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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시민 운동에도 시장 원리를

권력 감시로서 시민 운동

새천년 새해 새날에도 희망의 징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의원 꿔주기'로 시작된 새해는 '안기부 돈 파장'으로 벼랑 끝 정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과거에 발목 잡혀 영수 회담도 걱정스럽게 끝나고 여야는 전면전에 돌입하고 있습니다. 정책을 둘러싼 격론이 아니라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인들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에 안타까울 뿐입니다. 국민이 몇 년에 한 번 행사하는 투표권을 통해 정치를 견제할 수 있다는 민주주의의 원리는 현실 정치와는 상관없는 교과서만을 위한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수수방관만 해야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시민 단체 (NGO)의 영향력이 끊임없이 증대하고 있습니다. 국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인류의 위대한 성취였지만, 대의 민주주의를 통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사는 배제되고, 자율성도 침해당한다는 자각이 시민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정치적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민주화 운동이 시민 운동과 노동 운동으로 분화되었습니다. 시민 운동은 체제 저항 운동이 아니라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개량주의 운동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시민 운동은 더 이상 "자본주의는 수정될 수 없고 오직 파괴될 수 있을 뿐이다"라는 도그마를 신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좌파 노동 운동과는 구별됩니다. 시민 운동의 출현은 '민중' 운동의 시대가 끝나고 국민을 포괄하는 '시민' 운동 시대의 시작으로 환영받았습니다. 시민 단체는 2000년 낙선 운동으로 성공을 거두어 우리 사회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였습니다.

여러 시민 운동 단체가 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1989년 11월에 출범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입니다. 경제 정의의 실현을 내건 경실련에 직업운동가, 대학교수, 변호사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정치 개혁, 사회 복지, 인권, 보건 의료 등 각 분야로 활동 범위를 넓혀 갔습니다. 좌파 노동 운동가들은 계급 타협과 개량주의에 입각한 경실련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많은 국민들이 신뢰와 기대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시민 단체가 권력 감시 운동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고자 한다는 점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부 시민 단체들이 좌파 노동 운동과 연대하려는 경향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시민 단체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시민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시민 단체의 활동에 대한 의혹과 비판이 증폭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시민 단체의 대표들이 자초한 일입니다.

일부 정치인들은 '선출되지 않은' 시민 운동가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명하기도 하였습니다. 시민 단체들의 정치 편향과 관료적 병폐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시민 없는 시민 운동', '백화점식 시민 운동', '명망가 중심의 시민 운동'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부 부정적인 사례를 근거로 시민 운동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닙니다.


시민 없는 시민 운동

그러나 새해 벽두에 언론에 보도된 경실련의 후원금 요청 사건은 시민 운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심각한 사건입니다. 대표적인 시민 단체인 경실련이 지난해 11월에 5곳의 정부투자기관에 "11월 29일 열리는 경실련 창립 11주년 기념식 및 후원의 밤 행사에 대한 재정 지원을 요청한다"는 공문을 공동대표 3인과 사무총장 명의로 보냈다고 합니다. 일부 기관에 대해서는 지원 요청 금액까지 명시했다고 합니다. 그 뒤 3개 단체로부터 후원금 1200만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공문을 보내 요청한 것을 보면 후원금 요청에 대해 내부적으로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경실련은 이에 앞서 10월에는 정부투자기관 13곳에 기관장 판공비 집행 관련 자료 공개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경실련은 "후원금 요청은 후원의 밤 행사가 가까워져 평소 후원했던 공기업에 연락했던 것뿐이고, 판공비 내용 공개 요구는 지난해 7, 8월부터 시작한 일이라 두 가지는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했습니다. "판공비 정보공개요구부서와 후원금요청부서는 별개이며, 판공비 내용 공개와 후원금 요청이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는 시각은 잘못이다"라는 이석연 사무총장의 발언처럼 양자 사이에 필연적 연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시민 운동을 주도하는 사람과 '시민' 사이에는 이 사건에 대해 상당한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해 낙선 운동 과정에서 "경실련이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의혹을 받는 정부 지원금은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한 결정에 박수를 보냈던 사람들은 더욱 당혹스럽습니다. "문을 닫지 않고" 정부 투자 기관에 후원금을 요청한 것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감시할 대상에게 후원금을 요청했다는 사실은 감시의 공정성을 크게 훼손하는 것입니다. 시민 단체의 존립 기반 가운데 하나가 권력 기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실련의 행동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경실련의 재정적 어려움은 이해합니다. 경실련의 중앙 조직의 1년 예산은 10억이 넘지만, 3만 5천여 회원 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예산의 30-4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중앙 회원 1만 5천 명 가운데 매달 회비를 꼬박 내는 회원은 3천 명 정도라고 합니다. 경제 불황으로 회원 수가 줄고 후원금이 크게 줄어 사무실 난방비를 아끼고 신규 채용 인력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월말이 되면 상근자의 높지 않은 월급까지 걱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번 사건은 시민 단체의 어려운 재정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민 운동에 들어가는 비용을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시민 단체는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그 비용을 국민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지요. 그러나 시민 단체를 비정부 기구라고 부르는 까닭을 따져보면 이러한 주장의 잘못은 바로 드러나게 됩니다. 비정부 기구는 당연히 설립과 운영에서 정부의 간섭과 지원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비용도 그 기구의 설립 취지에 동의하는 민간이 부담해야 합니다.

국민 모두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해야 할 기구가 필요하다면 이는 당연히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어야 하겠지요. 그렇게되면 그것은 비정부 기구가 아니라 정부 기구가 됩니다. 비정부 기구는 정부 기구로의 승격을 꿈꾸는 예비적 정부 기구나 준정부 기구가 아닙니다. 비정부 기구인 시민 단체가 정부 기구처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면 우리는 그 기구에서 '공권력의 감시 기능'이나 '공권력 비판 기능'을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시민 운동에도 시장 원리를

이번 사건의 본질은 '공권력 견제와 감시'를 존재 이유로 삼은 시민 단체가 감시의 대상에 대해 부당하게 후원금을 요구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시민 운동'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시민 단체가 스스로 시민들의 가슴에 분노와 냉소를 안겨준다면 이것은 시민 단체나 시민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시민들이 기대하는 시민 단체의 역할이 우리 사회를 보다 맑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민 단체 스스로 흐리게 한다면 시민들이 시민 단체를 멀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시민 단체가 보호해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에만 시민 단체에 대해 비용을 지불할 것입니다. 시민들의 비용 지불은 회비나 후원금 형태로 시민 단체에 돌아갈 것입니다. 시민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경쟁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시민 단체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품이 시장에서 도태되듯이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시민 단체가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권력은 시민들의 회비나 후원금을 통해 감시되어야 합니다.

"정치 부패의 뿌리는 권력이고, 부패의 감소는 권력의 축소와 분산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주장은 비단 정치 권력 뿐만 아니라 권력을 가진 모든 단체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권력이란 타인을 강제할 수 있는 힘입니다. 시민 단체도 타인을 강제하려는 의지를 가진다는 점에서 엄연히 권력 기관입니다. 공권력이 아니라 여론을 동원하여 타인을 강제하려고 하는 시민 단체는 공권력보다 더 무서운 권력 기관입니다. 부당한 공권력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시민 단체에 대해서는 책임 추궁이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시민 단체가 회원의 회비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중요한 함의가 들어 있습니다. 시민 단체의 운영비는 시민들의 자율적인 참여에 의해 충당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 단체의 운영 형식이나 운동 방향의 정당성에 대한 판단을 회비 납부를 통해 회원들이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민 단체는 누가 감시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기도 합니다. 시민 단체를 감시하는 것은 시민입니다. 따라서 시민 단체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회원들의 회비 납부로 입증하고, 운영과 운동 방향을 검증 받아야 합니다.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이 어려운 단체는 시민 단체로서 존재 의미를 상실했다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시민 단체는 당연히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합니다. 국가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소로우처럼 납세 거부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고 할지라도 시민 단체에 대해서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시민 단체는 자신들의 운영과 의사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시민들이 그 단체를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회원을 확보하고, 운동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시민 단체는 자신의 능력에 맞게 규모를 줄여야 합니다. 시민 단체들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만약 스스로 운영할 능력이 없다면 그 규모를 축소해야 합니다. 시민 단체가 이런 저런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수행해야 한다고 강제한 사람은 없습니다.

시민 단체의 규모와 운동 범위는 회비나 후원금을 내는 시민들이 결정해야 합니다. 시민 참여가 부족한 상태에서 큰 조직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나라 시민 단체도 명분과 사회적 관심을 쫓아 시민 단체끼리 연대하여 거대한 사업을 기획할 것이 아니라, 탈중심화되고 분산화되어야 합니다. 이제 시민 단체끼리도 경쟁할 때가 되었습니다.

(2001년 1월 12일 / 강원대 윤리교육과)