이 집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과연 바람직한 순환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적어도 친절한 동물집단이 적은 수로 존재하고 이들이 대체로 자기들끼리만 접촉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협동으로부터 이득을 얻으면서도, 비열한 동물로부터 착취당하지 않을 수 있다. 비열한 동물들은 대체로 다른 비열한 동물들과 교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좋은 결과를 누릴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개인들이 협력하기 시작하는가? 이미 본 바와 같이, 친족에 대한 이타주의는 유리한 결과를 낳고, 친족에 대한 이타심으로 인도하는 유전자는 진화의 과정에서 보다 많이 살아남을 것이다. 아마도 협동은 이러한 뿌리에서 발전되어 나왔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협조적인 개인 집단의 초기 구성원은 혈연 관계를 맺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협력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참호 속에 있었던 군인들 사이에서 발생했던 것처럼, 처음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목전의 단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상황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협력은 협력의 결과로 인해, 협력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나은 상태에 있게 된 안정된 집단이 존재하는 한 퍼져 나갈 것이다.

이것은 놀랄만한 결과이다.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우리는 바람직한 방향으로만 순환을 촉진시킬 수 있다. 적절한 조건이 주어지기만 하면, 받는 대로 돌려주는 행태는 비열한 행태를 제거할 수 있다. 반면 비열한 행태는 받는 대로 돌려주는 행태를 제거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액설로드의 말처럼, 사회 진화의 톱니바퀴는(역회전을 막는) 바퀴쐐기를 가지고 있다. 조금은 장황하게 피터싱어의 설명들을 요약해 보았다. 피터싱어의 설명처럼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은 그렇지 못한 전략들을 밀어낼 수 있고, 충분히 그 전략을 택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고무시킬 수 있는 전략이다. 아주 확신을 줄 수 있는 주장은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틀리지는 않은 설명인 듯 보인다.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은 첫째, 사람들을 협력하는 방향으로 유도한다. 그리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반격을 가함으로써 벌을 준다. 이 전략에 하나더 추가되어야 할 것은 용서의 전략이다. 만약 상대방이 배신을 함으로써, 피해를 줄 경우에는 같은 전략으로 응수를 해야겠지만, 상벌전략의 효율성(동물실험-미로찾기 등)을 통해 서로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는 상대방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협력의 방향으로 돌아오길 원하는 경우에 용서를 해주어 더 나은 결과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은 추가된 '용서'의 전략을 통해서 더욱 완성도를 높일 수 있고, 더 나은 보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의 효과적 이용법

대부분의 일상사에서 우리는 수인의 딜레마가 계속 반복되는 것과 유사한 구조의 결정 상황에 봉착한다. 우리는 개인적인 관계에서, 사업적인 관계에서, 정치에서, 정부간의 관계에서, 다른 사람, 사업 파트너, 고객, 정치적인 동료, 혹은 외국 정부와 협력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제 값을 치르지 않고도 협력의 결과를 수확할 수는 없는지 고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양쪽 다 그렇게 한다면, 모두가 협력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액설로드의 연구 결과는 양쪽 모두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해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에 이용될 수 있다. 앞에서 우리는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이 어떻게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지 보았다. 피터싱어는 이제 이 전략을 규칙화하여 누구나 다양한 일상적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재구성해 보도록 하고 있다.



1. 협조할 태세로 시작하라. 친절한 얼굴로 세상을 맞아라. 낯선 사람도 좋게 생각하고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라.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은 이렇게 하는 것이 당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유리하다고 제안한다. 물론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무릅쓸 수 있는 위험에는 한계가 있다. 나는 종종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책을 빌려준다. 대개의 경우 책을 돌려받는다. 그러나 오래된 전문 학술 잡지는 대체 불가능한 경우가 많으므로, 잘 아는 사람들이 아니면 빌려주지 않는다. 사업상 새로운 계약을 맺는 경우에도 가급적이면 위험 부담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일단 계약이 맺게 되면, 상대방이 계약을 지킬 것이라고 가정해야 한다.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당신과 상대방 사이의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양자 사이의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되도록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당사자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2. 당신에게 이익 주는 사람에게 이익을 주고, 해 주는 사람에게 해를 주어라.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을 취할 때 두 가지 위험에 유의해야 한다. 하나는 서로가 끊임없이 빚을 주고받는 모두에게 파괴적인 연쇄 고리에 빠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용 또는 착취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에 우호적이며 협조적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일단 상대방이 이에 상응하게 협조적이 아닌 것이 분명해지면,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얼마나 신속하게 바꾸어야 하는가? 액설로드가 만든 토너먼트에는 두 번 받고 한 번 돌려주는 전략이 있었다. 이 전략을 따르게 되면, 비협조적인 행태가 처음 나타났을 때는 용서해 주고, 반복되는 비협조적인 행태에 대해서만 보복해야 한다. 이 전략은 첫 번째 토너먼트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그러나 두 번째 토너먼트에서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이 전략의 용서하는 성질을 이용해 먹을 수 있었다.

3. 단순하게 유지해라.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은 대단히 단순한 규칙이다. 행태를 단순하게 유지해서 얻는 이득이 있다. 우선 내가 무엇을 하는지 상대방이 알아차리기 쉽다. 게임 이론가들은 누군가 이득을 얻으면 반드시 다른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양만큼 손해보는 게임을 가리켜 영합게임(Zero-sum Game) 이라고 부른다.

...(중략)...

유명한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은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 정신을 충실하게 반영한 것이다. 이 법전에 따르면, 정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로 대응함으로써 이루어진다(이 규칙은 전적으로 귀족들 사이에만 적용 가능한 것이었다. 자유민이나 노예에 대한 상해는 벌금으로 충분히 보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눈을 잃었다고 해서 가해자를 실명시키는 것이 적당한 보상이 될 수 있는가? 여기에서부터 무엇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따지게 되었다. 아마도 나는 가해자를 실명시키기보다는 그가 내게 가한 상해에 대한 대가로 무엇인가 유용한 보상을 원할 것이다. 만약 가해자가 내 눈을 다치게 한 것이 아니라 내 곡식을 불태워 버렸다면, 그리고 그는 게으른 탓에 아무런 재산도 없다면, 어떻게 하는가? 비록 우리 모두가 무엇이 공정한 행동인지에 대해 공감한다고 해도, 우리 자신이 불편 부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을 적용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속았다는 느낌은 종종 보복을 낳는다. 그리고 그것은 이어서 보다 과격한 보복을 야기한다. 이런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는 공평무사에 대한 개념 정립과 그에 더불어 주어진 상황에서 공정한 처리가 어떤 것인지 사심 없이 결정을 내려주는 체계를 확보해야 한다. 일단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지게 되면, 다양한 양상을 정의로운 방식으로 주제하고 집행할 수 있는 사회로 나가는 것은 단걸음에 가능하다.

4. 관대한 태도를 취하라.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은 항상 과거를 잊고 용서하는 태도를 수반한다. 상대편이 과거에 아무리 잘못했더라도 그가 한 번만 협조적인 행동을 하기만 하면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은 작동 가능하다. 이러한 특성은 쌍방 모두에게 해를 주는, 되받아 비난하는 행위의 끝없는 순환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는 또한 상대방에게 앞으로 취해야 하는 정책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려 주므로 문제를 쉽게 만든다. 실제 생활에서 사람들은 과거를 쉽게 잊으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과거는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 지표를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만약 상대방이 협조하려는 의향을 보인다면, 과연 그 의향이 진솔한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만약 그가 과거에도 협조적인 체하다가는 기만하려 했던 전력이 있다면,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해서보다는 약속하는 데 있어 조심을 기해야 할 것이다. 비록 이 같은 단서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은 과거에 비협조적이었던 사람과도 협조적이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를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를 가진다.

5. 시기하지 말라.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마지막 요소는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잘하거나 대등하게 하는 것에 시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이 전체적으로 보아 다른 전략보다 나은 이유는 그것이 다른 것보다 협조적인 상황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만약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이 시기하는 전략이었다면, 그것은 자신이 협조적이고 상대방이 이기적인 상황에서 상대방이 그로 인해 이득 보는 것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도 이기적인 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과는 서로에 대한 보복과 협조적인 상호작용의 감소뿐이다. 시기심이 대단히 강한 동기 유발력을 가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기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높은 지위나 보다 많은 물질적 부를 추구하도록 만든다. 시기심이 많은 사람들은 자주 곤경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세대를 거쳐 살아남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기심이 가지고 있는, 이 같은 동기 유발력 때문에, 장사꾼들은 종종, 때로는 교묘한 방식으로,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시기적인 요소들에 호소한다. 그들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도록 유도하여 자기 이익에 대한 편협한 관념을 갖게 만들고 시기하는 분위기를 창출한다. 그러한 분위기는 물론 서로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려는 성향을 와해시킨다.




위의 글에서 피터싱어는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을 현실의 삶에 적용시킬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자상하게 설명하여 놓았다. 나의 생각도 피터싱어의 그것과 어긋나는 점이 없으므로 그의 주장을 나의 주장이라 생각하여도 좋다. 나는 다만, 그가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을 너무 현실세계에 접근시키려 하지 않았는가 하는 우려가 생겼을 뿐이다. 현실세계는 현실이다. 받는 대로 돌려주는 전략은 그저 수인의 딜레마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 나온 최고의 전략이다. 이 게임에서는 조건이 한정되어 있고, 경기자도 2명일뿐이다. 현실세계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한정적인 조건하의 결과물을 가지고, 현실세계와 너무 많은 부분에서 합일점을 찾으려 한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세계는 너무 방대하고, 현실세계의 조건들을 모두 고려하여 최적대응을 찾으려 하는 것은 실로 무지막지한 행동이며, 불가능한 사고이다. 나는 다만, 한정적인 조건하에서의 전략을 너무 확대하지는 않았는가에 대해서 약간 우려할 뿐이다. 전체적인 그의 설명에는 조금도 이의가 없는 바이다.

자기 이익과 윤리: 중간결론

보다 믿음직하고 보다 영속성 있는 협력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사회는 윤리적인 규칙을 진화시켜 왔다. 그 결과 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개인이건 집단이건, 사회의 구성원은 누구나 그로 인해 덕을 보았다. 처음에는 친절하고 협조적인 자세로 임하면서 보다 길고 안정된 관계를 지향하면서도, 남에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직선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한편 시기하지 말라고 윤리는 가르친다. 이러한 교훈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성향을 억제하고 우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고 종용하는 어떤 이질적인 명령이 아니다. 이것은 행복과 사회적인 존재로서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건전한 권고 사항이다.
더 이상 무조건적으로 착하고, 순진하며, 헌신적인 사람은 진정 윤리적인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그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는 듯 보이나, 그의 무지하며 무력한 행동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이익을 보는 현상이 발발하게 되고, 그런 현상이 고무되는 일이 생긴다면, 그런 일이 생기게 된데에 그 순진하고도 착한 사람은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비열한 행동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어 더 이상 그런 행동을 하려고 하는 욕망을 부여해서는 안된다. 받는 대로 돌려주는 행위를 통하여 이룩 가능한 최선의 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윤리적인 사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