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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새천년의 교육정책: 정부의 손에서 국민의 손으로

지난번 대통령께서 발표하신 신년사에는 우리 교육 전반에 대한 평소의 우려와 기대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 중심 내용을 보면 모든 초·중·고등학교에 초고속통신망 구축, 모든 교사와 교실에 개인용 컴퓨터 한 대씩 무상 보급, 저소득학생 모두에게 컴퓨터 학습비용을 전액 지원하겠다는 것입니다.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일류국가로 부상하기 위해 교육정보화종합계획을 축으로 하는 교육개혁의 완성을 구상한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을 보통 "백년지대계"라고들 합니다. 그 만큼 멀리 내다보고 교육을 잘시켜야한다는 말이겠죠. 실로 새로운 천년은 정보의 세계일 것입니다. 새 천년을 시작하는 마당에 정부로서는 이에 대한 교육정책을 내놓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신년사에 나타난 많은 계획과 구상들을 보고 그 재정 마련에 대해 걱정은 둘째로 치더라도, 우리의 교육현장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서 볼 때 그러한 정책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컴퓨터와 친숙한 환경을 만들고 모두가 컴퓨터를 생활화하여 주부들이 가계부를 컴퓨터로 쓰고 학생들이 과제물을 컴퓨터로 처리하고 대학에서는 컴퓨터로 지원 받는 원거리 교육을 하는 것은 물론 좋겠습니다. 문제는 창의적인 사고,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교육 내적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이 정보화 종합계획은 한낱 계획을 위한 계획에 그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선택하는 공립 초등학교

필자는 지금 미주리 주립대학에 교환교수로 와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이곳 초등학교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살고 있는 곳은 두 개의 공립초등학교가 비슷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공립학교는 각 학교에서 강조하는 프로그램이 다르며 특별활동과 특별수업도 달리하고 있습니다. F 초등학교는 수학과목을 강조하며 제2외국어 교육을 일찍 시작하고 있는 반면, R 초등학교는 영어교육에 치중하면서 다양한 방과후 수업들을 개발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의 학생배정은 기본적으로 주거지를 기본으로 하지만 학부모가 선호하는 이유가 있을 경우 학교장에게 신청하여 다른 공립초등학교의 입학이 허용됩니다. 따라서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이 두 개의 공립학교 중 하나를 선택하여 자녀를 입학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 몇 년을 마친 뒤, 예를 들어 고학년 때는 다른 학교로 옮겨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것은 매 학년이 시작될 때 모든 학부모는 자녀가 다닐 학교에 다시 지원서를 제출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앞집에 사는 아이와 우리 집 아이는 다른 학교에 다닐 수도 있습니다. 또 지난해까지 다른 학교에 다니던 옆집아이가 우리 아이와 한 학교에 다닐 수도 있습니다. 무상으로 이루어지는 공교육기관인 초등학교에서부터 개인의 선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두 개의 학교를 검토하였습니다. 학교마다 우리나라 건설현장에서 볼 수 있는 콘테이너 박스가 여러 개 서있었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나중에서야 교실이 부족하여 그것이 교실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너무 놀랐습니다. 교실도 우리나라 초등학교의 교실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한 학년은 취학생이 많아서 28명씩 한 학급에 배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요즘 서울의 일부 초등학교에 학급당 인원이 35명 수준인 것을 보면 그리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울과 이곳의 차이는 개학 후 알았습니다.


학생중심의 학교

교사들은 각 교실에 책상과 모든 비품을 두고 그곳에서 생활합니다. 교무실은 연락 사무, 일반적인 행정업무를 보는 말 그대로 사무실입니다. 보통 반들은 1반 2반, 등으로 불리지 않고 아무개 선생님 반으로 불립니다. 학교를 구성하는 핵을 각 담임 교사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즉 담임은 그 반의 대표가 아니라 그 반 자체입니다. 교사는 자기가 담임하고 있는 학생들을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기가 가지고 있는 교육목표, 학습의 주안점들을 일일이 부모들에게 알려줍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매 주말마다 한 주일에 있었던 학급활동, 학습진도를 간략히 적어 보냅니다. 각 학생마다 특별한 일이 있었거나 고쳐야할 점등도 함께 적어 보내집니다. 여기에 학부모들도 연락사항, 의문점들을 적어보내는 식으로 학교와의 대화 통로를 열어 놓습니다. 가장 새로웠던 것은 교장과 교감이 교사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의 조력자, 정보원, 보조교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학급에서 학생들이 정한 연구과제물의 개요를 들어주는 청중의 역할도 하고, 학생들의 실험에 기꺼이 피험자로 나서주기도 하고 있습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교장과 교감이 전교생 대부분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학생들 하나하나 그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며 동시에 학교 생활에 자신을 갖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교육과정은 우리나라와 같은 형식으로 각 과목별로 수업시수를 달리하여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초등학교에서 교육되어지고 있는 교과목이 거의 그대로 비슷하게 학생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없는 시간이 하나 있습니다. 'sharing'이라고 불리는 시간인데 각자가 가장 좋아하는 일, 취미, 자랑거리 등을 반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입니다. 학생마다 한 주일에 한번씩 발표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시간을 위해서 어려운 단어를 계속 암기하는 아이, 공룡에 대해 끊임없이 조사하는 아이, 종이접기를 계속하는 아이, 관찰일기를 써 가는 아이 등등, 각자의 취미와 적성에 맞는 개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개성을 강조하고 잠재력을 개발하는 시간입니다.

주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립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교들과 비교되는 프로그램을 계속 개발하고 학생들을 교육하고, 교사들 스스로가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을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특히 눈에 보였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노력하고 교사들은 이를 돕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우리의 교육개혁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 아닙니까?


정부가 해야할 일

우리는 외형적으로 전 국민에게 초등 의무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여건을 확립하였습니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조금 더 낮출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지금의 상황이 비관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외형 조건 외에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산은 또 있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국민의 교육열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조기교육환경도 상당수준까지 발전하였고, 특기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지식도 매우 높습니다.

여기에서 정부가 할 일은 정부가 학교 교육을 어떻게 이끌어 갈까로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교육의 목적은 모든 국민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그 기본 목적을 달성한 후에 정부가 나가야 할 길은 국민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정부가 학교 교육을 이끌어 가려고 하면 모든 국민은 획일적으로 정해진 경로를 따라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정부가 할 일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외형 위에 각 학교가 경쟁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학부모가 학교를 선택하여 자녀를 취학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

취학 연령의 어린이의 개인적 특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부모일 것입니다. 그 어린이의 장래를 가장 우려하는 이도 또 그 부모입니다. 그 부모들만큼 학교를 신중하게 저울질 할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정부가 각 학교 단위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보호해 줄 필요는 없습니다.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노력하면 그 평가는 학부모들이 할 것이며, 노력하지 않는 학교는 도태할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과 같이 학생 개개인의 취향과 무관하게 정해진 학교에 취학하여 별 변화가 없는 한 졸업할 때까지 다니도록 하는 한 각 학교는 다른 학교와 비교하여 두드러질 만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발전이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

교육에 관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육의 질적 저하를 재정부족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많습니다. GNP 5%의 교육예산확보를 주장하더니 교육예산이 그에 가까워 오자 GNP 6%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교육질의 조악함은 불충분한 재정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에 대한 정부독점에 따른 중앙집권화와 관료화에 있습니다. 소련과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것과 국내의 정부독점산업이 사적 경쟁에서 움직이는 산업에 비해서 현저히 낙후된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지금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컴퓨터를 보급하고 컴퓨터 학습을 지원하고 정부가 주도하는 획일적인 교육체계가 아닙니다. 갑작스런 컴퓨터 교육에 대한 정부의 지원약속이나 강조는 또 다시 한번 전국의 교육을 마비시킬 수 있는 유행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새 천년의 아침에 우리가 시작해야 할 것은 교육의 주체가 누구인가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에 대한 반성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교육받는 학생들의 눈으로 교육개혁, 교육정비 등등을 논한 것이 아닙니다. 이 새 천년이 원하는 것은 자신만의 특성을 100%발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을 적당히 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내 것을 나만의 방법으로 해 내는 인간 자원의 육성입니다. 이제 교육문제는 정부의 손에서 국민의 손으로 옮겨와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